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급 가로지르는 연상호…블록버스터 ‘군체’·저예산 ‘실낙원’ 독자적 행보 [D:영화 뷰]
입력 2026.03.24 11:58
수정 2026.03.24 11:58
저예산 효율과 대작 스케일, 올해 시험하는 연출 전략
연상호 감독이 서로 다른 규모의 신작 두 편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저예산 심리 스릴러 ‘실낙원’과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SF 재난 블록버스터 ‘군체’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연 감독은 지난해 제작비 2억 원 규모의 영화 ‘얼굴’로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약 11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제작비 대비 수익률이라는 측면에서 이례적인 성과였을 뿐 아니라, 축소된 제작 환경에서도 상업적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약 20명 규모의 스태프로 3주간 13회차 촬영을 진행하는 등 기존 장편 영화 제작 시스템을 크게 압축한 방식으로 완성됐다. 통상 60명 안팎의 스태프와 한 달 이상의 촬영 기간이 요구되는 환경과 비교하면 상당히 간소화된 구조다.
여기에 배우들이 노개런티 또는 최소 개런티로 참여하는 방식이 더해지며 제작비를 낮췄고, 이는 감독에 대한 신뢰와 오랜 협업 관계를 기반으로 가능했던 선택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얼굴’은 제작비, 인력, 촬영 기간 전반을 축소하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와 흥행 성과를 동시에 확보한 사례로, 저예산 제작 모델의 현실적 가능성을 보여줬다. 완성까지의 기간이 짧고 제작 리스크가 낮으며 손익분기점 도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현재 투자 환경이 위축된 한국 영화 산업에서 유효한 대안으로 주목 받았다.
연 감독은 이러한 흐름을 곧바로 ‘실낙원’으로 이어간다. ‘실낙원’은 제작비 5억 원 안팎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9년 전 아들을 잃은 엄마 앞에 성장한 모습의 아들이 돌아오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심리 스릴러로 김현주와 배현성이 각각 엄마와 아들 역을 맡아 인물 간의 감정과 관계에 집중하는 구조를 취한다.
대규모 세트나 시각효과 대신 서사와 연기에 무게를 두는 방식은 ‘얼굴’에서 확인된 제작 방향을 확장한 선택으로 읽힌다. ‘실낙원’ 역시 유사한 제작 시스템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해당 모델이 일회성 실험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방식으로 자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배급 흐름에서도 특징적인 지점이 포착된다. ‘실낙원’은 연상호 감독이 설립한 와우포인트가 제작하고 CJ ENM이 배급을 맡는다. 앞서 ‘얼굴’ 역시 플러스엠이 배급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대형 배급사가 저예산 프로젝트에 연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흐름이 눈에 띈다.
반면 ‘군체’는 정반대의 지점에 놓여 있다. 약 170억 원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이 작품은 감염 아포칼립스 장르를 기반으로 한 SF 재난 영화로, 봉쇄된 공간에서 진화하는 감염자들과 생존자들의 사투를 그린다. 전지현을 중심으로 구교환, 지창욱, 고수 등이 출연하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형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부산행’ 이후 이어지는 장르적 계보를 확장하면서도, 보다 스케일을 키운 세계관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점은 두 작품이 단순히 규모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제작 논리를 기반으로 병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낙원’은 낮은 제작비와 빠른 제작 속도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손익분기점 도달 가능성을 높이는 구조다. 반대로 ‘군체’는 대규모 투자와 글로벌 세일즈를 통해 수익의 상단을 확장하는 고위험·고수익 모델이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선택지는 아니다. 연상호 감독이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부산행’을 통해 글로벌 흥행 경험과 장르적 브랜드를 구축한 감독이라는 점, 꾸준히 상업성과 작가성을 오가며 필모그래피를 확장해온 이력, 그리고 장기간 협업해 온 제작진과 배우 네트워크가 모두 기반으로 작용한다.
또한 배우들이 개런티를 낮추거나 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있는 배경에는 감독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 있다. 동시에 대형 투자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흥행 이력 역시 ‘군체’와 같은 대작을 성립시키는 조건이다. 서로 다른 방향성을 지닌 두 프로젝트를 모두 성과로 입증할 수 있을지, 연상호 감독의 선택이 올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