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말고 여기에 취했습니다" 청춘들이 선택한 것은 [NOW 2.30]
입력 2026.05.21 11:38
수정 2026.05.22 09:11
회식·밤샘 음주 대신 러닝·운동·무알코올 선택 2030세대 증가
"술 적게 마시고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이 더 멋있다" 인식 확산
논알코올 시장 10년 새 9배 성장…'취하지 않을 권리' 새 문화
전문가 "취업난·불확실성 커져…자기관리 투자, 경쟁력으로"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예전엔 금요일만 되면 당연히 술 약속부터 잡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다음 날 러닝 나가고 운동하는 게 더 중요해졌죠"
서울 용산구에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이 모씨는 최근 1~2년 사이 술자리를 크게 줄였다. 과거에는 회식이나 모임이 이어져도 자연스럽게 참여했지만 지금은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대신 운동이나 휴식을 선택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이씨는 "예전에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분위기를 이끄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인다"며 "굳이 다음 날 컨디션까지 망가뜨리면서 마시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말했다.
2030세대의 술자리가 달라지고 있다. 한때 회식 문화와 밤샘 음주는 사회생활의 일부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젊은 세대는 술을 줄이거나 아예 마시지 않는 방향으로 생활 방식을 바꾸는 모습이다. 술자리 대신 러닝과 운동, 무알코올 음료와 아침 활동을 선택하는 흐름이 확산하면서 음주 문화 전반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음주는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대표적 사교 수단이었다. 직장 회식과 대학 모임은 물론, 친목 형성 과정에서도 술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는 '굳이 취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건강과 컨디션, 자기관리 등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과도한 음주 자체를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실제 이러한 인식 변화를 반영하듯 무알코올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2014년 약 81억원 수준에서 2024년 700억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10년 새 약 9배의 성장을 이룬 것으로 오는 2027년에는 946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관련 시장이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주류업계 역시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는 분위기다. 최근 주류 기업들은 단순히 취하는 술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운동·웰니스와 연결된 브랜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 라이트'를 앞세워 대학생 러닝 프로그램 스폰서에 나섰고 2020년 카스 0.0 출시와 함께 후발주자로 논알콜 시장에 진입한 카스는 2022년에는 500㎖ 제품과 호가든 제로, 버드와이저 제로를 출시했다.
2024년에는 '카스 레몬 스퀴즈 0.0'를 선보이고 지난해에는 무알코올 맥주 '카스 올제로'를 출시하며 라인업을 확대했다. 과거 주류 브랜드 마케팅이 야간 유흥 문화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운동과 자기관리 이미지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는 모습이다.
서울 중구에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진 모씨는 필요하지 않은 음주를 최대한 줄이고 지인들과 매주 정기적으로 풋살, 러닝 활동을 하는 등 체력 관리에 열중하고 있다.ⓒ데일리안 김남하 기자
이같은 흐름은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와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는 소비 트렌드와도 맞물린다. 건강을 유지하면서도 즐거움을 추구하고 필요하지 않은 음주는 스스로 줄이려는 생활 방식이다. 특히 다음날 컨디션 관리에 민감한 2030세대에서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20대 직장인 권 모씨는 최근 몇 년 사이 음주 대신 운동과 체력 관리에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권 씨는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도 술을 잘 마시는 사람보다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이 더 긍정적으로 보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30대 대학원생 이 모씨 역시 "풋살이나 클라이밍 모임에 가보면 아예 술을 안 마시는 사람도 많고, 마셔도 하이볼이나 저도주 정도로 가볍게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다음 날 일정과 컨디션을 망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닝과 운동 문화 확산은 음주 문화 변화와 함께 언급된다. 네이버 밴드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러닝·걷기' 관련 모임 비율은 7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늦은 밤 술자리 중심이었던 사교 활동이 새벽 러닝이나 운동 모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단순 유행을 넘어 사회 구조 변화와도 연결돼 있다고 분석한다. 고물가와 취업난,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시간과 체력,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방식보다 자신의 건강과 생활 리듬을 우선시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집단주의적 직장 문화에서는 회식과 음주가 조직 내 관계 형성과 조화를 위한 사실상의 필수 요소였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조직보다 개인 생활과 자기 경쟁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취업난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불필요한 활동을 줄이고 건강과 자기관리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하나의 경쟁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특히 평생직장 개념이 약해진 점도 중요한 변화 요인으로 짚었다. 그는 "과거에는 회사 내 인화와 관계 관리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더 나은 직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술자리와 회식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운동과 자기계발, 건강관리에 투자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자기관리 중심 문화’가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술을 마시지 않는 선택 자체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반대로 지나친 건강 관리와 생산성 중심 사고가 청년층의 피로감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럼에도 적어도 현재의 2030세대에게 술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친목 수단이 아니다. 많이 마시는 능력보다 '취하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일이 하나의 새로운 생활 감각으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