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병원 강제 지정하면 '응급실 뺑뺑이' 끝?…의료계 "현장 모르고 만든 법"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9.30 13:06
수정 2026.09.30 13:14
G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

중증응급환자 수용병원 정부가 지정…정당한 사유 없으면 수용

응급의학계 “과밀화·배후진료 부족 해소 없이 수용 의무만 강화”

전문의 93% 개정안 반대…정부 “지역별 이송지침 지속 보완”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응급실 뺑뺑이(미수용)’를 막기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면서 의료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중증응급환자를 받을 병원을 정부가 지정해 이송 지연을 줄이겠다는 취지지만, 의료계에서는 응급실 과밀화와 배후진료 역량 부족을 해소하지 않은 채 수용 의무만 강화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응급실 미수용 방지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이어 28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의결만 남겨두고 있다.


개정안은 중증응급환자를 이송할 의료기관이 신속하게 정해지지 않을 경우 중앙응급의료상황실과 119구급상황센터가 수용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지정받은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환자를 수용해야 한다.


의료진에 대한 형사책임도 완화된다. 응급의료 과정에서 환자가 사상에 이른 경우 형사처벌 감면을 ‘임의’ 규정에서 ‘필요’ 규정으로 강화하고, 이송병원이 정해지지 않은 중증응급환자를 지정에 따라 수용한 의료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면제하도록 했다.


의료계가 문제 삼는 것은 환자의 ‘수용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려면 응급실 병상뿐 아니라 수술·시술이 가능한 전문의와 마취 인력, 중환자실 등 배후진료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마저도 환자 유입에 따라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만큼, 일률적으로 수용 의무를 부과해선 안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301명의 응급의학 전문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99명 가운데 278명(93%)이 개정안에 반대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현장의 반발도 크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전문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99명 가운데 278명(93%)이 개정안에 반대했다. 응급환자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을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 통보하도록 한 조항에는 96%, 중앙응급의료상황실과 119구급상황센터가 수용기관을 지정하고 수용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에는 92%가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법안이 시행되면 아예 응급실을 떠나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일부 응답자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응급실을 떠날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고, 또 다른 응답자는 “일률적인 수용 강요는 응급실뿐 아니라 필수의료 배후 진료과의 인력 이탈까지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전날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법안은 수립 단계부터 통과 단계까지 현장과 전혀 조율되지 않은 입법”이라며 “대다수 현장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극심한 우려와 함께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응급실 과밀화와 배후진료 인력 부족 등 구조적인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수용 의무만 강화해서는 이송 지연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 회장은 “경증부터 중증까지 모든 환자가 자유롭게 유입되는 상황에서 과밀화가 해결되지 않는 한 중증환자 진료 여력을 확보할 수 없다”며 “응급실 미수용 문제는 법적 위험성 감소와 과밀화 해소, 인프라 확충 등의 선결 과제 해결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개정안에 함께 담긴 의료진의 형사책임 완화와 관련해서는 환자단체 쪽의 반발이 거세다. 지정에 따라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한 의료진을 보호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면책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응급실 뺑뺑이 상황에서 이송병원이 정해지지 않은 중증응급환자를 지정에 따라 적극적으로 수용한 의료진의 형사책임 보호에 동의한다”면서도 “일반적인 응급의료행위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필요적 감면’ 규정에는 반대하며 현행 ‘임의적 감면’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진에 대한 면책을 강화할 경우 환자와 유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적극적으로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한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특별히 면제한다면 피해 환자와 유족을 위한 국가 차원의 공적 보상체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며 “정당한 사유 없는 응급환자 수용 거부·기피에 대한 사후 검증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현장 적용 가능성을 검증한 만큼, 지역별 이송지침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제도를 안착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응급의료 이송체계 시범사업을 운영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법 개정안을 마련한 만큼 어느 정도 현장 검증을 거쳤다”며 “9월 말까지 16개 시도에서 지역별 이송지침을 마련해 적용을 시작했다. 한 번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장 상황이 계속 달라지는 만큼 매년 업데이트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