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中 드라마시장 강타하다
입력 2026.09.06 07:07
수정 2026.09.06 07:07
中 지상파 위성TV 황금시대에 사상 처음 AI 제작 장편 드라마 내보내
바이트댄스 ‘시댄스’ 이용, 제작비를 실사 영화의 10% 수준으로 낮춰
‘중국의 할리우드’ 헝뎬에서는 전통 드라마서 AI 제작 드라마로 선회
AI 배우 ‘맹활약’하는 탓에 실제 배우들이 대거 '실업자 신세'로 전락
지난 4월 9일 중국 중부 허난성 정저우의 다즈 영화·TV드라마 제작기지에서 직원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마이크로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지난달 31일 TV 황금시간대인 8시, 중국 후난위성TV(湖南衛視)에서는 ‘특이한’ 드라마가 전파를 탔다. 제목은 ‘후서유기’(後西遊記). 중국의 고전소설 서유기의 뒷이야기를 다룬 30부작, 회당 40분짜리 장편 드라마다. 특이한 점은 드라마에 진짜 배우가 한 명도 없고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배경·대사·효과음은 인공지능(AI)이 제작한 것이다. 주인공 손오공이 태어난 화과산(花果山)과 구름, 요괴, 법술 등 시각적 상상력이 중요한 신화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AI 제작의 장점을 살리기에는 유리한 측면도 작용했다.
망고(芒果)TV가 제작한 이 드라마는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 투입되는 제작진과 배우, 로케이션 촬영없이 오직 틱톡의 모기업 바이트댄스(字節跳動·ByteDance)의 영상 AI모델 ‘시댄스(SeeDance) 2.5’와 ‘GPT 이미지 2’라는 두가지 인공지능(AI) 도구만을 사용했다. 제작진은 제작 과정에서 109개의 캐릭터 디지털 자산과 143개의 장면 디지털 자산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 기간은 약 4개월, 제작비는 전통 실사 TV드라마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승인해 지상파 위성TV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전편 AI 생성 드라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첫 방송 성적은 리얼타임(실시간) 최고 시청률 1.5%를 넘기며 같은 시간대 성(省)급 위성TV 프로그램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덕분에 제작사인 망고TV는 지난 31~1일 이틀 연속 주가가 20%씩 치솟으며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AI로 제작된 드라마와 e커머스(전자상거래)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가상 배우들과 쇼호스트·인플루언서 등 인터넷 방송인이 중국 드라마·방송관련 업계를 빠른 속도로 잠식하는 바람에 실제 배우와 e커머스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CNN방송 등이 지난 29일 보도했다. 값싼 비용으로 실제 배우나 인터넷 방송인과 매우 흡사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AI 기술이 확산하면서 오히려 인간들이 설 자리를 잃고 밀려나고 있는 셈이다.
중국 AI 장편드라마 ‘후서유기’ 포스터. ⓒ 후난 위성TV 캡처
AI로 제작되는 드라마는 ‘마이크로드라마’(microdrama·微短劇)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018년 중국에서 시작된 마이크로드라마는 1~2분의 매우 짧은 드라마가 50~80회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구조다. ‘K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던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 복수 같은 ‘막장’ 코드가 숨쉴 틈도 주지 않고 쏟아져 ‘개미지옥’처럼 시청자들을 헤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까닭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중국 인터넷시청각프로그램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에서 공개된 마이크로드라마는 약 12만 8000편에 달한다. 이중 12만 1600편(95%)이 AI를 활용해 제작됐다.
기존 마이크로드라마도 배우와 스태프가 하루 18~20시간씩 강행군하며 일주일 안팎에 장편영화 분량을 찍어낼 만큼 비용을 극도로 낮춘 산업이다. 그런데 AI가 이보다도 훨씬 저렴하게 콘텐츠를 만들어내면서 실사 제작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AI의 최대 무기는 ‘가성비’다. 중국의 한 제작사에 따르면 보통 수준의 120분짜리 마이크로드라마는 5명으로 구성된 팀이 AI를 활용해 일주일이면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소요되는 제작비는 1만 5000위안(약 303만원) 수준이다. 일반적인 실사 작품 최저 제작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칭화(淸華)대 메타버스연구실의 한 관계자는 “2024년만 해도 3~5분짜리 작품 한 편을 제작하는 데 5명이 3개월가량 걸렸다”며 “하지만 이제는 한 명이 하루나 이틀이면 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도 분당 600~800위안으로 실제 배우를 활용하는 제작비의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저비용·고효율을 이끌어낸 ‘일대공신’은 바이트댄스의 영상 생성 AI 모델 '시댄스 2.0' 덕분이다. 더욱이 올해 공개된 이 모델은 고품질 영상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마이크로드라마와 온라인 콘텐츠 제작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에 힘입어 AI 제작 콘텐츠는 급속도로 확산됐다. ‘중국의 할리우드’로 불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드라마 촬영지인 저장(浙江)성 헝뎬(橫店)에서는 지난해 드라마 제작의 중심이 전통적인 드라마에서 마이크로드라마 형식으로 빠르게 선회했다. 마이크로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가 4000명을 넘어섰고 관련 산업 규모도 전년 대비 237% 성장했다. 한 감독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에 마이크로드라마를 최대 20편까지 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중국 저장성 헝뎬의 마이크로드라마 제작현장에서 한 촬영기사가 휴대전화 시청에 최적화된 화면을 촬영하고 있다. ⓒ CNN방송 캡처
중국 시장조사업체 데이터아이(DataEye)에 따르면 지난 5월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抖音)에서 인기 상위 100위에 오른 애니메이션 드라마 가운데 89편이 AI로 제작됐다. 더우인에서만 AI 마이크로드라마 신작 22만편이 공개돼 모두 5000억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AI 마이크로드라마 시장도 폭발적인 성장하고 있다. 데이터아이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전체 AI 마이크로드라마·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200억 위안)보다 138% 성장한 400억 위안 규모로 추산된다.
실제로 마이크로드라마 배우 겸 제작자들은 ‘시댄스 2.0’ 출시 이후 더 이상 일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배우 준린(예명·Junlin·24)은 올해 봄까지만 해도 한 달에 25일가량 촬영했지만 지난 6월에는 7일에 그쳤다. 베이징의 한 마이크로드라마 배우는 모델 출시 전까지 매주 세 작품을 촬영했지만 이후 “모든 일이 한꺼번에 사라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에 4편씩 출연하던 배우 류위잔(劉玉展·29)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음식 배달을 하고 있다. 일부 배우들은 과거 수천위안을 받던 주연 역할을 하루 300위안에 제안받기도 했다.
중국 콘텐츠 업계에서는 배우의 외모와 목소리, 연기 방식을 AI 학습 데이터로 만드는 작업을 사람의 특징을 추출한다는 의미에서 ‘증류’(distil)라고 부른다. 배우의 기존 영상과 음성 자료를 AI에 넣어 얼굴 표정과 입 모양, 몸짓, 음색과 억양, 말투 등을 디지털 정보로 만드는 방식이다.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실제 배우가 촬영장에 나오거나 새 대사를 녹음하지 않아도, 배우가 직접 말하고 연기하는 것처럼 AI가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배우가 자신을 대체할 디지털 복제본을 직접 훈련한 뒤 제작사는 원본인 사람을 해고하고 복제본인 ‘AI 배우’만 계속 사용하는 구조다. 처음 AI 복제 계약을 받아들인 배우들은 다른 배우의 일자리까지 빼앗는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제는 이런 변화를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배우뿐 아니라 일반 직원에게 업무 노하우를 AI에 가르치게 한 뒤 해고하는 사례도 있다. 저장성 항저우(杭州)에서는 AI에 대체됐다고 주장한 직원에게 회사가 추가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나왔다.
ⓒ 자료: 중국 국가광전총국(國家廣電總局)
AI 제작 붐은 드라마 뿐 아니라 라이브커머스(인터넷 생방송 판매)산업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AI 가상 배우 뿐 아니라 AI 가상 쇼호스트·인플루언서들도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AI 쇼호스트는 24시간 상품 판매가 가능하면서 비용은 실제 진행자의 약 10%에 불과하다. 3월 기준 중국 2위 e커머스 플랫폼 징둥(京東)을 이용하는 7만여명 상인이 가상 쇼호스트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대표 검색포털에서 AI기업으로 변신한 바이두(百度)는 유명 인플루언서 뤄융하오(羅永浩)의 AI 쇼호스트가 여러 상품군에서 본인보다 높은 매출을 올렸으며, 7시간 만에 5500만 위안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AI 가상 배우와 AI 가상 쇼호스트·인플루언서들이 마이크로드라마와 라이브커머스 방송 등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베이징(北京)대 국가발전연구원이 올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마이크로드라마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69만명이며,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주된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1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헝뎬월드스튜디오는 AI 확산으로 기존 촬영 일감이 대폭 줄어들고 있는데 대한 자구책으로 관광객들이 마이크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체험형 상품을 내놓았다. 헝뎬월드스튜디오는 30㎢(약 909만 3750평) 부지에 100개가 넘는 촬영 구역을 갖추고 있으며 중국 5000년 역사를 재현한 국가 5A급 관광지이기도 해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곳이다.
ⓒ 자료: 중국 국가광전총국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헝뎬월드스튜디오는 지난달부터 관광객을 대상으로 직접 마이크로드라마의 주연을 맡아 출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참가자는 최소 218위안을 내면 1시간 동안 연기를 체험할 수 있다.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포함한 상품은 388위안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기업 등을 겨냥해 3800위안과 1만 2000위안짜리 단체 상품도 마련됐다.
헝뎬에서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배우와 스태프들은 흔히 ‘헝퍄오’(横漂)라고 불리는 데, AI 확산으로 인해 대규모 실업 위험에 직면한 이들에게 관광객 대상 마이크로드라마 체험이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감독들은 과거 헝뎬에서 엑스트라 배우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연기 경험이 없는 관광객들을 지도한다. 감독이 먼저 시범을 보이면 관광객이 그대로 따라 하는 식이다. 눈을 깜빡이지 말아야 할 순간이나 웃음을 참는 방법 등 세세한 연기 요령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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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규환 국제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