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믿고 '美 빅3' 엔진 늘렸는데…고유가에 웃은 건 현대차
입력 2026.09.28 14:34
수정 2026.09.28 14:34
현대차그룹 3분기 美 51만1421대 전망…사상 첫 포드 추월
고유가에 하이브리드 수요 확대…기아 8월 HEV 판매 99% 급증
규제 풀리자 GM·포드·스텔란티스, 내연기관 투자 확대
엇갈린 전략 속 현대차그룹 美시장 첫 '3위' 눈앞
뉴 포드 익스플로러 ⓒ에프엘오토코리아
미국 자동차 시장의 순위가 뒤집힐 조짐이다. 현대차그룹이 3분기 미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포드를 제치고 판매 3위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고유가로 미국 소비자들이 연비에 민감해지면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촘촘하게 갖춘 현대차·기아가 약진한 반면, 규제 부담이 줄어든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내연기관차에 다시 투자를 늘리며 엇갈린 전략을 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28일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제네시스를 합친 현대차그룹의 올해 3분기 미국 신차 판매량은 51만1421대로 전망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늘어난 규모다.
반면 미국 전통 자동차 업체 포드는 같은 기간 판매량이 7.1% 감소한 50만4172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전망대로라면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포드를 분기 판매량에서 앞서게 된다. GM이 67만1706대로 1위, 토요타가 64만2707대로 2위를 차지하고, 현대차그룹이 그 뒤를 잇는 구도다.
연간(1~9월) 기준으로는 포드가 현대차그룹 보다 7만대 가량 많은 상황이지만, 현대차그룹의 판매 확대 추세도 눈여겨볼 만 하다. 올해 현대차그룹은 전년보다 4.3% 성장한 반면, 포드는 8.8%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분위기다.
기아 텔루라이드 ⓒ기아
현대차그룹의 약진 배경으로는 하이브리드차가 꼽힌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미국 휘발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전기차보다 충전 부담이 적고 내연기관차보다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로 소비자들의 관심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업계 역시 최근 미국 시장에서 아시아 자동차 업체들이 점유율을 빠르게 늘리는 배경으로 다양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지목했다. 미국 시장에서 아시아 브랜드의 점유율은 2분기 연속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GM·포드·스텔란티스 등 디트로이트 3사의 합산 점유율은 3분기 약 36%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특히 기아의 하이브리드 판매 증가세가 가파르다. 기아 미국법인의 8월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전년 동월보다 99% 증가했다.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는 40%,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22%, 카니발 하이브리드는 15% 늘었다. 올해 1~8월 누적 하이브리드 판매 증가율은 111%에 달한다.
디트로이트 3사가 전혀 다른 전략을 취했다는 점도 현대차그룹의 판매 확대를 부추겼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 연비와 온실가스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전동화 전환을 서두를 필요성이 줄어들자 GM과 포드, 스텔란티스 등이 수익성 높은 대형 픽업트럭과 고성능 내연기관차에 다시 힘을 싣고 있어서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지난 2월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규제의 법적 근거가 됐던 기존 판단을 철회하고 관련 차량 배출규제를 폐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2031년 자동차 평균 연비 기준 역시 기존 50.4mpg에서 34.5mpg 수준으로 크게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GM은 2027년형 쉐보레 실버라도와 GMC 시에라에 적용할 새로운 V8 엔진 2종을 개발하고 있다. 뉴욕 토너완다 공장에는 8억8800만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V8 엔진 생산을 준비한다. 스텔란티스 산하 램은 한때 퇴출했던 헤미 V8 엔진을 다시 가져왔고, 포드 역시 F-150과 머스탱 등 주요 차종에서 V8 엔진을 유지하고 있다.
풀사이즈 픽업과 대형 SUV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수익성과 충성도가 높은 대표 차종으로 꼽히지만, 고유가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변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규제 완화를 믿고 내연기관에 베팅한 시점에 연료비 부담이 커지자 소비자들이 차량 가격뿐 아니라 유지비를 따지기 시작했고, 하이브리드를 폭넓게 갖춘 아시아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투싼·싼타페·스포티지·쏘렌토 등 미국에서 판매하는 주력 SUV에 하이브리드를 폭넓게 배치해 놓은 상태다. 여기에 그동안 순수전기차와 내연기관 중심이었던 제네시스까지 올 하반기부터 하이브리드 대열에 합류하면서 선택지는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내년부터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사이를 겨냥한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도 가세한다. 현대차는 2027년 상반기 싼타페 EREV를 출시하고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현지 생산할 예정이다. 제네시스 역시 1000km 이상의 주행거리를 목표로 한 EREV SUV를 2027년 초 투입한다. 기존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전기차에 EREV까지 더해 미국 시장의 수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파워트레인 선택지를 더욱 넓히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빅3가 규제 완화를 믿고 추진한 내연기관 투자의 결실이 수년 뒤에야 나타나는 만큼, 그 사이 하이브리드가 미국 시장에서 더 중요한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촘촘히 갖춘 현대차그룹이 이번 '3위 등극'을 발판으로 미국 시장 지형 변화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열렸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GM과 포드 같은 전통 업체의 지위가 워낙 공고했던 만큼 현대차그룹의 포드 추월은 상징성이 크다”며 “한쪽 파워트레인에 집중하기보다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 업체가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유리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