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집착 내려놓고 위험감소부터"…전문가들이 제시한 한반도 '트릴레마' 극복법
27일 '2026 국제 한반도 포럼'…총균쇠 저자 기조강연
"핵고도화·북러관계 강화 등으로 비핵화 해법 한계"
"평화체제 진전 통해 북핵 문제 장기 해결해야"
"한미연합훈련 축소, 평화체제 구축 기회로 활용"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 호텔에서 '국제질서 대변환기,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열린 '2026 국제 한반도 포럼' 개회식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지난해 광복절을 계기로 대북정책의 방향으로 '평화공존'을 제시한 지 1년을 넘긴 가운데, 전문가들도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노선과 핵능력 고도화 등 달라진 한반도 정세를 진단하며 북미대화 재개와 평화체제 구축을 강조했다.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6 국제 한반도 포럼'에서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노선과 핵능력 고도화로 한반도의 군사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평화공존을 구체화할 방안이 논의됐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개회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포용적·안정적·책임 있는 평화공존'의 3대 청사진을 언급하며,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북미대화와 4자 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특히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결정하고 연내 북미대화 재개 의지를 보인 것을 두고 "위기가 아닌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며 북미대화를 위한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통해서 북미 대화를 성사시켜야 한다"며 미국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이 주도적·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대화가 남북미중 4자 대화로 이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조강연에 나선 '총·균·쇠'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UCLA 명예교수는 한반도에서도 남북 간 공동의 문제를 중심으로 대화의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핀란드와 러시아의 평화공존 사례를 들며 지속적 대화를 통해 양측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한이 기후변화, 어족자원 고갈, 농업·수산업 등 공동의 과제에서 협력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비공개적인 대화를 통해서 공동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면 양측은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 호텔에서 '국제질서 대변환기,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열린 '2026 국제 한반도 포럼' 개회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진 발표 세션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적대적 두 국가 노선 등 변화한 정세를 고려할 때 기존의 비핵화 중심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 조정과 평화체제 구축, 군비통제 등을 통해 군사적 충돌 위험을 낮추면서 북핵 문제의 장기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 비핵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트릴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한미동맹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축소 결정이 과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출발점이었던 훈련 연기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이를 평화체제 구축의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 교수는 "2018년, 2019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경험은 2017년 12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연기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제 해석"이라며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축소 결정을 내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다만 이번 한미연합훈련 축소가 과거와 달리 한국발이 아닌 미국발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국이 협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고, 미국 내부에서도 훈련 중단을 둘러싼 논쟁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미 동맹을 어떻게 조정할지 국내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총, 균, 쇠'의 저자로 저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 UCLA명예교수가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6 국제 한반도 포럼에서 '국가의 선택: 분단에서 평화공존으로'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노선과 핵능력 고도화로 한반도 문제 해결이 과거보다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특히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공세적 태도가 이어질 경우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이 더 커지기 전에 선제공격을 감행할 유인이, 북한은 미국의 공격으로 패망하기 전에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유인이 각각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부원장은 "남북·북미 간 아무런 소통이 안 이뤄지고 어디까지가 레드라인인지 기본적 합의가 없는 게 한반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보다는 "평화체제 진전을 통해 북핵 문제 진전과 해결을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게 현재로서 접근 가능한 유일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제프리 루이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핵무기 규모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 이라크·리비아·이란 사례에 대한 북한의 인식 등을 고려할 때 비핵화를 당장의 목표로 삼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김정은은 비핵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보다 핵무기의 존재감을 줄이는 방향을 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루이스 연구원은 이에 따라 북한과의 분쟁 위험을 줄이는 데 우선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북한과 함께 분쟁의 위험을 줄이는 방향에 대해 대화해야 하고 검증을 지나치게 강조해선 안 된다"며 강제 이행보다 북한이 합의에 계속 머물도록 설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철 서울대 교수는 선비핵화 방식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만큼 위험감소와 군비통제를 중심으로 한 '평화 선도형 북핵 해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핵군축보다는 위험감소와 군비통제 개념을 장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한국 정부가 먼저 포괄적인 평화 선언과 선제적 평화 조치를 통해 북한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