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도 내가 픽(Pick)한다…'월남보살', Z세대 보살의 국적 초월 굿판 [쇼트 시네마(166)]
입력 2026.07.15 10:50
수정 2026.07.15 10:50
김근호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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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 혼혈인 고등학생 수연(권유경 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병을 앓기 시작한다. 부모는 무당을 찾아 내림굿을 벌이지만, 굿 도중 수연의 입에서 갑자기 베트남어가 흘러나온다. 무당은 수연에게 한국 신이 아니라 베트남 신이 내렸다며 자신으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베트남으로 가 현지 신을 받아 무당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은 생이별의 기로에 놓인다. 엄마(김사랑 분)와 수연은 베트남으로 떠나야 하지만,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아빠(조현우 분) 한국을 떠날 수 없다. 수연 역시 "나도 여기서 평생 살았는데!"라며 자신의 삶을 혈통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결정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한국에 남고 싶은 수연은 친구들과 함께 엉뚱한 작전을 세운다. 한국 신을 직접 모시면 한국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셀프 내림굿'을 시도하기로 한 것. 친구 아름(심아름 분)은 챗GPT로 셀프 내림굿 방법을 검색하고, 아이들은 마트에서 제물을 준비한다. 베트남을 상징하는 망고 대신 한국의 참외를 고르고, 아이패드에 한국 신의 이미지를 띄우는 등 Z세대다운 방식으로 의식을 꾸민다.
굿이 시작되자 한국의 장군신이 나타나 수연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먼저 수연을 점지했다는 베트남 신이 등장하며 두 신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결국 "신도 내가 선택한다"는 수연의 의지가 관철되고, 그는 한국 신과 베트남 신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한다. 두 문화를 모두 품은 채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한 수연은 '신빨도 두 배'라는 유쾌한 결말을 맞는다.
'월남보살'은 무속신앙과 다문화 정체성을 결합한 독특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신병과 내림굿이라는 한국적인 소재를 빌려 한-베 혼혈 청소년이 겪는 소속감과 정체성의 고민을 풀어내지만, 이를 무겁게 설교하기보다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코미디로 풀어낸다.
영화는 소품 하나에도 상징을 심어둔다. 셀프 내림굿을 준비하며 베트남을 상징하는 망고 대신 한국의 참외를 제물로 고르는 장면은 한국에서 살아가고 싶은 수연의 의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결말로 나아가지 않는다. 한국 신과 베트남 신을 모두 받아들이는 결말은 혈통과 문화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 문화 모두 자신의 일부로 품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챗GPT로 내림굿을 검색하고, 아이패드로 신을 모시는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Z세대의 감각을 무속 의례와 결합한 설정도 신선하다. 특히 한국 신과 베트남 신을 수연의 부모를 연기한 배우들이 각각 연기한 연출은 두 문화가 충돌하면서도 결국 한 가족 안에서 공존하는 관계를 은유하는 장치로 읽힌다. '월남보살'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무속과 다문화를 엮어 시의성 있는 담론을 유쾌한 코미디로 치환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냈다. 러닝타임 24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