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추정제 도입에 배달업계 '촉각'…노무비 부담 커질까[규제의 청구서①]
입력 2026.08.05 07:00
수정 2026.08.05 07:00
사업자가 '근로자 아님' 직접 입증해야
플랫폼·영세 음식점주 노무·법무 부담 우려
배달을 하고 있는 배달 라이더 ⓒ 게티이미지뱅크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 등 제도 밖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와 여당의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노동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업과 소상공인, 소비자 등 시장 전반에 예상치 못한 비용과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데일리안은 '규제의 청구서' 시리즈를 통해 주요 노동 규제가 산업 현장에 미칠 영향과 그 비용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짚어본다.<편집자주>
정부가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함께 '근로자 추정제' 도입을 패키지로 추진하면서 배달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사업자가 입증해야 하는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될 경우 배달 플랫폼 전반에 노무·법무 부담이 커질 수 있 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와 여당이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함께 패키지로 추진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근로자 추정제)'은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우선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업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는 퇴직금이나 연차휴가, 주휴수당, 최저임금 등을 요구하는 종사자가 먼저 자신의 근로자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이 같은 입증 책임이 사용자로 지목된 사업자에게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플랫폼 산업의 계약 구조가 일반 사업장보다 복잡하다는 점이다.
배달 서비스에는 플랫폼 기업과 지역 배달대행사, 음식점주, 배달 라이더가 동시에 관여한다.
라이더가 여러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켜고 원하는 주문만 선택하는 ‘멀티호밍’ 방식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근로자성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각 플랫폼 기업과 배달대행사, 입점업체 가운데 누가 실질적인 사용자에 해당하는지를 가리기 쉽지 않다.
플랫폼이 배차 알고리즘과 평가 기준을 운영했다는 이유로 사용자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음식점주가 플랫폼을 통해 라이더에게 배송을 요청했다는 이유 만으로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는지 등을 놓고 법적 다툼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사용자가 명확해져도 문제는 여전하다. 사용자로 지목된 사업자는 업무 지시나 근무시간 통제, 보수 결정 등 실질적인 지휘·감독 관계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노무사와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를 활용해야 할 수 있다. 이 경우 각종 노무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배달 플랫폼 업계 역시 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근로자 추정제가 시행되면 사회보험과 각종 노동관계법 적용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근로자성 분쟁에 대응하기 위한 노무·법무 비용도 함께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 같은 비용 증가가 배달비와 중개수수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무료배달 프로모션 축소는 물론 외곽 지역이나 심야 시간대 배달 서비스 조정 등 사업 구조 전반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배달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플랫폼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결국 그 부담은 플랫폼 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구체적인 법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4대 보험이나 각종 비용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등도 명확하지 않아 현장의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식당가에서 배달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뉴시스
제도가 도입될 경우 플랫폼에 입점한 영세 사업자들의 부담도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근로자로 인정되는 범위가 확대되면 퇴직금과 연차수당, 4대 보험 등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직접 입증하기 위해서는 노무·법무 비용도 함께 늘어날 수 있어서다.
특히 영세 사업장은 별도의 법무·노무 조직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고, 관련 대응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려워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상공인 측은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경우 1인당 연간 약 505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적용 대상이 870만명 규모로 확대되면 부담이 44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체 배달 기사를 운영하던 음식점들이 자체 인력을 줄이고 플랫폼이나 배달대행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운영 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경우 영세 음식점의 플랫폼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예외나 별도의 보호 장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법무팀을 통해 대응할 수 있지만 소상공인은 법률 지식도, 별도의 대응 조직도 없다”며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려면 결국 변호사나 노무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사실상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의 이 같은 반발 속 현재 해당 법안은 국회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에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노동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종사자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별다른 보완책 없이 입증 책임만 사업자에게 넘길 경우 현장 혼란이 커질 수 있다"며 "적용 대상과 사용자 범위, 비용 부담 주체 등을 놓고 충분하고 신중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자성 확대에 노란봉투법까지…배달플랫폼 '이중고' [규제의 청구서②]>에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