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고유가·IMF급 환율에 수출 4강 목표도 ‘움찔’ [전쟁이 삼킨 3·4·5]
입력 2026.07.23 06:00
수정 2026.07.23 06:00
6월 수출도 전년동기 대비 70.9% 늘어
1등 공신은 반도체…162.6% 급증
AI 위기론·중동전쟁 확전까지
대외 경제 상황 한국 수출경쟁력 발목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다.ⓒ연합뉴스
정부는 최근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앞세워 ‘수출 세계 4강’ 도약을 새로운 국가 목표로 제시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회복세가 이어지고,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에도 속도를 내면서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 궤도에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배경이다.
문제는 대외 사정이 국내 기대와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란을 중심으로 한 중동전쟁이 재차 확산하면서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은 예상보다 험난한 길을 마주하고 있다.
한동안 안정을 찾아가던 국제유가는 최근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1500원 안팎을 오르내린다. 글로벌 물류망 불안과 반도체 경쟁 심화, AI 경쟁력 논란까지 겹치면서 하반기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변수는 국제유가다. 중동은 세계 원유 공급 핵심 지역이다. 한국도 수입 원유 70%가 중동산이다. 전쟁이 장기화하거나 확전하면 원유 생산과 수송 차질 우려가 커진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면 시장은 국제유가를 다시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은 한국 경제에 이중 부담으로 작용한다. 원유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액이 증가한다. 이는 무역수지 개선 속도가 둔화로 이어진다.
기업들은 생산비와 물류비 부담이 늘어난다. 소비자들은 휘발유와 전기·가스 등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체감물가 압박을 받게 된다. 결국 기업 투자와 소비가 동시에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한국무역협회 인천지역본부가 지난 5월 인천 수출기업 80곳을 대상으로 한 중동전쟁 관련 수출기업 실태조사 결과, 전체의 95%가 ‘경영에 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은 주요 애로사항(복수 응답)으로 원부자재 가격 상승(69.7%), 해상운임 상승(67.1%), 수출 물류 지연에 따른 납기 차질(44.7%) 등을 꼽았다.
한국수출입은행이 4월 조사한 설문 결과도 비슷하다. 수출기업 505곳(대기업 51곳, 중소기업 454곳)을 대상으로 한 중동전쟁 영향 설문 결과 수출기업 10곳 중 3곳이 전쟁의 직접적 영향으로 손실을 봤다고 했다.
15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주요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특정 품목 의존 높은 韓 무역구조 약점
환율 상황도 좋지 않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오르내리면 단기적으로는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나,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 비중이 높은 한국 산업 구조에서는 비용 증가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여전히 한국 수출을 견인하는 상황에 미국의 수출 규제와 중국의 기술 자립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특정 품목 의존도가 높은 수출 구조가 오히려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AI 산업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세계 각국이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경쟁적으로 확대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인재 확보와 초거대 AI 인프라, 데이터 경쟁력 등에서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AI 산업 경쟁력이 기대만큼 빠르게 확보되지 못하면 반도체 이후 새로운 수출 동력을 마련하는 데도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특히 AI 산업은 시설 투자 대비 수익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거품론’까지 일고 있다. 과거 ‘닷컴 버블’과 달리 빅테크 기업이 견고한 실적을 내고 있으나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 회수와 기술적 한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재무부가 인공지능 산업의 과열 가능성을 경고하는 내부 보고서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 우려를 키웠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노투스(NOTUS)가 입수한 재무부 초안 보고서에 따르면 재무부 소속 분석가들은 AI 산업이 닷컴 버블 당시보다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더 깊이 연결돼 있으며, 시스템 전반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AI 시장이 침체에 빠질 경우 기업들의 투자 축소와 투자심리 악화, 경제 성장 둔화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주식시장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 조달, 사모신용시장,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반도체 제조업체, 전력·유틸리티 산업까지 충격이 확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수출 세계 4강’ 목표는 단순히 수출 증가만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국제유가와 환율, 물류,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 변수에 대한 대응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동시에 반도체 편중 구조를 완화하고 AI를 비롯한 신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산업 체질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조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