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노동형 팬덤’ 가고 ‘음악의 공간화’로…음반 한계 넘는 엔터업계 [가요 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9.13 00:20
수정 2026.09.13 00:20
G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

실물 음반 둔화·순위 경쟁 피로감에 Z세대 팝업으로 눈 돌려

하이브 '더 시티'부터 성수동 컴백 팝업까지...체험형 현장 급증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수십 장의 CD를 사재기하고 밤낮으로 음원을 무한 재생하던 이른바 ‘노동형 팬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실물 앨범 판매량의 판매가 둔화하고, 차트 순위 경쟁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팬덤의 소비가 온라인 화면 속 수치에서 오프라인 현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음악을 귀로만 듣는 무형의 파일이 아닌, 직접 찾아가 공간 전체로 경험하는 ‘체험형 소비’로 자리잡는 것이다.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의 프로모션 우선순위는 이미 방송국에서 오프라인 거리로 옮겨갔다. 신보 발매 주간마다 성수동과 여의도 더현대 서울 등 핵심 상권에는 아티스트의 앨범 세계관을 그대로 재현한 대형 팝업스토어가 줄지어 들어선다.


이 공간들은 단순한 음반 판매처를 넘어서 앨범 콘셉트를 시각화한 전시 세트장, 포토존, 그리고 현장에서만 단독으로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굿즈와 F&B를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팬들은 몇 시간씩 대기 줄을 서서 팝업에 입장하고 현장 인증 사진을 SNS에 공유한다. 음반 밀어내기식 마케팅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팝업스토어는 발매 초기 대중적 화제성과 고마진 MD 매출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가장 강력한 캐시카우가 됐다.


방탄소년단 'BTS 더 시티 아리랑 서울' ⓒ빅히트뮤직

이러한 공간 전략을 도시 단위로 확장한 대표적 모델이 하이브의 ‘더 시티’(The City) 프로젝트다. 콘서트가 열리는 특정 기간 동안 공연장 울타리를 넘어 도시 전체의 인프라를 아티스트 IP로 채우는 모델이다. 도시 내 호텔과 협업한 테마 객실, 지역 명소와 연계한 팝업스토어, 아티스트 맞춤형 식음료 코스, 테마파크 야간 파티까지 팬덤의 이동 경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료 소비 생태계로 묶어낸다. 단발성 콘서트 티켓 판매에 머물던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숙박·관광·유통을 아우르는 복합 2차 판권 사업으로 진화시킨 사례다.


이 같은 ‘음악의 공간화’ 열풍은 기획사를 넘어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으로까지 번졌다.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성수동 앤더슨씨에서 진행되는 ‘스포티파이 하우스 서울’은 글로벌 빅테크가 K-엔터의 공간 문법을 플랫폼 단위로 흡수한 상징적 장면이다.


스포티파이는 앱 안에서 작동하던 알고리즘과 개인화 추천 기술(믹스, 블렌드, 잼, 데이리스트 등)을 화면 밖으로 끄집어냈다. 방문객이 자신의 음악 취향을 직접 확인하는 맞춤형 전시 부스, 플랫폼 브랜딩을 입힌 식음료 바, 굿즈를 판매하는 공간 등을 배치했다. 여기에 인디 밴드부터 정상급 케이팝 아티스트까지 아우르는 라이브 무대를 더해 온라인 앱의 정체성을 도심 한복판에 물리적으로 세웠다.


'스포티파이 하우스 서울' ⓒ데일리안DB

현장에서 만난 홍현기 하우스 마스터는 “사용자가 앱에서만 경험하던 음악 취향과 아티스트와의 교감, 팬덤 활동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며 “단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넘어 팬과 아티스트를 연결하는 글로벌 문화 거점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화면 속 스트리밍 구독만으로는 치열한 플랫폼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충성도 높은 국내 리스너와 K-엔터 IP를 플랫폼 생태계에 묶어두려는 락인(Lock-in) 전략이다.


결국 디지털 음원이 팬덤을 유입시키는 입구 역할을 맡고, 실제 고부가가치 수익과 이용자 락인은 오프라인 현장 경험에서 완성되는 구조다.


물론 과제도 적지 않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팝업스토어로 인한 팬덤의 피로감,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관료와 시공비 대비 실질적인 투자수익률(ROI) 검증, 그리고 대규모 자본을 투입할 수 없는 중소 기획사와의 공간 양극화 문제는 엔터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소비 중심축이 스크린에서 물리적 공간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되돌리기 어렵다. 이제 엔터사와 플랫폼의 경쟁력은 ‘누가 더 스트리밍 횟수를 많이 늘리느냐’가 아니라, ‘누가 팬들의 시간을 오프라인 현장에 더 오래, 밀도 있게 머물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