'5억5000 거절' 오승환…근거 있는 돌직구
입력 2012.12.3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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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년과 달리 테이블서 확실 표현
불펜투수 총대? 상대적 박탈감 등 해석
오승환은 시즌 끝나고 불펜 투수에 대한 대우에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오승환(30·삼성 라이온즈)만큼 별명이 많은 투수도 드물다.
타자들이 그의 공을 치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언히터블(Unhittable)', 그리고 무너뜨리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난공불락'이라는 별명도 있다.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견인한 초기 오승환의 별명이다.
구위 자체에 초점을 맞췄던 초기와 달리 오승환이라는 투수 자체의 인성적인 특징으로 옮겨갔다. 바로 '돌부처'다. 좋고 싫고 기쁘거나 찡그리는 표현이 없는 표정. 돌부처라는 닉네임은 돌직구라는 구질과 상승효과를 발휘, 오승환을 가장 잘 대변하는 닉네임이 됐다. 비슷한 표현으로 포커페이스도 있다.
가장 최근 붙여진 것은 '끝판 대장'. 이는 오승환 개인의 인성적 면이 아니고 보직에 관련된 별명이다. 오승환은 구위, 성격, 보직 등 모든 면에서 별명을 보유하고 있는 대표 투수다. 별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팬들에게 어필할 성적과 카리스마를 보유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올 겨울 돌부처가 꿈틀거리고 있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라는 의사표시에 익숙하지 않았던 오승환이 최근 자신의 의사를 적극 드러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의사표시는 다름 아닌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나왔다.
2005년 입단한 뒤 연봉 협상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거나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보다는 구단 제시액에 순응했던 그였기에 올 시즌은 분명 지난 8년과는 달라졌다. 감춰뒀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계기는 여러 가지다.
오승환은 시즌 끝나고 불펜 투수에 대한 대우에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로테이션에 따라 컨디션 조절이 가능한 선발투수들에 비해 불펜 투수는 연일 등판 대기라는 긴장에 훨씬 노출돼 있다는 점과 선발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한 대우를 받는 불펜투수들의 연봉 고과에 불만을 제기했다.
오승환의 얘기는 나름 설득력 있다. 불펜 투수들 모두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그 문제를 개진한 선수들이 없다. 오승환이 이제는 국내 불펜 투수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지위에 올라섰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적극적으로 변한 오승환의 모습은 LG로 이적한 삼성 마운드의 정신적 지주였던 정현욱과 삼성의 FA 계약 과정이 순조롭지 못했던 것도 하나의 계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예’로 불릴 정도로 전천후 등판을 자처했던 정현욱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삼성이 4년 계약을 꺼렸다는 점이 오승환 심기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류현진(LA다저스) 포스팅 대박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해외진출 의사 타진에 대한 구단의 만류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오승환은 요구하고 있다. 삼성이 제시한 5억 5000만원으로는 이미 자존심이 상한 오승환을 돌릴 수 없다.
올 시즌 부진했던 김선우(두산)이 5억 5000만원에, 마찬가지로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BK' 김병현(넥센)이 6억에 도장을 찍었다. 일일이 데이터를 비교해 열거하지 않아도 2005년 이후 삼성의 한국시리즈 최종전을 4번이나 치른 끝판대장으로서는 자존심 상할 일이다.
물론 김선우나 김병현의 경우는 '스펙과 경력'이 있다. 빅리그에서 뛴 훈장이 오승환에겐 아직 없다. 미국이나 일본 진출한 뒤 국내 복귀 시엔 성적 이상의 플러스알파가 연봉 정산에 개입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 마무리로 자타가 공인하는 오승환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결정은 있어야 한다. 삼성 입장에선 실패한 김병현에게 선뜻 6억을 쥐어준 넥센이 못마땅할 수밖에.
삼성 입장에서는 밀리면 끝장이다. 정현욱이 이미 FA 협상 과정에서 ‘후배를 위해 총대를 멘다’는 의지를 표한 바 있다. 오승환-안지만-권오준 필승조들이 내년 이후 줄줄이 FA 자격을 얻는다. 이런 상황에서 안지만이 ‘농반진반’ 연봉 5억을 요구한 게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을 터. 안지만의 후방지원이 매섭다. '대장' 오승환한테 기선을 제압당하면 협상 테이블에서 난처해진다.
8년 동안 돌 속에 갇혔던 부처 오승환. 9년 만에 동안거(冬安居)를 깨고 세상에 나올 결심을 했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구단은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오승환이 만약 부진하다면, 오승환이 삼성에 없다면, 삼성 왕조는 주춧돌부터 다시 세워야 할 지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연봉이지만 숨은 건 기싸움이다. 오승환과 삼성은 향후 도래할 'FA 대첩'에 대비, 치열한 샅바 싸움을 펼치고 있다. 왕조는 건설됐지만 그 논공행상 과정에서 발생할 잡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명문' 삼성 왕조의 성쇠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