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조율'이라는 핑계, 사법부 독립에 던진 돌 [데스크 칼럼]
입력 2026.09.27 06:00
수정 2026.09.27 06:53
2011년 선례 부정하고 '관행' 핑계 삼는 여권의 억지
권력의 절제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사법의 정치화뿐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성수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 헌법 제104조 제2항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문장은 더없이 명확하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사법부를 아래에 두고 흔들지 못하도록, 삼권분립의 원칙 위에 세워둔 견제 장치다.
하지만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청와대와 여권의 반응은 유감스럽다.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이유로 제청을 거부하고 대법원장 사퇴까지 압박하는 모습은, 헌법이 지켜온 사법부 독립의 선을 넘고 있다.
여권은 "사전 조율 없는 제청은 전례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2011년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사전 조율 없이 이상훈 대법관을 서면으로 제청했지만, 이후 협의를 거쳐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됐다. 사전 조율은 기관 간 마찰을 줄이기 위한 '정치적 관행'일 뿐, 헌법상 의무가 아니다. 관행을 명분 삼아 "대통령이 승인한 사람만 올리라"고 요구하는 모양새로 비친다면, 헌법이 보장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 임명권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참고할 만한 장면은 2003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최종영 대법원장의 사례다. 당시 청와대는 대법원의 인적 쇄신을 원했기에 최 대법원장이 검토하던 대법관 후보군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최 대법원장이 기존 후보군에 있던 김용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했고, 노 대통령은 사법부 수장의 독립적인 제청권을 존중해 결국 수용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종 결정권은 제청권자에게 넘겨주었던 2003년의 선택. 권력의 절제가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진짜 방파제임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스스로 '노무현의 후예'라 부르는 현 정권이 20여년 전 보여준 최소한의 절제조차 잊은 듯한 모습은 씁쓸함을 남긴다.
심지어 대법원장이 헌법적 근거를 들어 재제청 요구를 거절하자, 청와대가 연일 대법원장의 발언을 재반박하며 메시지전을 벌인 모양새도 볼썽사납다. 헌법기관 수장의 공식 판단에 고압적인 언사로 릴레이 반박을 퍼붓는 행태는, 행정권력이 사법부를 하부 조직처럼 길들이려 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현직'인 이재명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의 위험성을 더한다.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오랜 법의 원칙을 차치하더라도, 향후 본인 재판을 다룰 수도 있는 최고법원 인사에 권력이 개입하는 모습은 사법의 공정성을 뿌리째 흔든다. 사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권력자일수록 대법관 인선에서는 훨씬 엄격한 자제력을 보여줘야 한다.
1987년 체제 이후 우리 헌법은 과거 권력 중심의 사법 인사를 반성하며 '대법원장 제청-국회 동의-대통령 임명'이라는 견제 구조를 완성했다. 대법원장이 외압에 맞서 자율성을 지키려는 것은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헌법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몫이다. 청와대는 사법부를 길들이려는 시도를 멈추고 헌법에 적힌 제청권을 존중해야 한다. 권력의 절제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사법의 정치화와 법치주의의 퇴행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