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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어른이 가르친 기만적인 산수와 타락한 윤리 [D:쇼트 시네마(153)]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3.24 11:59
수정 2026.03.24 11:59

이승주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대신 구매해주며 생계를 이어가는 성재(장준휘 분)는, 일정 수수료를 받고 중고생들과 거래를 이어간다. 가격을 깎아주거나 라이터를 챙겨주는 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며, 일종의 ‘친근한 중개자’로 자리 잡은 인물이다.


그러던 중 마지막 거래를 하러 간 자리에서 초등학생 현수(임승민 분)를 만나게 된다. 그동안의 행위와는 달리, 성재는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겠다는 듯 현수를 훈계하며 담배를 팔지 않는다.


하지만 곧 다른 성인 여성이 현수에게 담배를 대신 사주려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한다. 이를 막으려던 성재는 여성과 몸싸움까지 벌이며 개입하고, 이 장면은 현수에 의해 촬영되어 주변으로 퍼진다.


이후 현수는 성재에게서 담배를 대량으로 사 갔던 여학생을 찾아간다. 그 여학생은 성재로부터 구매한 담배를 다시 수수료를 붙여 또래들에게 되파는 구조를 만들고 있었고, 성재가 형성한 거래 방식이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같은 전개는 청소년 흡연이나 일탈을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영화는 성재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의 도덕적 기준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또 어떻게 스스로 정당화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초등학생에게는 팔지 않겠다는 나름의 기준을 세우지만, 그 이전까지의 행위는 아무렇지 않게 반복해온 그의 태도는 그 자체로 모순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그가 그어놓은 ‘선’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무력한지 조용히 드러낸다. 성재의 경계는 시스템을 멈추지 못하고, 오히려 그가 만든 거래 방식은 더 어린 세대와 더 넓은 범위로 복제되듯 퍼져나간다.


‘대리구매’는 책임이 분산되고 윤리가 희석된 상태에서 형성되는 회색지대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화는 그 과정을 건조하게 응시하며, 우리가 무심히 넘겨온 작은 타협들이 어떻게 하나의 구조가 되는지를 드러낸다. 러닝타임 11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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