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현대 떠난 하이닉스…최태원의 48억 승부수 [나우앤덴]
입력 2026.07.31 10:50
수정 2026.07.31 10:59
2001년 계열분리·워크아웃, 2023년 적자에도 HBM 투자 지키며 반등
사상 최고가 대비 55% 급락 국면에 사재 매입…50억 미만 신속 집행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9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한국 경제의 AI 성장을 위한 어젠다’를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대한상의
25년 전인 2001년 8월 1일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는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대주주 현대상선 등이 경영권과 의결권 포기각서를 채권 금융기관에 제출하면서 개정된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독립기업이 됐다. 누적적자만 11조원, 곧이어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 체제에 들어갔다. 구형 장비를 개조해 신형 수준의 제품을 뽑아낸 '블루칩 프로젝트', 100일 안에 수율 50%를 달성하겠다던 '150 작전', 임직원 임금동결과 순환휴직으로 버틴 시절이었다.
25년이 흐른 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개인 명의로 처음 SK하이닉스 주식을 장내매수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0일 최 회장이 보통주 3620주(약 48억원 규모)를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워크아웃에서 HBM까지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2005년)한 하이닉스는 2011년 11월 SK텔레콤과 인수 계약을 맺었고 2012년 2월 최종 인수가 완료됐다. 당시 연간 2000억원대 적자를 내던 회사였다. 그해 3월 26일 이천 본사 출범식에서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최태원'이라 적힌 사원증을 받아들며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행사장을 채운 구성원들에게 "행복한 하이닉스를 만드는데 여러분이 같이 해주겠느냐"고 물었고,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온 일화는 유명하다.
첫 번째 승부수가 인수였다면 두 번째 분기점은 2023년이었다. 그해 SK하이닉스는 연간 7조730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회사는 상대적으로 반등이 늦었던 낸드 사업에서는 투자와 비용을 효율화하면서도,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양산과 HBM4 개발은 계속 진행했다. 그 선택은 이듬해부터 결실을 맺었다. 지난달 보통주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 1위에 일시적으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이달 10일에는 나스닥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까지 마쳤다. 지난 29일 발표한 2분기 실적은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치였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나스닥에 상장한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타워 전광판에 SK하이닉스 상장 광고가 표시되고 있다.ⓒ연합뉴스
48억원, 그리고 13일
그 흐름 위에 이번 매입이 놓인다. 상장사 임원이 50억원 이상을 거래하면 30일 전 사전공시 의무가 붙는데, 매입액은 이 기준을 살짝 밑도는 수준으로 정해졌다. 원래대로라면 회장이 대규모로 지분을 사겠다고 밝히려면 한 달 전에 계획부터 공시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주가가 흔들리는 국면에서는 그 한 달이 결정적이다. 매입액을 50억원 밑으로 맞추면 이런 절차 없이 당일 곧바로 매수하고 공시할 수 있다. 최 회장은 즉각 시장에 반응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시점도 상징적이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달 22일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291만9000원)를 찍은 뒤 전날 132만2000원까지 밀린 상태였다. 실적이 최고치를 새로 쓰는 동안 주가가 그만큼 흔들린 배경에는 개별 종목 수급 요인이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하루 단위로 2배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하락장에서 매도를 유발하는 구조여서 낙폭을 키웠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최 회장은 지난 17일 제주포럼에서 "메모리는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면 우상향으로 간다"며 "샀다 팔았다 하지 말고 가만히 갖고 있는 게 재산 보전에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의 발언 이후 반등했던 주가는 이후 다시 미끄러졌다. 레버리지 상품에 물린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지고 "손절해야 하나" 하는 하소연이 쏟아지던 그 기간에, 최 회장은 말을 거둬들이는 대신 자기 돈을 넣는 쪽을 택했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매입 다음 거래일인 31일 현재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20%가 넘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반등이 회장의 매입 때문인지, 실적 발표 이후 형성된 저가 매수세가 맞물린 결과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지만 최소한 급락을 멈추는 신호탄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살아남기 위해 임금을 묶었던 회사는 25년 뒤 그룹 회장이 자신의 돈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회사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