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 공식 선언…9개월분 예산으로 민생사업 중단
입력 2026.08.05 11:09
수정 2026.08.05 11:09
도지사·고위공직자 경비 삭감 등 4대 재정 정상화 방안 발표
취득세 30% 감소, 복지예산 49%·고령인구 급증 등 구조적 문제 직시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재정상태를 '비상 상황'으로 공식 선언하고, 도지사·고위공직자 경비 삭감, 낭비성 예산 차단, 조직 체질 개선, 세입구조 제도 개선 등 4대 재정 정상화 방안을 내놨다. 추 지사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2~3년 뒤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또다시 지방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구조적 재정위기를 인정하고 근본적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추 지사는 5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경기도 재정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두고 과장이나 명분 쌓기 아니냐는 오해가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금 경기도는 새로운 공약사업을 추진하기는커녕 이미 진행 중인 사업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민선 8기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당수 민생사업과 필수사업의 올해 예산을 12개월이 아닌 9개월분만 편성했다"며 "취임 직후에야 이 중대한 사실과 구체적인 재정 실상을 보고받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직사회 내부에서조차 재정상황에 대한 공유가 없고, 심각성마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추 지사는 "시간이 흐른다고 경기도 재정 상황이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불과 2~3년 뒤에는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또다시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더 늦기 전에 재정을 바로 세우고 도민의 삶과 경기도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결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는 2025년 한 해 동안 총 3차례에 걸쳐 약 9430억 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이는 지방채 발행 한도인 9460억 원의 99.6%에 육박한 수치다. 지방채 발행은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에 더해 지난해 5월에는 용도가 정해진 기금까지 손쉽게 다른 용도로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조례를 개정했다. 조례 개정 이후 3차 추경을 통해 각종 기금에 있던 약 5588억 원의 재원을 통합계정을 거쳐 일반회계 등으로 끌어다 사용했다. 예를 들면 남북교류와 평화협력 사업을 위해 조성한 남북협력기금 384억 원 가운데 340억 원을 통합계정에 예탁 이전했다. 남북협력기금은 이제 44억 원만 남게 됐다.
추 지사는 "지방채를 발행하고 각종 기금까지 끌어다 쓰며 눈속임으로 당장의 위기를 넘겼지만, 그렇게 하고도 올해 예산조차 온전히 편성하지 못했다. 미완(未完)의 미생(未生) 예산이다"라며 "그 대가는 민생예산의 부실로 이어졌다"고 현재의 재정 상황을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노인장기요양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 육성 △친환경 우수 농축산물 학교급식 지원 △경기도 산후조리비 지원 △도교육청 유·초·중·고등학교 급식비 지원 △가족돌봄수당 지원 △농작물재해보험 가입지원 △시내버스 공공관리제 운영지원 등 다수 사업의 마지막 3개월 분 예산이 편성되지 못했다.
추 지사는 "예산담당부서 보고에 따르면 올해만 약 7700억 원 규모의 감액추경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제는 마른 땅에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것처럼 더 이상 끌어다 쓸 재원도, 위기를 미룰 여력도 남아 있지 않다.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가리는 동안 경기도 재정을 바로잡을 골든타임마저 놓쳐버리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추 지사는 "지금의 세입과 세출 구조를 방치한다면 재정위기는 해마다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경기도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먼저 경기도의 전체 예산은 약 41조 7000억 원이지만 도가 정책적 판단에 따라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약 3조 5000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복지사업, 국비 매칭사업, 시·군 조정교부금 등 사용처와 부담 규모가 이미 정해져 있다.
서울시는 개인·법인 지방소득세 등 비교적 안정적인 세원을 갖고 있으나, 경기도에는 지방소득세가 없다. 경기도는 보통교부세를 받지 못하는 불교부단체이면서 전체 도세의 절반 이상을 부동산 거래에 따라 크게 변동하는 취득세에 의존하고 있다. 실제 2022년 약 11조 원에 달했던 경기도 취득세 수입은 올해 8조 원 수준으로 줄어 약 30% 감소했다.
기대를 모았던 3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취득세 수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공공임대주택 비율 확대와 LH 직접개발 방식으로 인해 당초 6500억 원으로 예상됐던 취득세 수입은 현재 2300억 원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경기도는 신도시 개발로 교통, 소방, 기반시설 확충 등 막대한 비용 부담을 안게 됐다.
추 지사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유치를 위해 경기도가 전력·용수·교통망 확충에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투자를 해도 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법인지방소득세는 시군에 귀속되는 현실도 토로했다. 인프라 투자를 주도한 것은 경기도지만 세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구조적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출 측면에서도 경기도의 복지예산은 전체 예산의 약 49%에 달하며, 현재 증가세가 이어지면 머지않아 60%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이어졌다. 2022년 이후 경기도 전체 인구가 약 30만 명 늘어났는데 이 기간 동안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배인 약 60만 명 증가했다. 최근 5년간 경기도의 고령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6.8%로 전국 평균 5.4%보다도 높다.
추 지사는 "오늘 이 시간부로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한다"며 경기도의 구조적 재정문제 해결을 위한 4대 재정 정상화 방안을 밝혔다.
추 지사는 "도지사인 저부터 책임을 다하겠다"면서 첫 번째로 도지사를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업무추진비 등 각종 경비를 감액하겠다고 밝혔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을 즉각 시행하겠다고도 했다.
두 번째로, 낭비성 예산의 편성과 집행을 전면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방안으로 일회성·선심성 행사와 불요불급한 사업을 중단하고 관행적으로 반복돼 온 연구용역과 민간위탁, 대행사업도 재평가 후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단, 재정위기를 이유로 민생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추 지사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 취약계층 보호 등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예산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로 공직 조직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며 참모조직 재정비 및 실·국과 공공기관의 조직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추 지사는 마지막 네 번째 방안으로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경기도의 세입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제도개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추 지사는 지방소비세 확충과 기업 유치에 따른 세수의 합리적 배분, 국고보조사업의 과도한 지방비 부담 개선 등을 개혁과제로 제시했다.
추 지사는 "재정위기가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닌 만큼 이를 바로잡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과 고통이 따를 것"이라면서도 "그 고통을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삶에 떠넘기지 않겠다. 불필요한 곳에서 먼저 줄이고 더 큰 책임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감당하는 공정한 재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의 어려움을 다음 세대의 빚으로 넘기지 않고 더 나은 경기도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겠다"면서 경기도의회와 31개 시군의 협력도 요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