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칩 쓰게 해달라” 애플, 美정·관계 로비에 나선 속내
입력 2026.07.05 07:07
수정 2026.07.05 07:57
애플, 값싼 중국산 메모리 칩 구매하기 위해 ‘전방위’ 로비에
메모리 칩 가격급등에 제조원가 낮춰 수익성 방어위한 전략
美 정부 받아들이더라도 의회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불투명
실제 구매보다 한국제품 가격 인상 제동거는 게 ‘진짜 목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8월6일 미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애플 로고가 그려진 상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할 장식품을 꺼내고 있다. ⓒ 미국 백악관 유튜브 캡처
미국 워싱턴 정가가 애플에 ‘격노’하고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AI)용 메모리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맥북·아이패드 등 주요 제품 가격을 대폭 인상한 애플이 수출금지 대상인 중국산 반도체 구매를 위해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9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애플이 중국 판매용 제품에 사용할 메모리 칩을 중국 창신메모리(CXMT·長鑫存儲)와 창장메모리(YMTC·長江存儲)로부터 조달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미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일 보도했다.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 칩 사용을 중국 판매용으로 한정하려는 까닭은 미 정치권의 반발을 의식한 행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앞서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 칩 구매를 승인해달라고 한달여 전 미 상무부와 접촉한데 이어 백악관과 정부 내 다른 부처, 워싱턴 정가의 우호 인사들과도 전방위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애플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해 9월 이후 메모리 가격이 급등하자 중국산 메모리 칩 조달을 통해 제조원가 부담을 낮추고 수익성을 방어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애플이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창신메모리(CXMT·長鑫存儲)로 알려졌다. 중국 빅테크 텅쉰(騰訊·Tencent)과 200억 위안(약 4조 5740억원) 규모의 서버용 D램 장기공급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 창신메모리는 중국 인민해방군과의 연계 의혹으로 미 전쟁부(국방부)의 ‘1260H’(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올라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최대 낸드플래시 업체인 창장메모리 역시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포함돼 있다.
미 전쟁부가 작성·관리하는 1260H는 인민해방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중국의 군사기업 목록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미 국가안보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작성한다. 전쟁부는 “중국군이 ‘민간 기관으로 보이는 중국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첨단기술 및 전문지식을 습득하려고 한다”며 군사기업 지정 배경을 설명했다.
존 물레나르(왼쪽)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24년 8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접견하고 있다. 오른쪽은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 뉴시스
이들 기업은 전차나 탄도미사일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위산업 업체는 아니지만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군민(軍民)융합’(기업·대학·연구기관 인재를 확보해 세계 일류 군대로 키우려는 국가 주도 전략)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민간기업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國資委·SASAC)나 공업정보화부(MIIT) 등 주요 정부부처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첨단기술을 군현대화에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미 전쟁부의 입장이다.
따라서 전쟁부의 ‘중국 군사기업’ 명단은 미국 내 자본투자 유입을 제한하고 기업에 심각한 평판 리스크를 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데 반해, 상무부의 수출통제 명단은 미국의 핵심 첨단기술과 부품 접근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실질적 공급 규제라는 점에서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오른다고 해서 당장 기업자산이 동결되거나 미국 수출이 전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명단에 오른 기업은 전쟁부와 직접 조달계약을 맺거나 갱신할 수 없다. 내년 6월30일 이후에는 제3자를 거쳐 이들 기업 부품이나 서비스가 포함된 최종 제품을 구매하는 것조차 전면 금지된다.
애플이 이례적으로 중국산 메모리 칩 도입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치솟는 반도체 가격이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AI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구축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으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폭증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칩 공급사들은 생산 캐파(설비 용량)를 HBM에 집중해 왔다.
HBM이 레거시(범용) 메모리 대비 높은 수익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공급사의 이 같은 생산 전환은 구조적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이다. 그 결과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전통 레거시 디바이스용 메모리 공급부족 현상이 심화했다. AI 반도체 붐의 불똥이 애플의 주력 제품인 맥북과 아이패드의 제조원가 상승 압박으로 번진 이유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앞서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와의 인터뷰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등 부품 가격 폭등을 “100년 만의 홍수”라고 표현하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25일 맥북과 아이패드 가격을 모델 별로 20%가량 인상했다. 이 조치가 촉발한 수요 둔화 우려와 시장의 성장성 의구심이 맞물리면서 애플 시가총액은 가격인상 발표 직후 하루 만에 2630억 달러(약 407조 6000억원)가 증발하는 충격을 겪기도 했다.
지난 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애플 신제품 공개 행사장에 ‘맥북 네오’(MacBook Neo) 노트북 컴퓨터가 전시돼 있다. 맥북 네오는 애플이 웹 서핑과 동영상 재생, 사진 편집 등에 최적화한 제품이다. ⓒ AP/뉴시스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용 ‘LPDDR5X 12기가바이트’(GB) 가격은 지난 1분기 77.1달러에서 2분기 145.9달러로 2배나 급등했다. 하지만 애플의 창신메모리 구매 카드는 실제 공급망 진입이라기보다 글로벌 메모리 가격 결정 구조를 흔들기 위한 고도의 협상 전략에 가깝다는 게 반도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애플이 여전히 견고한 초과 이익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착화되는 메모리 단가 상승이 장기적인 마진 방어에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이 이번 중국산 카드 유입의 도화선이 됐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애플의 창신메모리 칩 구매 추진의 본질은 '공급망의 실제 변화'가 아닌 '가격결정 구조를 흔드는 시도'로 읽힌다. 애플의 진짜 목적은 창신메모리 칩을 당장 아이폰에 전량 탑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산을 쓸 수도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줌으로써 기존 공급사인 한국 기업들을 압박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창신메모리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레거시 메모리 가격 인상 흐름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애플은 글로벌 부품사들을 상대로 강력한 가격 협상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악명’ 높다. 막대한 주문 물량을 바탕으로 턱없이 낮은 단가를 요구했다. 이는 애플 제품의 높은 수익성을 떠받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애플의 구매력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애플은 2025회계연도 준 제조 관련 3~5년 장기 계약 기간 동안 고객사의 특정 물량 구매를 의무화하는 '전략적 계약‘(SCA) 규모가 562억 달러에 달했다. 제품 부문 매출총이익률도 지난해 36.8%를 기록했다.
글로벌 주요 메모리 공급업체 중 하나인 미 마이크론테크놀러지의 고위 임원도 이 같은 구조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수밋 사다나 마이크론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일부 고객의 공격적인 가격요구가 현재 메모리 공급부족의 배경 중 하나가 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사다나 CBO가 애플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애플의 공격적 조달 관행과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
ⓒ 자료: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이 때문에 2023년 메모리 업황은 실제로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마이크론의 2023회계연도 매출은 155억 4000만 달러로, 전년(307억 5800만 달러)의 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했다. D램은 평균판매가격(ASP)이 40%대 후반 하락하며 매출액이 51% 감소했다. 마진도 무너졌다. 마이크론의 연결 매출총이익률은 2022년 45%에서 2023년 -9%로 급락했다. 순손실은 58억 3300만 달러에 달했다.
우리 업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매출 32조 7700억원, 영업손실 7조 730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4%였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 부문도 2023년 연간 14조 88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는 애플 같은 대형 구매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메모리 가격이 폭락하고 공급사들이 적자에 시달릴 때는 대량 구매력이 곧 가격 협상력이 되는 까닭이다. 이런 시기에는 애플의 경우 낮은 부품 단가를 통해 제품 마진을 방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애플의 창신메모리 카드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설사 미 행정부가 애플의 요청을 받아들이더라도 의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존 물레나르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애플이 중국 군사기업과 손을 잡는 행동은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며 "핵심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키우는 일은 미국 기술산업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 자료: 홍콩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애플은 2022년에도 중국에서 판매하는 아이폰에 창장메모리의 낸드플래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미 정치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미 상원 정보위원회 공화당 간사였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은 “애플은 불장난을 하고 있다”며 “창장메모리 칩을 실제 조달할 경우 연방정부로부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감시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용어 설명
D램은 메모리 반도체의 한 종류로 컴퓨터가 켜져 있을 때만 정보가 저장되는 특징이 있다. 데스크톱과 노트북컴퓨터, 스마트폰 등에 들어간다. 다른 종류의 메모리 반도체인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부품으로 스마트폰과 MP3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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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규환 국제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