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과 관절염, 우연 아니었다”…뇌 호르몬이 연골 파괴 촉진
입력 2026.10.02 03:01
수정 2026.10.02 03:01
전남대·인제대 공동연구팀, 골관절염 악화 ‘연결고리’ 규명
혈압 조절 호르몬과 수용체 결합이 연골 파괴 신호 활성화
‘관절만의 병’ 벗어나 전신질환 관점 제시…사이언스지 게재
고혈압이 골관절염을 악화시키는 구체적인 분자적 연결고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본 이미지는 자체 AI로 제작함. ⓒ
고혈압이 골관절염을 악화시키는 구체적인 분자적 연결고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혈압을 조절하는 뇌 호르몬이 혈액을 타고 관절까지 이동해 손상·노화된 연골을 직접 공격하는 과정이 확인되면서, 관절 자체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골관절염을 전신질환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류제황 전남대학교 교수와 전장수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공동연구팀이 고혈압과 골관절염을 잇는 새로운 분자 기전을 규명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뇌에서 분비돼 혈압과 체내 수분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호르몬인 바소프레신(AVP)과 이를 인식하는 바소프레신 수용체 1A(AVPR1A)다.
고혈압 상태에서는 혈중 바소프레신 농도가 높아진다. 반면 건강한 연골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AVPR1A는 연골이 노화하거나 손상되면 크게 증가한다.
결국 고혈압으로 AVP가 늘어난 상황에서 이미 노화·손상된 연골에 AVPR1A가 많아지면 두 요소가 결합하면서 연골을 파괴하는 신호가 활성화되는 구조다.
연구팀은 먼저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를 분석해 고혈압이 있는 사람일수록 골관절염 유병률이 높고, 골관절염이 심할수록 고혈압과의 연관성도 뚜렷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혈압을 유발한 두 종류의 생쥐 모델을 이용해 고혈압이 실제로 골관절염을 악화시키는지를 검증했다.
그 결과 고혈압은 실험적으로 유도한 골관절염을 악화시켰으며, 연골뿐 아니라 연골 아래 뼈인 연골하골의 변화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골관절염 연골의 전사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AVPR1A가 골관절염 연골세포에서 크게 증가한다는 단서를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고혈압으로 증가한 AVP가 AVPR1A가 늘어난 손상·노화 연골에 작용해 골관절염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분자 수준의 작동 원리도 확인됐다. AVP가 연골세포의 AVPR1A와 결합하면 연골 기질을 분해하는 효소인 MMP3와 MMP13이 증가했다. 연골을 구성·유지하는 제2형 콜라겐과 아그리칸은 감소했다.
반대로 AVPR1A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AVPR1A 선택적 저해제인 렐코밥탄(Relcovaptan)을 관절에 투여하자 연골 손상이 감소했다. 연구팀은 AVP-AVPR1A 신호를 연골 분해로 연결하는 핵심 전사인자로 NR4A3도 규명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고혈압과 골관절염의 관계가 단순한 동반 질환의 상관관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사람 데이터를 통한 연관성 확인에 이어 동물실험과 유전자 제거·억제제 투여 실험을 통해 AVP-AVPR1A 신호가 고혈압에 따른 연골 손상에 관여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확인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골관절염을 바라보는 기존 관점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골관절염은 그동안 주로 관절 자체의 마모와 손상으로 설명돼 왔다. 최근에는 대사·내분비·혈관계 등 전신적 변화 역시 발병과 진행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뇌에서 분비된 혈압 조절 호르몬이 혈액을 타고 관절까지 이동해 연골에 영향을 미치는 ‘뇌-호르몬-관절’ 연결고리를 제시했다.
치료 전략 측면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됐다. 연구팀은 AVPR1A를 유전자 수준에서 없애거나 억제했을 때 고혈압으로 인한 연골 손상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AVPR1A 저해제인 렐코밥탄의 골관절염 억제 효능을 동물모델에서 확인하면서, 향후 이를 활용한 골관절염 치료제 개발의 전임상 연구로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류제황 전남대 교수는 “이번 성과는 골관절염 환자를 진료할 때 관절 국소 부위뿐만 아니라 고혈압 같은 전신 건강 상태를 함께 관리해야 함을 시사한다”며 “앞으로 바소프레신 신호 체계를 표적으로 하는 근본적인 관절염 치료제 개발로 후속 연구를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