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 적지만 ‘고의존 집중’…일부가 전체 산업 흔들어[문제는 공급망②]
입력 2026.04.03 06:00
수정 2026.04.03 06:00
한국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 분석 결과
매달 新 품목 25% ‘새로운 위험’ 감지
위험 발동, 일회성 아닌 상시 재생산
“위험 가시화하기 전 선제 대응 필요”
쿠웨이트 수도 쿠웨이트시티에서 남쪽으로 약 45km 떨어진 미나 알아마디의 정유 단지. ⓒAP/연합뉴스
한국이 그동안 겪어온 공급망 위기가 전쟁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특정 산업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원자재 기준으로 품목 자체는 많지 않지만, 해당 품목들의 영향력은 산업 전체를 흔드는 ‘고의존성’을 갖기 때문이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내놓은 ‘보이지 않는 공급망 위기: 한국 공급망의 착시와 조기경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공급망 위기는 특정 분야에만 국한된 국지적 현상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매달 전체 수입 품목의 약 4분의 1에서 새로운 위험(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 버팀목인 핵심 제조업 분야에서 ‘병목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KIEP가 조기경보시스템(EWS)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9200여 개 수입 품목 중 약 18.9%인 1745개 품목이 새롭게 경보 구간에 진입했다.
참고로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코로나19, 요소수 사태와 같은 공급망 위기 때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21년 11월부터 공급망 위기 조기 파악을 위해 EWS를 운영 중이다.
전략 산업 ‘집단 위험’…특정 산업군 100% 경보도
주목할 점은 위험도가 급격히 악화하거나 고위험군으로 신규 편입되는 품목의 비중이다. 전체의 17.6%에 해당하는 1630개 품목이 고위험군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이는 공급망 위험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상시 재생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위험의 단계적 이동 경로도 명확하다. ‘신규 경보 진입’에서 시작한 위험은 위험도 ‘급등’을 거쳐 고위험군 편입으로 이어진다. 위험도가 형성, 증폭, 고착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우리 공급망이 외부 충격에 얼마나 민감하고 취약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는 게 KIEP 설명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2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종량제봉투 자동판매기에 종량제봉투가 많이 비어있다. 중동사태 여파로 석유화학 연료인 나프타 수급 차질이 생기면서 종량제봉투를 비롯한 비닐봉투, 포장용기 등 다양한 1회용품 포장재 품귀 우려가 커졌다.ⓒ뉴시스
공급망 위험은 기계·장비, 전기전자, 화학소재, 정밀기기 등 핵심 제조업 분야에 집중돼 있다. 이들 분야는 단순한 개별 품목 문제를 넘어 산업 단위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실제 분석 결과, 반도체 칩, 반도체 장비, 메모리 반도체 등 약 20개 산업군에서는 특정 시점에 해당 산업 내 모든 품목이 동시에 경보 상태에 진입하는 ‘집단 위험’ 양상을 보였다.
또한 약 30%의 산업군에서는 단 1개 핵심 품목이 해당 산업 전체 위험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병목 집중 구조’가 관찰됐다. 단 하나의 핵심 부품 조달에 차질이 생겨도 산업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동 리스크, 소수 품목의 ‘고의존 집중’ 구조
최근 위험이 극대화한 중동 지역 역시 한국 공급망에 직접적인 위협이다.
중동과 인근 국가에서 수입하는 품목 가운데 수입 의존도 70% 이상인 ‘즉각 관리 대상’ 것은 41개다. 전체의 0.44% 수준으로 많지 않다.
다만 이들 품목에는 원유를 비롯해 니켈 매트, 정련동, 요오드 등 에너지와 이차전지, 반도체 산업의 핵심 원료가 포함돼 있다. 작은 돌이 전체 수레바퀴를 멈춰 세우는 꼴이다.
무엇보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단일 지역 종속 구조’가 뚜렷한 게 문제다. 이번 중동 전쟁에서 보듯 국지적 분쟁이 발생하면 파급 효과는 산업 전반으로 급격히 확산할 잠재력을 갖게 된다.
결국 현재 한국 공급망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품목들이 반복적인 충격을 통해 산업 단위로 응집된 상태라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KIEP는 “정책의 핵심은 위기 발생 이후 대응이 아니라 위험이 가시화하기 전 단계에서 변화 신호를 식별하고 선제적으로 개입하는 데 있다”고 했다.
▲‘사후 약방문’으론 안 돼…조기 경보가 ‘골든타임’[문제는 공급망③]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