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따로 빌리면 전기차값 낮추는데…법에 막힌 ‘소유권 분리’
입력 2026.09.22 11:32
수정 2026.09.22 11:32
‘전기차 배터리 소유권 분리, 새로운 모빌리티 시장을 열다’ 세미나
차량·배터리 별도 등록 근거 없어 구독·리스 사업 제약
업계 “자동차관리법 개정해야 금융·에너지·재활용 시장 열린다”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전기차 배터리 소유권 분리, 새로운 모빌리티 시장을 열다’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윗줄 왼쪽부터) 선진일 현대캐피탈 모빌리티사업추진팀장, 엄성복 한국자동차안전학회 부설연구소장, 정대진 KAMA회장, 손명수 국회의원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전기차의 초기 구매 부담을 낮추고 배터리 구독·리스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차체와 배터리의 소유권을 분리할 수 있도록 자동차관리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배터리를 차량에 딸린 부품이 아닌 독립 자산으로 인정해 금융과 에너지, 재사용·재활용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손명수 의원실은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전기차 배터리 소유권 분리, 새로운 모빌리티 시장을 열다’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손명수 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가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를 비롯해 배터리·금융·재활용 업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차량 가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구독이나 리스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 문턱을 낮출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현행 자동차 등록제도에서는 배터리가 차량에 포함된 부품으로 취급돼 차체와 배터리의 소유자를 달리해 등록하거나 배터리만 별도로 대여하는 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유권이 분리되면 소비자는 차체만 구매하고 배터리는 구독이나 리스 방식으로 이용하게 된다. 차량 가격에서 배터리 비용이 빠지는 만큼 전기차의 초기 구매 부담도 줄어든다. 배터리 성능 저하와 중고 전기차의 잔존가치 하락에 따른 위험은 배터리 소유·운영 사업자가 일정 부분 떠안는 구조다.
배터리의 활용 범위도 차량 운행 기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차량에서 분리된 이후에도 상태에 따라 재제조와 재사용, 재활용이 가능하다. 배터리를 차량에 종속된 부품이 아닌 생애주기 전체를 관리하는 독립 자산으로 전환하면 완성차와 배터리 기업뿐 아니라 금융사, 시험·인증기관, 에너지기업, 재활용기업까지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손명수 의원은 “전기차가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아가는 만큼 단순한 보급 확대를 넘어 국민이 부담 없이 전기차를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배터리 소유권 분리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초기 구매 부담을 낮추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대진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은 “현행 제도에서는 자동차와 배터리의 소유권을 분리해 등록·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어 배터리 리스와 구독 등 새로운 사업 확대가 제약받고 있다”며 “소유권 분리를 통해 금융과 서비스, 배터리 생애주기 관리를 결합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권소담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유럽연합의 배터리 여권 제도와 중국의 배터리 분리판매·임대 사례를 소개하며 국내에도 배터리 소유권을 제3자에게 공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논의 중인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에는 대여구동축전지 개념을 신설하고 차체와 배터리의 소유권을 분리해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자동차등록원부에 배터리 대여자를 표시하고 배터리 대여사업자의 사업 요건과 정보 제공, 성능평가 의무 등을 규정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소유권 등록만 분리한다고 시장이 곧바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차량 화재나 사고, 배터리 결함이 발생했을 때 차체 소유자와 배터리 소유자 가운데 누가 안전·사후관리 책임을 질지 명확히 해야 한다. 소유자가 다른 차체와 배터리를 하나의 차량으로 운행하는 구조에 맞춰 보험 상품과 사고 보상 기준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전기차 보조금을 차량과 배터리 가운데 어느 쪽을 기준으로 지급할지도 정해야 한다. 취득세와 자동차세 등 세제 적용 방식, 배터리 성능과 정비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관리체계, 계약 종료 이후 배터리 회수와 처분 기준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이종욱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는 소유권 분리를 토대로 등장할 수 있는 사업으로 배터리 구독과 배터리 뱅크, 배터리 교체·용량 유연화, 이동형 에너지, 차량과 전력망을 연결하는 V2G·VPP, 배터리 진단·가치평가, 생애주기 순환 등 7개 모델을 제시했다.
배터리 용량을 운전자의 필요에 따라 바꾸거나 여러 배터리를 묶어 전력망의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배터리 성능을 진단해 금융가치를 산정하고 차량 사용이 끝난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나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사업도 가능해진다.
이 교수는 “배터리 소유권 분리는 단순한 구매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배터리를 독립적인 에너지·금융·데이터 자산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라며 “표준화와 안전기준, 데이터 관리, 책임구조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는 박용선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과장과 안재훈 산업통상부 자동차과장, 박판규 기후에너지환경부 탈탄소녹색수송혁신과장, 김주영 LG에너지솔루션 서비스사업모델팀장, 선진일 현대캐피탈 모빌리티사업추진팀장 등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소비자 보호와 배터리 금융, 안전관리, 사용후배터리 유통, 배터리 교환 서비스의 제도화 방안을 논의했다.
토론 좌장을 맡은 엄성복 한국자동차안전학회 부설연구소장은 배터리 소유권 분리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관련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