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낮춰도 공정은 그대로…韓반도체, 요금 개편 '사각지대'
입력 2026.04.16 12:04
수정 2026.04.16 12:04
49년만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낮 요금 내리고, 밤 요금 올려
'기저 부하' 반도체는 인하 효과 제한적…"24시간 공장 돌아가"
"조업 유연성 확보 사실상 불가능…타 산업 대비 효과 적을 것"
삼성 화성캠퍼스 3나노 양산라인에서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는 K-반도체가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49년 만에 바뀐 요금 체계가 전력 수요를 낮 시간대로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공정 특성상 이를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는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에너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 내용을 담은 '계절·시간대별 전기요금 개편안'이 이날부터 시행됐다. 이번 개편은 낮 시간대 요금을 낮추고 저녁 시간대 요금을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산업용 전력 소비를 낮으로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평일 오전 11~12시와 오후 1~3시는 최대부하에서 중간부하로 조정되고, 오후 6~9시는 중간부하에서 최대부하로 변경된다. 이에 따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사실상 중간요금 구간으로 통일된다. 정부는 개편 시행 시 낮 시간대 전기요금이 계절에 따라 ㎾h당 13.2~16.9원 인하되는 반면, 경부하 시간대(심야 시간) 요금은 5.1원 인상된다고 설명했다. 전체적으로는 산업용(을) 기준 전기료가 1㎾h당 1.7원 줄어들 것이란 게 정부의 설명이다.
다만 반도체 업계가 체감하는 영향은 다르다. 반도체 공정은 24시간 가동되는 대표적인 '기저 부하' 산업으로, 시간대별 요금 변화에 맞춰 전력 사용을 조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낮 시간대 요금 인하로 일부 상쇄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심야 시간대 요금 인상분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부담은 남는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공정(팹)은 수천 개의 미세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속성이 핵심이다. 전압이 0.1초만 흔들려도 공정 중인 웨이퍼를 전량 폐기해야 한다. 한 번 세우면 재가동까지 수주가 걸리고 손실액은 수천억 원에 달한다. 이에 반도체 공장의 전력 부하 곡선은 하루 종일 큰 굴곡 없이 평평한 일직선을 그리는 '기저 부하' 형태를 띤다.
정부가 산업용 전력 소비를 낮으로 유인하고자 한 취지가 사실상 적용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홍상진 명지대 반도체공학부 교수는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공장을 고려하면 제조 비용 절감 효과는 제한적일 것"며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변수"라고 평가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반도체는 전력 유연성을 가지기 어려운 산업"이라면서 "다른 제조업에서 누릴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까지 겹치며 에너지 비용 변동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전력 생산 단가와 수입 비용 전반이 영향을 받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전기요금 개편과 맞물려 에너지 관련 불확실성이 하나 더 추가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전쟁 등 여파로 에너지는 업계 전반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며 "전력 비용이 일부 완화될 여지도 있지만, 전반적인 에너지 부담을 관리해야 하는 과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