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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라는 그릇에 담은, 우리 시대 바냐들에 건네는 위로 [D:현장]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4.07 17:36
수정 2026.04.07 17:38

이서진·고아성 연극 데뷔작 ‘바냐 삼촌’

5월 7일부터 31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안톤 체호프의 고전 ‘바냐 아저씨’가 우리 시대의 언어로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 오른다. 19세기 러시아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원작과 달리, 이번 공연은 특정 시대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보편적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 대한 의심과 후회, 불안 그리고 굴절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손상규 연출은 7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진행된 연극 ‘바냐 삼촌’ 제작발표회에서 “요즘 사회는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상처를 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누군가의 삶을 잘못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세상에서 적어도 스스로의 인생에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출에 임했다”고 말했다.


‘바냐 삼촌’은 평생 삶의 터전과 가족 그 안의 질서에 헌신해 온 바냐와 소냐를 비롯해 어느 순간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며 삶 전체가 흔들리는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1899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이자 지금까지도 전 세계 무대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고전 명작 중 하나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은 “고전을 원작으로 하지만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며 “세대와 공간을 넘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밝혔다. 손 연출 역시 “연출가로서 작품을 만들면서도 오히려 위안을 받고 있다. 그 감정을 관객과 나누고 싶다”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센터장은 이번 연출로 손상규를 낙점한 이유에 대해 “2024년 ‘벚꽃동산’ 작업 당시 인물 해석의 탁월함에 감탄했고, 이후 ‘타인의 삶’ 각색과 연출을 보며 한국 연극계에 좋은 연출이 탄생했음을 느꼈다”라며 “회식 자리에서 바로 다음 작품을 제안했고, 손 연출의 리스트 중 현대 관객에게 가장 큰 공감을 줄 수 있는 ‘바냐 삼촌’을 선택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동시기 국립극단도 같은 원작의 배경을 근현대사로 옮겨 ‘반야 아재’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린다. 손 연출은 “동시에 같은 작품을 다르게 풀어내는 것은 만드는 사람에겐 부담이지만, 관객에겐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라며 “이 시대가 ‘바냐 삼촌’을 다시 불러내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화제는 배우 이서진의 연극 데뷔다. 이서진은 주인공 바냐 역을 맡아 삶의 허망함과 비애를 연기한다. 이서진은 “처음엔 거절했다. 나이가 들어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인데, 주변 권유와 스태프들의 열정 때문에 결정했다”면서도 “사실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너무 힘들어서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소회를 전했다.


그는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에 대해 “바냐는 불평과 불만이 많고 화가 나 있는 인물인데, 실제의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100% 연기로 커버하고 있다”고 농담 섞인 답변을 내놓으면서도 “바냐를 맡기 전부터 갱년기를 앓고 있어 인물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생소한 인물이라기보다 현재의 저를 연기한다는 기분으로 임하고 있다”며 캐릭터에 대한 공감을 드러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손 연출은 이서진에 대해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 유머 감각이 있고 책임감이 대단하다. 불평하면서도 코가 헐 정도로 연습에 매진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라고 신뢰를 보냈다.


소냐 역으로 첫 연극 무대에 서는 고아성은 “연극 무대, 연극 배우에 대한 선망이 늘 있었다. 손 연출의 ‘타인의 삶’을 보고 감동받아 제안을 받았을 때 꼭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소냐에 대해 “상쾌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고 현명한 소녀다. 익숙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으나 연출님이 허용하지 않으셔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며 “인간은 지성 때문에 괴롭지만 그럼에도 참고 견디는 것이 이 극의 위로가 되는 지점”이라고 해석했다.


손 연출은 이 작품을 ‘코미디’로 정의하면서도 “어제 연습하면서 울기도 했다. 웃기면서도 슬픈, 그 묘한 지점을 어떤 그릇에 담아 관객이 즐기게 할 것인가가 숙제”라고 말했다.


이서진 역시 “작품을 하기 전엔 ‘바냐 삼촌’이라는 극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연습하면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관객들도 쉽게 공감해나갈 수 있는 그런 극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어둡게 풀지 않고 가볍게 웃을 수 있게 풀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배우를 중심으로 ‘리차드 2세’ ‘햄릿’ 등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김수현, 제61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조영규, 양손프로젝트의 양종욱을 비롯해 이화정, 민윤재, 변윤정 등 내공있는 배우들이 함께 호흡을 맞춘다.


김수현은 “보통 연극은 눈에 드러나는 사건들 속에 인물들이 놓이고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작품은 인물들의 상황과 교류, 균형이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양종욱 역시 “보통 사건의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상대적으로 체홉, 특히나 ‘바냐 삼촌’은 각각 인물이 이야기를 한다. 사건이 주는 여운보다는 사건이 진행되고 그 안에 인물들의 삶이 주는 여운에 힘이 있다”고 말했다.


‘바냐 삼촌’은 오는 5월 7일부터 31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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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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