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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정의 난 – 모두가 싫어한 남자의 반란 [정명섭의 실패한 쿠테타㉚]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2.24 17:52
수정 2026.02.24 17:52

보현원에서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고려는 무신 집권기에 접어든다. 반란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지켜본 모두 그 시대가 백 년이나 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무신 집권기는 반란의 시대이기도 했다. 정권을 장악하긴 했지만 국정을 운영할 능력은 없었던 무신들은 오직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독점했고, 곧 자기들끼리도 죽고 죽이는 일을 벌였다. 국가의 지도층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권력투쟁을 벌이는 와중에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건 백성들이었다. 정권을 장악한 무신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면서 권력을 독점하려고 들었다. 이의방이 이고를 죽였고, 정중부와 그의 아들 정균이 이의방을 제거했다. 최후의 승자가 될 것 같았던 정중부와 아들 정균은 젊은 경대승에 의해 나란히 목숨을 잃었다. 경대승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다음 주자는 이의방의 부하였던 이의민의 차지가 되었다.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세상이 뒤바뀌는 와중에 정말 줄을 잘 탄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원정이었다.


고려와 조선시대 사용한 환도 ⓒ직접 촬영

그는 원래 옥을 다루는 장인의 아들이었다. 고려시대 농민이 아닌 장인의 지위가 어땠는지 정확하게 나와있지는 않지만 출세하기는 어려운 지위였다. 거기다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관기, 그러니까 관아에 속한 기생이라는 신분이었다. 따라서 조원정의 아버지 역시 높은 지위나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조원정은 무술 실력이 뛰어났는지 하위 무관으로 활동했다. 아마 힘이 좋아서 특채된 이의민 같은 케이스로 보인다. 만약, 무신들의 반란이 없었다면 조원정은 나름 출세한 옥 장인의 아들로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기 1170년에 벌어진 무신들의 반란으로 그의 운명도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그날 보현원에서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한 무신들 중 한명이 바로 조원정이었다. 그렇게 벼락출세 코스에 접어든 조원정은 나름 줄을 잘 탔다. 이의방의 부하였지만 정중부가 집권하는 동안 별 탈 없이 자리를 유지했고, 경대승이 정중부를 죽인 이후에도 연루되어 처벌받지 않았다. 같은 시기 이의민이 의종을 시해했다는 죄로 개경에 올라가지 못하고 고향인 동경에 은신하고 있던 것과 비교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가난하고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벼락출세를 해서 그런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것이다. 고려사 반역열전에 실린 조원정의 기록을 보면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재물을 불렸는지 잘 나와있다.


조원정은 일찍이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가 되었는데,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은 것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심지어는 말 덮개까지 거두어 자기 집에 보냈으며, 머리가 긴 사람을 보면 반드시 그 머리를 잘라 다리체를 만드니 그것도 짐수레 2개가 넘었다.

이건 약과에 불과하고 국가의 재산인 공해전에서 걷은 세금을 강탈하려고 했다. 결국 이런 엄청난 탐욕과 욕심을 부린 조원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같은 무신이었던 두경승은 물론 다른 무신들도 그를 파직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결국 명종 17년인 서기 1187년, 조원정은 관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평생 줄을 잘 타면서 출세를 거듭했던 조원정은 동료들의 탄핵을 받고 임금이 그것을 승인했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거기다 경대승이 죽고 이의민까지 개경에 돌아온 상태라서 무작정 움직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 동안 너무 탐욕스럽게 지냈고 베풀지 않은 탓에 사방에 적들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궁지에 몰린 조원정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서 자신을 옥죄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었다. 17년 전 보현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믐달이 높이 뜬 밤, 70여명의 자객이 임금이 머물고 있는 수창궁에 침입했다. 그들은 궁궐안을 수색하면서 관리와 내시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면서 임금에게 두경승의 부하라고 거짓말을 했다. 한편, 간신히 궁궐을 빠져나간 좌승선 권절평은 침입자들의 수가 적은 것을 알고 병사들을 모아서 궁궐로 돌아갔다. 그 사실을 안 침입자들은 서문으로 급히 달아났다. 소식을 듣고 달려오던 중랑장 고안우는 도중에 수상쩍은 승려를 체포해서 심문하면서 마침내 반란의 주동자가 누구인지 밝혀졌다. 조원정이 측근인 석린과 고영백, 임충간을 시켜서 수창궁을 공격했던 것이다.


체포된 관련자들이 며칠 동안 국문을 당하고 조원정 역시 체포당했다. 남아있는 기록을 봐서는 혼란스러운 지점들이 있다. 궁궐에 부하들을 보내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정황상 현장에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이런 중요한 상황에 다른 곳에 있었는지 말이다. 지금처럼 빠른 시간내에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임금의 물음에 부하들이 문극겸의 이름을 얘기한 것으로 봐서는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는 누명을 씌우고 그걸 진압하는 모양새를 취하려고 한 것 같은데 모든 게 너무나 허술했다. 결국 모두의 미움을 받았던 조원정은 악착같이 모은 엄청난 재산을 남겨놓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명섭 작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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