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뜬 중소돌, 국내에 닿기까지…에이티즈의 ‘거꾸로 성장’ [가요 뷰]
입력 2026.07.26 10:25
수정 2026.07.26 10:29
빌보드 200 정상 3회 뒤 첫 멜론 톱100
에이티즈, 해외 팬덤으로 성장 시간 확보…‘배드’로 국내 대중음원 돌파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케이팝(K-POP) 그룹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해외 공연장을 채우고 수백만장의 앨범을 판매하는 것과 국내 대중음원 시장에서 노래가 인기를 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에이티즈(ATEEZ)가 해외에서 확보한 팬덤으로 활동 기반을 다진 뒤 데뷔 약 8년 만에 이 간극을 넘어섰다.
에이티즈 ⓒKQ엔터테인먼트
25일 음원사이트 멜론에 따르면 에이티즈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미니 14집 ‘골든 아워: 파트 5’(GOLDEN HOUR : Part.5)의 타이틀곡 ‘배드’(BAD)는 이날 오전 2시 기준 톱100 21위를 기록했다. 발매 열흘 뒤인 지난 6일 81위로 처음 진입한 이후 일간 차트 21위, 주간 차트 33위까지 올랐다. 발매 직후 팬덤의 화력이 집중됐다가 순위가 하락하는 일반적인 보이그룹 음원의 흐름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순위가 상승했다.
시작은 멤버 산의 파트가 숏폼에서 화제가 되면서다. 곡 후반 산이 가슴을 튕기는 동작은 엑스(X·옛 트위터)와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에서 재편집·패러디됐다. 배우 이상이와 댄서 리정, 유튜버는 물론 키움 히어로즈 손힘찬 선수까지 퍼포먼스에 참여하며 아이돌 팬덤 밖으로 확산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국내외 성과를 나눠 목표로 삼기보다 완성도 높은 앨범을 만드는 데 집중해온 결과가 좋은 반응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에이티즈의 음악적 역량과 ‘배드’의 콘셉트가 시너지를 냈고, 팬을 비롯한 많은 이용자가 퍼포먼스에 호응하고 직접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와 챌린지를 만든 것이 흥행에 힘을 보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성적만 놓고 보면 에이티즈는 이미 정상급 그룹이다. ‘골든 아워: 파트 5’는 미국에서 22만8000장의 앨범 유닛을 기록하며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다. 2023년 ‘더 월드 에피소드 파이널: 윌’(THE WORLD EP.FIN : WILL), 2024년 ‘골든 아워: 파트 2’에 이은 세 번째 1위다. 2022년 이후 빌보드 200 톱10에 진입한 앨범도 9장으로, 2020년대 활동한 그룹 가운데 가장 많다.
해외 팬덤은 데뷔 초기부터 형성됐다. 2018년 중소 기획사 KQ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에이티즈는 이듬해 북미 5개 도시와 유럽 10개 도시 공연을 매진시켰고, 2022년 두 차례 월드투어로 43만명을 동원했다. 2024년에는 케이팝 보이그룹 최초로 미국 코첼라 무대에 올랐다. 월드투어 ‘투워즈 더 라이트: 윌 투 파워’(TOWARDS THE LIGHT: WILL TO POWER)는 북미에서 20만명, 유럽에서 18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2025년 시작한 ‘인 유어 판타지’(IN YOUR FANTASY)는 북미 5개 도시의 스타디움을 거쳐 일본·아시아·호주로 이어졌다.
해외 공연은 회사의 성장도 이끌었다. 소속사 KQ엔터테인먼트의 2025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은 2022년 464억원에서 지난해 1455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공연 매출은 1042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85% 늘었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9%에서 72%로 확대됐다. 공연 원가가 늘면서 영업이익은 125억원에서 101억원으로 줄었지만, 해외 투어가 회사의 외형 성장을 이끄는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스트레이 키즈 ⓒJYP엔터테인먼트
비슷한 성장 경로를 보인 대표적인 그룹은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다. 이들은 2022년 ‘오디너리’(ODDINARY)부터 2025년 ‘두 잇’(DO IT)까지 8개 앨범을 연속으로 빌보드 200 정상에 올렸다. 월드투어 ‘도미네이트’(dominATE)는 빌보드 집계 대상 31회 공연에서 관객 약 130만명을 모았다. 국내 공연장도 KSPO돔과 고척스카이돔을 거쳐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까지 커졌다. 지난해 10월 이곳에서 개최한 투어 피날레 ‘도미네이트: 셀레브레이트’(dominATE: celebrATE)는 추가 좌석까지 매진됐다.
그러나 스트레이 키즈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이들이 빌보드 200 정상에 오르기 직전 미국 리퍼블릭 레코드와의 협업을 확대하고 현지 법인 JYP USA를 설립했다. 국내외 활동을 장기간 병행할 유통·프로모션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다.
대부분의 중소 기획사 아이돌은 해외 인기가 국내 대중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카드(KARD)는 라틴 음악의 색채를 앞세워 유럽과 중남미에서 팬덤을 확보했지만 데뷔 8년 차였던 지난해에도 국내 음악방송 1위를 목표로 꼽았다. 결국 카드는 오는 28일 첫 정규앨범을 발매하고 마지막 월드투어를 진행한 뒤 회사와의 계약을 종료한다. 드림캐쳐(Dreamcatcher)도 해외 투어와 록 페스티벌로 먼저 팬덤을 쌓았으나 국내 음악방송 첫 1위까지 1924일이 걸렸다.
국내 음원차트 진입은 대학축제와 페스티벌 등 대중 접점이 넓은 무대로 활동 범위를 확장하고, 특정 멤버나 팬덤을 넘어 팀과 노래의 인지도를 높일 기반이 되기도 한다. 해외 성과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국내에서 에이티즈의 노래가 알려지기를 기다려온 팬들이 멜론 첫 진입을 별도의 성과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이티즈의 성장은 데뷔와 동시에 성과를 요구받는 신인 시장과도 대비된다. 기존 팬덤과 홍보망이 없는 중소 기획사 그룹은 여러 차례 앨범을 내며 반응을 기다릴 여력부터 부족하다. 그러나 에이티즈는 해외 팬덤을 통해 활동 시간을 확보했고, 그 시간이 국내 대중에게 닿을 새로운 기회로 연결됐다.
과제는 남아 있다. 산에게 집중된 화제성이 팀과 기존 음악으로 확장되고, 다음 활동에서도 국내 이용자의 관심이 유지돼야 한다. 그럼에도 ‘배드’는 국내에서 곧바로 뜨지 못하면 성공 가능성도 사라진다는 통념에 균열을 냈다. 해외에서 쌓은 팬덤이 그룹에 시간을 벌어주고, 그 시간이 뒤늦은 국내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