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SK하이닉스’ 창신메모리, 도시 생태계 바꾸다
입력 2026.05.31 07:03
수정 2026.05.31 07:03
中 창신메모리 늦어도 3분기 중에 상하이 증시 커촹반에 상장
‘반도체 초호황’ 등에 업고 올해 상반기 순이익 최소 11조원대
창신메모리 공장 주변은 농촌 마을에서 신흥 산업도시로 변모
연구동·사내호텔·상가·식당 함께 들어서며 산업 생태계 형성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창장춘추(YMTC) 공장에서 자오웨이궈(가운데) 당시 쯔광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창장춘추 당시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 쯔광그룹 홈페이지 캡처
중국의 반도체 기업이 도시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 최대 D램 제조업체인 창신메모리(長鑫存儲·CXMT)의 기업공개(IPO·상장)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이 회사가 반도체 공장 주변의 도시 구조와 부동산 시장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창신메모리의 상장 신청은 발행 및 상장 조건, 정보공시 요건 등을 모두 충족함으로써 기술주 위주의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커촹반(科創板·과학기술혁신판·STAR Market) 상장심사위원회를 통과했으며, 앞으로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등록과 승인절차를 거쳐 상장 작업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중국 증권시보(證券時報) 등이 지난 27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창신메모리는 이르면 7월, 늦어도 3분기 중에는 상하이증시 커촹반 상장이 이뤄질 전망이다. 창신메모리는 IPO를 통해 최대 106억 2200만주의 신주를 발행해 295억 위안(약 6조 54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상장이 예정대로 성사되면 커촹판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로 기록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중신궈지(中芯國際·SMIC)의 2020년(523억 위안)에 이은 역대 2위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은 창신메모리의 성장 곡선은 매우 가파르다. 2년 전인 2024년 초의 월평균 웨이퍼 생산량은 10만장 안팎에 불과했으나 올 연말에는 30만장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이런 성장 배경에는 반도체 산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못지 않게 D램의 호황이 자리잡고 있다. 이에 힘입어 회사 직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만 9300명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연구·개발(R&D) 인력만 6000명을 넘는다. 레거시(Legacy·범용·28나노미터 이상 공정) D램을 중심으로 내수 수요를 흡수해 점유율을 확대한 것으로 해석된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를 뜻한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 자리잡고 있는 창신메모리(CXMT) 본사. ⓒ 창신메모리 홈페이지 캡처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중국 내 스마트폰과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데다 반도체 가격 상승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창신춘추의 매출액 증가 폭이 커졌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5% 늘어난 617억 9900만 위안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순이익은 18억 7500만 위안으로, 전년(2024년)의 78억 7000만 위안 적자에서 처음으로 연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더욱이 올들어 반도체 초호황에 올라탄 창신메모리는 1분기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디 719% 급증한 508억 위안에 달했다. 1분기 영업이익도 지난해 적자(28억 위안) 에서 흑자(354억 위안)로 돌아섰다. 만년 적자 기업이 1년 만에 이익률 70%로 분기 8조원 가까이 버는 우량 기업으로 환골탈태한 셈이다. 1분기 순이익도 같은 기간 무려 1688%나 폭증한 247억 6200만으로 집계됐다. 창신메모리의 1분기 순이익은 A주(중국 기업이 본토에서 위안화로 발행한 보통주) 전체 순위에서 13위에 해당한다.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창신메모리는 공모 설명서를 통해 올해 상반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2~677%가 급증한 1100억∼1200억 위안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모회사 귀속 순이익은 지난해보다 2244∼2544% 뛴 500억∼570억 위안으로 내다봤다. 모회사 귀속 순이익은 연결 재무제표의 당기순이익 중 모회사 주주들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되는 이익을 말한다.
다만 창신메모리는 AI 시대에 각광받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상용화하지 못해 여전히 선두 주자들과 기술격차가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AI 열풍이 만들어낸 메모리 공급난과 가격급등의 혜택은 톡톡히 봤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고부가가치의 고대역폭메모리(HBM)과 고성능 서버용 D램에 생산능력을 우선 배분하는 사이, 창신메모리는 DDR5와 저전력 D램인 LPDDR5X 등 최신 레거시 제품을 앞세워 중국 스마트폰·PC 업체 수요를 빨아들였고 반도체 가격 상승 효과까지 더해진 것이다. 메모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글로벌 PC 업체들도 창신메모리 D램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기대를 부풀린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 창신메모리 공장 주변 도로에 전동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발디딜 틈 없이 주차돼 있다. ⓒ 중국 제일재경 홈페이지 캡처
상황이 이런 만큼 기업공개를 통한 조달 자금은 웨이퍼 생산라인 확충과 D램 기술 업그레이드, 차세대 제품 연구개발 등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창신메모리는 기존 레거시 D램을 넘어 ‘DDR5’ ‘LPDDR6’ 등 차세대 D램 기술 업그레이드와 연구·개발(R&D)에 자금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HBM 시장 진입을 위해 양산 라인을 구축하는 데 실탄을 아낌없이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창신메모리는 연내 HBM3(4세대) 양산에 돌입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들이 HBM4(6세대)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 격차는 있지만 차세대 메모리 시장에서도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업계는 오랫동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과 미국 마이크론 등이 과점 체제를 유지해왔다. D램의 경우 이들 3사의 점유율이 90% 이상이고 낸드플래시 시장 역시 60% 이상을 나눠 점유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8%로 1위를 유지했다. SK하이닉스는 29%, 마이크론은 22%를 차지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창신메모리의 약진이다. 세계 4위를 달리고 있는 창신메모리는 베이징(北京)과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에 12인치 D램 웨이퍼 공장 3곳을 가동 중이다. 옴디아에 따르면 D램 판매액 기준 창신메모리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분기 3.97%에서 4분기 7.67%로 치솟았다.
이런 ‘슈퍼 호황’은 창신메모리가 이제 단순한 반도체 기업을 넘어 공장이 입주한 동부 안후이(安徽)성 성도(省都) 허페이(合肥)시의 도시구조 자체를 바꾸는 핵심 엔진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第一財經)에 따르면 허페이 북서부 외곽 농지와 공터 사이에 자리한 창신메모리 공장 주변에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상가·식당·장기임대주택·숙소·생활 인프라(기반지설)가 빠르게 들어서며 하나의 신흥 산업도시처럼 변모하고 있다.
ⓒ 자료: 중국 제일재경 등
공장 주변 도로에는 전동 오토바이가 빼곡히 주차돼 있고, 창신메모리의 사원증을 목에 건 젊은 엔지니어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다. 전봇대와 공사장 가림막에는 임대 광고가 가득 붙어 있다. 현지에서는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된 도시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제일재경은 “멀리서 바라본 창신메모리 공장은 전통적인 제조공장보다는 거대한 미래형 도시와 비슷한 모습”이라며 “회색 대형 팹(Fab) 건물과 복잡한 은색 배관·공조 설비가 얽혀 있으며, 신규 생산라인 증설 공사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공장 외곽에는 이미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 연구동과 직원 기숙사, 사내 호텔, 식당 등이 함께 들어섰고 수많은 엔지니어와 협력업체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과거에는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허페이 시내까지 나가야 했지만, 최근 쇼핑센터와 편의시설, 식당, 호텔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이곳의 식당 직원은 “점심·저녁 시간에는 거의 만석이며 손님의 90% 이상이 창신메모리 직원”이라며 “계속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비도 급상승하고 있다. 공장 인근 장기임대 아파트인 완커보위(萬科泊寓)는 64㎡ 기준 월세가 2500 위안가량으로 허페이 도심 지역 수준에 근접했다. 그렇지만 공급이 부족해 여전히 공실을 찾기 어렵다. 창신메모리 직원들이 허페이 부동산 시장의 주요 수요층이 된 것이다. 허페이 첨단기술개발구의 한 중개업자는 “거래 고객 10명 중 최소 4명은 창신메모리 직원들”이라며 “대부분 25~35세의 고학력 R&D 인력이고 월수입이 3만~7만 위안 수준인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 자료: 중국 창신메모리
창신메모리 IPO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향후 1~2년 안에 허페이 고급주택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가 나타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고 제일재경은 전했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창신메모리의 중장기 기업가치 평가를 두고 신중론도 제기된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표준화율이 높고 경기 변동성이 큰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기 때문에 고점 기준의 주가수익비율(PER)보다는 주기 중간의 평균 이익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창신메모리의 누적 결손금이 366억 위안에 달하고 장기 차입금 규모가 1188억 위안에 이르는 등 재무적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군다나 2023년부터 2025년까지 R&D 투자액이 각각 46억 7000만 위안, 63억 4000만 위안, 95억 9000만 위안으로 급증하는 만큼 오는 2027~2028년 메모리 업황이 하강 국면에 진입할 경우 채무 상환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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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규환 국제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