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부감은 이제 안녕…‘GG EZ’가 보여준 음악 소비의 변화 [가요 뷰]
입력 2026.07.21 09:50
수정 2026.07.21 09:51
AI 음악 정교함 높아질수록 ‘잘 만든 음악’만으로는 창작자 경쟁력 증명 어려워져
인공지능(AI) 음악을 둘러싼 평가의 순서가 달라졌다. 몇 년 전만 해도 ‘AI가 만든 노래’라는 사실이 먼저 알려지고 사람이 만든 음악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노래와 안무를 먼저 소비한 뒤 제작 과정에 AI가 활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지 이지’ 챌린지에 참여한 방탄소년단 정국 ⓒ틱톡
20일 애플뮤직에 따르면 M.사스케(M.Sasuke)의 ‘지지 이지’(GG EZ)는 이날 ‘오늘의 톱 100: 대한민국’ 차트에서 30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 5월 발매된 이 곡은 빠른 비트와 반복적인 후렴구, 리듬을 세밀하게 살린 안무가 맞물리며 챌린지 음원으로 떠올랐다. 엔시티 위시(NCT WISH) 시온·리쿠, 라이즈(RIIZE) 쇼타로, 있지(ITZY) 예지 등 인기 아이돌들이 연이어 춤을 췄고 방탄소년단(BTS) 정국까지 참여했다.
이용자들은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를 통해 노래와 안무를 먼저 접했다. 이후 아티스트가 음악 제작에 AI를 활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작 방식까지 관심을 받았다.
‘지지 이지’뿐만 아니라 AI 음악의 생산량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글로벌 음원 플랫폼 디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하루 약 7만 5000개의 완전 AI 생성곡이 플랫폼에 등록됐다. 디저에 유입되는 신규 음원의 약 44%다. 2025년 초 하루 1만곡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여 만에 7배 이상 증가했다.
AI 음악의 일상화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문화에서도 확인된다. 기존 플레이리스트는 ‘비 오는 날 듣는 노래’나 ‘새벽 드라이브에 어울리는 알앤비’처럼 이미 발표된 곡을 특정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 선곡하는 콘텐츠였다.
그런데 생성형 AI가 이 순서를 뒤집었다. 채널 운영자가 먼저 콘셉트를 정한 뒤 가사와 장르, 악기, 보컬의 성별과 분위기 등을 입력해 필요한 노래를 직접 생성한다. 음악을 모아 분위기를 만들던 플레이리스트가 정해진 분위기를 위해 음악을 생산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현재 유튜브에는 ‘탈주 궁녀’, ‘불교 재즈’ 플레이리스트 등 상황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곡을 AI로 제작한 영상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청취자는 영상 제목과 썸네일에 끌려 음악을 듣다가 설명란을 통해 AI 생성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댓글에는 부정적인 반응보다 운영자의 기획력에 감탄하는 긍정적인 평가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플레이리스트 운영자도 기존 음악을 소개하는 선곡자에서 원하는 음악을 생산하는 기획자이자 프로듀서로 역할이 넓어졌다.
유엔의 ‘파도’를 AI를 활용해 요트 록 버전으로 바꾼 음악. ⓒ유튜브 채널 ‘음골남’
AI 커버도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초기에는 딘(DEAN)의 목소리로 뉴진스(NewJeans)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지드래곤(G-DRAGON의 목소리를 다른 아이돌 곡에 입히는 등의 방식이 주를 이뤘다. 실제로는 성사되기 어려운 조합과 원래 가수의 음색을 얼마나 비슷하게 복제했는지가 감상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특정 가수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데서 벗어나 원곡의 장르와 시대적 질감까지 바꾸는 콘텐츠가 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음골남’은 유엔(UN)의 ‘파도’를 요트 록으로 바꾸고 성시경의 ‘미소천사’를 1980년대 스무스 솔 스타일로 재구성했다. 소녀시대의 ‘키싱 유’는 스무스 재즈로 바꾸는 식이다.
이들 콘텐츠는 원곡의 멜로디를 유지하면서 악기 구성과 리듬, 화음, 보컬 스타일을 새롭게 설계한다. AI 커버를 듣는 이유도 특정 가수와 얼마나 비슷한지를 확인하는 데서 해당 노래가 다른 시대와 장르를 만났을 때 생기는 변화를 즐기는 쪽으로 넓어졌다. AI가 담당하는 범위 역시 보컬 합성을 넘어 편곡까지 확대됐다.
AI가 완성도 높은 음악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환경은 작곡가에게 새로운 경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앤드뉴 살폿 뮤직 그룹 대표는 “AI 음악이 비상업적으로 보편화되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며 “이런 상황이 현세대 작곡가와 업계 종사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앤드뉴 대표는 “이전까지는 보다 대중적이고 완성도 높은 음악을 많은 사람이 추구했다면 이제는 곡을 만드는 것을 넘어 본인의 개성과 색깔을 가지고 작업을 대하는 사람들이 더욱 빛을 받는 세상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
AI가 일정 수준 이상의 멜로디와 편곡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대중적이고 잘 만든 음악’만으로는 창작자의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누구의 곡인지 구분할 수 있는 음악적 색과 창작자의 경험, 아티스트에게 맞춘 해석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창작 현장의 경계심은 여전하다. 지난달 열린 ‘페트 드 라 뮈지크 2026+’ 콘퍼런스에서 스웨덴 출신 프로듀서 알렉스 칼슨은 “AI는 작곡을 잘할 수 있지만 문제가 더 많다”며 저작권과 법적 보호의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여러 작곡가와 아티스트가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음악을 만드는 생생함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밝혔다.
음악만으로 구분하기 어려워질수록 제작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디저가 지난해 8개국 9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7%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완전 AI 생성곡과 인간이 만든 곡을 구분하지 못했다. 동시에 80%는 AI 생성곡에 이를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앤드뉴 대표 역시 현재의 변화가 케이팝(K-POP)의 다양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현재 여러 저작권 단체가 AI 활용 음악에 대한 규제를 만들고 있는 만큼 규제가 점진적으로 확대된다면 지금의 AI 붐은 내년에 다소 사그라들 수도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AI 음악을 둘러싼 찬반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음악 소비 현장은 이미 AI를 사용할 것인지를 논하는 단계를 지나고 있다. 이용자들은 노래가 마음에 들면 먼저 재생하고 AI 활용 여부는 그다음에 확인한다. 원하는 분위기의 음악이 없다면 직접 생성하고 좋아하는 옛 노래는 새로운 장르로 바꿔 듣는다.
규제 확대에 따라 현재의 AI 열풍은 속도가 조정될 수 있다. 그러나 AI가 음악을 만드는 문턱과 대중적 완성도의 기준을 바꿨다는 사실까지 되돌리기는 어렵다. AI가 음악의 평균치를 끌어올리면서 창작자들은 더 높은 퀄리티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성을 요구받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