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2집에 담긴 4세대 걸그룹의 자기확신…‘나’에서 확장된 주체성 [D:가요 뷰]
입력 2026.05.31 01:50
수정 2026.05.31 01:50
아이브·르세라핌 거쳐 에스파까지, 4세대 대표 걸그룹의 두 번째 챕터…3·5세대 사이에서 달라진 팀 서사의 방향
아이브(IVE), 르세라핌(LE SSERAFIM), 에스파(aespa)가 올해 나란히 정규 2집을 내놓으며 4세대 대표 걸그룹의 두 번째 챕터를 열고 있다. 데뷔 초 강렬한 콘셉트와 히트곡으로 팀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이들은 이제 한 번 더 자신들의 세계를 넓혀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흥미로운 점은 세 팀 모두 정규 2집에서 데뷔 초부터 쌓아온 ‘자기확신’의 서사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스파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29일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에스파는 이날 오후 1시 정규 2집 ‘레모네이드’(LEMONADE)를 발매한다. 정규 1집 ‘아마겟돈’(Armageddon)으로 ‘쇠맛’의 정점을 보여줬던 에스파는 이번 앨범에서 한층 키치하고 유쾌한 ‘신맛’의 에너지를 앞세운다. 세계관 역시 새 국면을 맞는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오가며 생긴 균열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꾸겠다는 태도가 이번 앨범의 핵심이다.
정규 2집은 이들에게 일반적인 컴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데뷔 초반에는 팀을 설명하는 한 문장, 강렬한 콘셉트, 중독성 있는 히트곡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그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확장할지가 관건이다. 아이브, 르세라핌, 에스파는 각기 다른 음악과 세계관을 내세웠지만 공통적으로 ‘나’를 중심에 세운 팀이었다. 아이브는 자기애를, 르세라핌은 두려움 없는 자기 확신을, 에스파는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세계관 속 능동적 캐릭터성을 대표 서사로 삼았다.
이 지점은 앞뒤 세대 걸그룹과 구별된다. 3세대 대표 걸그룹들은 각기 다른 팀 컬러로 시장을 나눴다. 트와이스(TWICE)는 밝고 친근한 소녀성과 대중적인 에너지를, 블랙핑크(BLACKPINK)는 강렬한 걸크러시와 글로벌 팝 감각을, 레드벨벳(RedVelvet)은 ‘레드’와 ‘벨벳’을 오가는 콘셉트 실험을 대표 색으로 삼았다. 한 세대 안에서도 팀별 색깔이 선명하게 분화된 구조였다.
5세대 걸그룹은 아직 각 팀의 대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초기 단계에 가깝다. 그러나 아일릿(ILLIT)은 몽환적이고 엉뚱한 소녀성, 하츠투하츠(Hearts2hearts)는 친근하고 청량한 감성, 키키(KiiKii)는 자유분방하고 트렌디한 또래 이미지를 앞세우며 각각 다른 이미지로 출발했다.
반면 4세대 걸그룹은 팀별 콘셉트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자아’와 ‘주체성’을 전면에 세웠다. 아이브의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랑한다”는 태도, 르세라핌의 “두려움 없이 나아간다”는 선언, 에스파의 세계관 속 전투적 캐릭터성은 모두 자신을 설명하고 선택하는 여성 주체를 중심에 둔다. 활동을 중단한 뉴진스(Newjeans) 역시 꾸며진 걸그룹 공식을 따르기보다 자연스러운 취향과 태도를 앞세우며 또래 세대의 감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4세대의 또 다른 주체성으로 읽혔다.
아이브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올해 정규 2집 릴레이는 그 시험대다. 아이브는 지난 2월 정규 2집 ‘리바이브 플러스’(REVIVE+)를 통해 기존의 자기애 서사를 ‘나’에서 ‘우리’로 넓혔다. 데뷔 이후 자신을 향한 확신과 당당함을 팀의 중심 메시지로 삼아온 아이브는 이번 앨범에서 개인의 확신을 관계와 공동체의 감각으로 확장했다.
안유진은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앨범명 ‘리바이브 플러스’에 대해 “아이브라는 이름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더 넓게 번지게 하겠다”고 소개했다. 원영은 선공개곡 ‘뱅뱅’(BANG BANG)에 대해 “주변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아이브다운 주체성을 담은 곡”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브가 말해온 자기애는 정규 2집에서 혼자 빛나는 태도를 넘어, 팀 전체가 함께 확장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르세라핌의 변화는 ‘두려움 없음’의 재해석에 가깝다. 데뷔곡 ‘피어리스’(FEARLESS)에서 이들이 내세운 메시지가 두려움 없이 나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면, 정규 2집 ‘퓨어플로우 파트1’(‘PUREFLOW’ pt.1)에서는 두려움을 인정하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로 확장됐다. 이전의 르세라핌이 “두려움 없이 나아가겠다”고 외쳤다면 이번 앨범은 “두려움을 알아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마음가짐에 가깝다.
르세라핌 ⓒ쏘스뮤직
허윤진은 앨범 발매 전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확실해진 게 있다. 두려움은 사랑의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결국 내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는 증거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독기’의 의미도 달라졌다. 허윤진은 “독기가 꼭 뾰족하고 공격적인 것만은 아니지 않나. 누군가 ‘넌 할 수 없어’라고 할 때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조용한 확신일 수도 있고, 너무 빠른 세상 속에서 내 자리를 지키고 느리게 움직이는 것도 독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르세라핌의 자기확신은 더 강하게 몰아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을 서사 안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에스파는 세계관의 새 챕터를 통해 주체성의 무대를 확장한다. 이들은 ‘블랙 맘바’(Black Mamba), ‘넥스트 레벨’(Next Level), ‘드라마’(Drama), ‘슈퍼노바’(Supernova), ‘아마겟돈’ 등을 거치며 현실과 가상, 나와 또 다른 나를 오가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이번 정규 2집 ‘레모네이드’는 그 세계관 안에서 다시 균열과 혼란을 마주하는 앨범이다.
카리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챕터 3에서는 이전부터 저희가 현실과 가상세계를 오가다 보니 균열이 생긴 것”이라며 “평행세계가 끊어지면 안 되는데 포스(P.O.S, 에스파 세계관 속 현실과 가상을 연결해주는 통로)로 인해 균열이 깨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지만 저희는 광야에서 블랙맘바도 찾고, 나비스와 활동도 하고, ae 멤버들과도 컨택했으니 별일 아닌 것 아니냐. 이걸 기회로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이 전하는 주체성 역시 에스파답다. 윈터는 “요즘에는 남들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고 싶어도 주변의 영향 때문에 주저할 때가 많다”며 “저희는 좋은 에너지를 주고, 나 자신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에너지를 드리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나로 존재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카리나는 타이틀곡 ‘레모네이드’에 대해 “본인에게 닥치는 시련을 레몬이라고 칭하고, 맛있는 레모네이드로 갈아마시자는 모토”라고 설명했다. 에스파의 주체성은 균열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에너지로 바꾸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올해 세 팀의 정규 2집은 그 주체성이 고정된 콘셉트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확장되는 서사임을 보여준다. 3세대가 팀별 콘셉트의 색으로 경쟁했고, 5세대가 새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단계라면, 4세대는 이미 확보한 자기확신 이후의 이야기를 증명해야 하는 관문에 들어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