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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무이일구…너구리 장명부 플래시백

이일동 객원기자
입력 2012.04.19 13:01
수정

서른아홉 박찬호 LG전 혼을 담은 투구

1983년 서른넷 장명부 투구 연상케

박찬호는 18일 청주구장서 1983년 장명부 투구를 연상케 하는 혼신의 투구를 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프로야구 초창기 삼미 슈퍼스타스에서 패전처리 투수로 활약한 감사용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필름이다. 팀 이름은 슈퍼스타스였지만 프로 원년엔 슈퍼스타가 실제로 없었다.

1983년에 진짜 슈퍼스타가 나타났다. 바로 재일동포 출신 '너구리' 장명부다.

서른넷의 나이, 34번 등번호를 달고 고국 무대에 섰다. 30승을 하면 1억을 준다는 구단 측 제안에 60경기에 나서 무려 36경기를 완투했다. 정말로 장명부는 그해 30승을 달성했다. 8연속 경기 완투는 덤. 한 시즌 팀당 100경기만 치르던 시절에 세운 대기록이다.

무려 427.1이닝 투구라는 전무후무한 투구 이닝에 탈삼진도 무려 220개나 솎아냈다. 출격도 전천후였다. 선발과 중간, 마무리 시도 때도 없이 너구리는 상대 타선을 유린했다. 원년 패배에 찌들었던 인천 도원구장에는 기적이 일어났다. 투구폼도 다양했다. 스리쿼터로 직구를, 슬라이더를 던질 땐 사이드암으로, 또 타자가 홈플레이트에 붙으면 의도적으로 당시 용어로 슈트(역회전구)로 타자를 가격했다. 그야말로 마운드의 악동이었다.

30승을 달성하기 위해 오른팔을 날린 장명부는 이듬해부터 하락세를 탔다. 구단 사장과 맺은 비공식 계약이 화근이었다. 그러면서 야구에 대한 정열이 서서히 식어갔다. 빙그레로 이적한 뒤 퇴물로 전락한 슈퍼스타는 불과 4시즌 만에 은퇴를 택했다. 시즌 최다승과 시즌 최다패의 극과 극을 맛봤다. 4년 만에 그는 짧고 굵은 야구를 고국에 선사한 너구리 장명부는 현해탄을 건넜다.

장명부는 일본으로 돌아간 뒤 마작 하우스를 운영하다가 2005년 쓸쓸하게 운명했다. 당시 그의 마작하우스 벽엔 그의 야구철학이 담긴 글이 적혀있었다. '떨어지는 낙엽은 가을바람을 탓하지 않는다'는 글귀. 1983년 혹사로 인한 조기 은퇴에 대해 원망을 하진 않는다는 의미로 들리는 구절이다.

또 다른 그의 명언이 있는데 바로 '무이일구(無二一球)'다. 1983년 삼미서 던진 그의 투구는 진정 혼을 담아 던진 1구 1구였다. 일본 프로야구 출신 장명부는 프로 초창기에 프로 근성을 지닌 유일한 투수였다. 그런 장명부가 던진 혼이 담긴 1구 1구가 연상되는 투구가 있었다. 18일 청주구장 한화 선발 박찬호(39)의 그것이다.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124)을 거두고 오릭스를 거쳐 고향팀 한화에 입단한 ‘국민투수’다.

메이저리그 출신 대스타인 박찬호는 그야말로 혼을 담아 던졌다. LG를 상대로 한 1회 말부터 기합을 넣어가며 집중했다. 6회까진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로 로케이션과 구위가 완벽했다. 좌타자 중심인 LG를 상대로 우완 박찬호의 마운드 운영 능력은 완벽 그 자체. 최고구속 148km/h의 포심을 좌우 구석으로 찔러 넣고 슬러브와 서클 체인지업을 맘대로 구사했다. 한 가운데로 몰리는 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1-0으로 박빙의 리드를 유지하던 박찬호는 7회 정성훈에게 역전 투런포를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한화 타자들이 LG 선발 김광삼을 효율적으로 공략하지 못한 결과다. 6회까진 불혹에 가까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박찬호의 볼끝은 예리했다. LA 다저스 시절의 하이킥과 높은 타점은 없었지만 안정된 스윙 궤도에 의한 제구력이 돋보였다. 박찬호의 포심과 슬러브, 서클체인지업은 동일한 높이와 스윙에서 구사됐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LG 좌타자들이 박찬호의 정교한 투구에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연신 헛스윙을 했다.

오릭스 시절의 부진과 시범경기에서 불안하던 박찬호는 없었다. 2경기 연속 호투를 보여준 코리언특급 박찬호는 건재했다. 공 하나 하나에 기를 넣어 던지는 서른아홉의 박찬호를 보니 전설 속 너구리 장명부의 1983년이 떠올랐다. 서른넷 장명부의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서른아홉에 돌아온 박찬호는 아직 가을 낙엽이 아니었다. 박찬호의 혼을 담은 투구가 전한 충격에 비운의 너구리 장명부의 무이일구(無二一球)가 떠오른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일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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