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소주, 60년 뒤 77배 벌어졌다…한국은 왜 ‘희석식’만 남았나
입력 2026.09.01 07:29
수정 2026.09.01 07:29
韓은 대량생산·日은 지역 증류주…엇갈린 산업 기반
원소주 열풍에도 대중화 한계…증류식 비중 0.6%
종가세·저가 술 인식도 장벽…“일상주로 키워야”
지난 2021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삼씨오화에서 연구원들이 국립농업과학원이 지역쌀을 활용해 연구개발한 흑삼·허브·오크 숙성 증류주 등 우리 전통주를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국내 소주 시장이 오랫동안 희석식 중심으로 굳어진 가운데, 일본과는 전혀 다른 시장 구조를 보이고 있다. 같은 소주를 대중적으로 소비해온 두 나라지만 지난 60년간 서로 다른 산업 환경과 소비문화가 형성되면서 증류식 소주의 위상도 크게 엇갈렸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TASIS)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희석식·증류식 소주 출고량은 총 79만7523㎘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참이슬·처음처럼과 같은 희석식 소주는 79만2912㎘로 전체의 99.4%를 차지한 반면, 증류식 소주는 4611㎘로 비중이 0.6%에 그쳤다.
반면 일본 국세청의 2024년 과세이출수량에 따르면 일본 전체 소주 출고량은 65만2212㎘로 한국보다 적었지만, 한국의 증류식 소주와 유사한 단식증류소주는 35만5279㎘로 전체의 54.5%를 차지했다. 희석식 소주와 유사한 연속식증류소주는 29만6933㎘로 45.5%였다.
다만 양국 통계에는 1년의 시차가 있다. 한국은 2025년 국세청 출고량을, 일본은 주세 과세를 기준으로 집계한 최신 연간 자료인 2024년 과세이출수량을 활용했다. 양국 모두 세무당국이 집계한 제조장 출고 물량을 기준으로 했으며, 집계 기준이 다른 금액은 비교에서 제외했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소주가 오랫동안 대중주로 자리 잡은 국가라는 점에서 비교 대상이 됐다. 식문화와 주류 소비에서 소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동아시아권에서 자체적인 소주 시장을 형성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어 양국의 시장 구조를 비교하기 적합하다.
그 중에서도 증류식 소주는 원료와 산지, 제조방식에 따라 차별화가 가능해 부가가치가 높은 주종으로 꼽힌다는 점에 주목했다. 쌀 등 농산물과 지역성을 활용한 상품 개발이 가능하고, 숙성·원료에 따라 다양한 가격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석식 소주와 차이가 있다.
서울 강남구 GS25 편의점에서 직원이 '원소주 스피릿'을 진열하고 있다.ⓒ뉴시스
◇ 원소주가 불붙인 증류식 붐…“3년 만에 식은 열기”
국내에서도 증류식 소주의 가능성이 엿보인 시기는 있었다. 가수 박재범이 2022년 선보인 증류식 소주 ‘원소주’가 대표적이다. 당시 더현대서울 팝업스토어에는 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의 ‘오픈런’이 이어졌고, 초도물량 2만병이 일주일 만에 모두 팔리는 등 품귀현상까지 빚었다.
박재범이라는 높은 인지도에 희소성과 차별성을 앞세운 마케팅 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 관련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연예인이 앞서서 기존 소주와 다른 ‘힙한 주류’ 이미지를 내세운 데다 초기 판매 물량까지 제한하면서 젊은 소비층의 구매 욕구를 자극한 점이 주효했다.
실제로 당시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주세와 교육세를 제외한 증류식 소주 출고금액은 2018년 333억원에서 2022년 1412억원까지 빠르게 증가했다. 원소주를 비롯한 특정 브랜드의 흥행과 프리미엄 소주에 대한 관심이 맞물리면서 희석식 소주와 다른 술을 찾는 움직임이 확대됐다.
하지만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출시 초기 판매를 견인했던 희소성과 화제성이 생산·유통 확대와 함께 약해진 데다 높은 가격이 반복 구매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원스피리츠 매출은 2022년 278억원에서 2023년 132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국세청은 최근 지역특산주류 출고량이 2021년 1만6763㎘에서 지난해 2만1048㎘로 25.6%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역특산주류 통계에는 증류식 소주뿐 아니라 탁주와 약주, 일반증류주, 리큐르 등 여러 주종이 함께 포함돼 증류식 소주의 성장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하이트진로의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브랜드 ‘일품진로’ 제품군.ⓒ하이트진로
◇1965년부터 갈린 길…한국은 희석식, 일본은 지역 증류주
그렇다면 원소주처럼 증류식 소주가 주목받고도 대중시장으로 확장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배경에는 오랫동안 희석식 중심으로 굳어진 국내 소주 산업의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역시 1960년대 이후 서로 다른 정책과 생산·유통 환경이 형성되면서 벌어졌다.
한국은 1965년 양곡관리 정책으로 쌀을 원료로 한 증류식 소주 제조가 제한되면서 희석식 소주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1990년대 초 관련 규제가 풀렸지만 이미 대량생산과 전국 유통망을 갖춘 희석식 소주가 대중주로 자리 잡은 뒤였다.
반면 일본은 규슈를 중심으로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단식증류 문화가 자리 잡았다. 가고시마는 고구마, 이키는 보리, 구마모토는 쌀을 주원료로 삼으면서 산지별 증류주 시장이 발달했다. 이후 2000년대 본격소주 붐을 거치며 단식증류소주 출고량이 연속식증류소주를 넘어섰다.
관련 업계 집계에 따르면 일본 단식증류소주 생산의 95% 이상은 규슈에 집중돼 있지만 소비량은 규슈와 수도권이 각각 약 9만2000㎘로 비슷한 수준이다. 산지 중심의 생산 기반이 수도권 소비로 이어지며 전국 시장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원료별 시장도 뚜렷하게 나뉜 상황이다. 일본주조조합중앙회 집계에 따르면 2024년 단식증류소주 가운데 보리 소주는 14만9086㎘, 고구마 소주는 14만6187㎘로 양대 축을 이뤘다. 쌀 소주도 2만9093㎘에 달했다.
독도소주 ⓒ케이알컴퍼니
◇ 세제·소비문화 격차…대중화 못한 증류식 소주
양국의 차이는 과거 생산 기반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재의 세제 역시 서로 다른 시장 구조를 고착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같은 소주라도 생산 방식과 가격대가 다른 만큼, 과세 방식에 따라 증류식 소주의 시장 경쟁력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소주에 출고가격의 72%를 주세로 부과하는 종가세 방식을 적용한다. 여기에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가 가산된다. 같은 세율을 적용받더라도 원료비와 제조비가 높은 증류식 소주는 출고가격이 높아질수록 절대적인 세부담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다.
반면 일본은 알코올 도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 방식이다. 25도 소주의 경우 연속식과 단식증류 여부에 관계없이 1㎘당 25만엔의 주세가 부과된다. 제조원가가 높은 단식증류소주 역시 같은 도수라면 연속식증류소주와 세액이 같다.
다만 업계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증류식 소주 시장이 77배까지 벌어진 원인을 세제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바라보고 있다. 생산 기반과 유통망뿐 아니라 60년간 형성된 소비문화와 지역 술에 대한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소주=서민 술’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증류식 소주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고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는 증류식 소주가 대중주로 자리 잡는데 오늘날까지 큰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문제는 제한적인 소비층이 시장 확대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사들이 다양한 제품을 내놓기 어려워지면서 국내 증류식 소주는 일본과 달리 원료별 시장을 형성하지 못한 채 프리미엄 틈새시장에 머무르고 있다. 일본과 달리 대중적인 주류로 외연을 넓히지 못했다.
이에 전통주 업계에서는 국내 증류식 소주가 일본처럼 하나의 독립적인 시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제와 제도 개선뿐 아니라 소비문화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위스키와 하이볼을 중심으로 젊은 소비층에서도 원료와 향, 음식과의 조합을 따지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증류식 소주 역시 원료와 제조방식의 차이를 알리고 한식과의 페어링 등 소비 접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증류식 소주가 한때의 유행이나 선물용 고가 술에 머물러서는 시장이 커지기 어렵다”며 “소비자가 음식이나 취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는 일상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아야 생산자들도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