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야구의 영광' 박재홍과 이대로 작별?
입력 2012.11.1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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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완 보류명단 포함 '일단 현역'
은퇴 권유 박재홍은 팀 떠날 듯
인천 야구팬들에게 ‘야구’라는 두 글자에 담긴 의미는 남다르다. 인천은 야구가 처음 도입된 곳으로 ‘구도(球都)’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제 때 한국 야구 발전의 산파역을 했던 ‘한용단’을 비롯해 사회인 야구의 시초였던 ‘전인천군’ 등이 큰 사랑을 받았다.
고교 야구의 열풍이 몰아친 5~70년대에는 인천 야구의 양강 동산고와 인천고가 전국 대회를 휩쓸었다. 특히 동산고는 사상 첫 청룡기 3연패를 차지하며 우승 깃발을 영구 보존하고 됐고, 인천고 역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인천 야구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포스트시즌은 1989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치렀고, 프로야구 연고지 가운데 가장 많은 팀(삼미-청보-태평양-현대-SK)이 거쳐 가기도 했다.
그래도 열정은 뜨거웠다. 인천 야구팬들의 뜨거운 응원은 1994년 태평양의 한국시리즈 진출로 이어졌고, 현대 인수 후인 1998년에는 인천 연고 사상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2000년 현대의 연고지 이전, 이른바 ‘야반도주’로 인천 팬들은 다시 한 번 실의에 빠졌다. 하지만 팬들은 스포테인먼트를 기치로 내건 SK의 공격적인 투자에 마음을 서서히 돌리기 시작했고, 2000년대 후반 ‘SK 왕조’의 탄생으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인천 야구의 전성시대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2명이 있다. 바로 SK의 베테랑 박경완(40)과 박재홍(39)이 그들이다. 이들의 출신지는 각각 전북 전주와 광주이지만 ‘미스터 인천’ 김경기(현 SK 코치) 못지않게 인천 야구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1996년 현대에 입단한 박재홍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이 괴물 신인은 데뷔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30-30 클럽 가입을 비롯해 홈런왕과 타점왕까지 휩쓸었다. 당연히 신인왕은 박재홍의 몫이었다. 인천 팬들로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맞이하는 엘리트 신인이었다.
쌍방울과 현대를 거친 박경완은 2003년에야 SK와 FA 계약을 맺으며 인천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SK의 역사는 묵묵히 안방마님 역할을 해낸 박경완에 의해 쓰이게 된다. 입단 첫해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끈데 이어 김성근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으며 ‘SK 왕조’ 탄생의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박경완과 박재홍은 나란히 은퇴라는 기로에 서있다. SK 구단은 올 시즌 부상 후유증과 노쇠화로 인해 출장 기회가 적었던 이들을 전력 외로 구분해 놓았다. 떨어진 기량은 물론 적지 않은 연봉도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박경완은 다행히 다음 시즌 SK와 함께할 예정이다. SK는 16일 박경완을 다음 시즌 보류명단에 포함시킨다고 결정했다. 사실상 SK에서 자리를 잃었던 박경완이지만 현역 생활을 이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승리한 셈이다.
물론 박경완은 FA 조인성의 가세와 주전급으로 훌쩍 큰 정상호, 그리고 군복무를 마친 이재원과의 틈바구니에서 설자리 찾기가 잡기 쉽지가 않다. 그래서 과감히 FA 신청을 포기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만수 감독도 앞서 박경완과 함께 하고픈 바람을 내비치면서 “주전 경쟁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반면, 박재홍은 SK에 몸담기가 어려워졌다. 박재홍은 15일 구단 측과의 면담에서 은퇴를 제안 받지만 타 구단 이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실 몇 해 전부터 노쇠화 기미가 보였던 박재홍은 지난해에도 은퇴를 권유 받았지만 우타자 대타가 필요한 팀 상황과 맞아떨어지며 팀에 잔류한 바 있다.
어차피 맞이해야할 이별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인천 야구 팬들은 그저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 물론 레전드를 대하는 SK의 대우가 매몰찬 것만은 아니다. SK는 이들에 대해 코치 연수와 은퇴식을 제안하는 등 은퇴 후에도 코치로서 함께 하자는 최대한의 예우를 베풀고 있다.
문학구장에는 9회초 SK의 수비가 시작되기 전, ‘연안부두’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 가사는 영광과 좌절을 경험한 인천 야구의 역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레전드들은 지난 10년간 인천 야구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박경완과 박재홍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정들었던 연안부두를 떠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