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월급과 자동화 역설…세수 절벽의 습격 [로보택스①]
입력 2026.02.17 11:00
수정 2026.02.17 11:00
기계가 가치 주체…무너지는 조세 기반
로봇 밀도 1위, 한국 마주한 세수 절벽
기술 진보와 세금 감소 불평등 심화 경고
양극화 방지 분배 평형수 로봇세 도입 논의
자동화 확산으로 인간 노동이 축소되면서, 노동소득 중심의 조세 구조가 균열을 맞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챗지피티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인공지능(AI)과 로봇 공학은 전례 없는 생산 효율성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양날의 검’처럼 다가온 이 기술 혁명은 인간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을 넘어, 국가 재정의 근간인 소득세 기반을 흔들고 있다.
기업은 자동화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 이면에는 해고된 노동자는 소득을 잃고 국가는 세수를 잃는 ‘자동화의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로봇세(Robot Tax)가 새로운 경제적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무너지는 조세 기반…“사람 대신 기계가 가치 창출 주체”
전통적인 경제 구조에서 국가 재정 핵심은 인간의 노동에서 나오는 소득세와 사회보장 기여금이었다. 이런 공식이 로봇의 등장으로 흔들리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안톤 코리넥(Anton Korinek)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능형 기계가 인간의 인지 및 신체 노동을 대체하면서 가치 창출의 핵심 주체가 되고 있다”며 “기존 노동 가치설에 기반한 조세 체계가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수록 국가가 거둬들이는 근로소득세는 급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세수 감소를 넘어, 복지 수요는 늘어나는데 재원은 고갈되는 ‘재정의 이중고’를 초래한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국세 수입 중 소득세 비중이 30%를 상회한다. 로봇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소득세원이 잠식될 경우, 국가가 수행해야 할 보건, 복지, 교육 분야의 예산 집행 능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분석 자료에서 “AI와 자동화 시스템은 휴일도, 퇴직금도 없이 가동되지만, 이들이 창출한 부가가치에 대해 소득세나 사회보험료를 징수할 법적 근거는 여전히 부재하다”며 “기업이 영업이익 상승으로 법인세를 더 낸다고 하더라도, 소득세 감소분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분석했다.
자동화로 수익이 확대되는 기업 부문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의 현실을 대비해, 기술 진보가 초래한 소득 격차 확대를 상징적으로 담은 이미지. ⓒ챗지피티
세계 1위 ‘로봇 밀도’의 역설…세수 절벽 마주한 한국 경제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로봇 도입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로봇연맹(IFR)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대수를 의미하는 ‘로봇 밀도’에서 한국은 1012대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평균인 162대를 약 6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싱가포르와 독일을 크게 앞지르는 이 데이터는 한국 산업의 첨단화를 대변하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세수 절벽’에 직면할 국가라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로봇이 투입된 공정에서 사라진 노동자의 자리는 단순히 일자리 한 개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해당 노동자가 납부하던 근로소득세,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기여금이 한꺼번에 증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앞당기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지능형 로봇 확산에 대응해 미래 지방세 과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로봇세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방세의 핵심인 소득세분이 로봇으로 인해 줄어드는 상황을 방치할 경우 지방 자생력마저 붕괴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로봇 도입으로 발생한 초과 이윤의 일부를 공공 재원으로 환원해 재교육과 전직 지원에 활용하는 ‘로봇세’ 구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제미나이
효율성은 기업 몫 실직은 사회 몫?…상생 위한 ‘속도 조절 장치’ 절실
더 큰 문제는 ‘부의 양극화’다. 자동화 설비를 갖춘 대기업은 생산 비용을 낮추고 이익을 독점하는 반면,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려날 위험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로봇 도입은 자본 소유주에게는 이득이 되지만 노동 소득 분배율은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불균형은 결국 소비 침체와 경기 불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로봇세는 기술 진보의 혜택이 특정 기업에만 쏠리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산되도록 하는 ‘분배의 평형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연구진은 로봇세가 단순히 세금을 걷는 수단이 아니라, 기술 변화의 속도를 사회가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경제적 방지턱’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로봇세는 영구적인 제도가 아니라, 자동화로 대체되는 현재의 근로자 세대가 재교육을 받거나 은퇴할 때까지만 유지되는 한시적 완충 장치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이 로봇 도입으로 얻는 초과 이윤의 일부를 사회적 비용으로 환원하고, 이를 통해 실직 노동자의 전직을 지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시장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결국 로봇세 논의는 단순한 증세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자산이 되도록 만드는 첫 번째 경제적 합의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동화의 효율성을 누리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지혜로운 해법을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서 있다. 기술의 진보는 막을 수 없어도 그 결실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공동 과제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로봇세는 단순히 부족한 세수를 메우려는 증세 차원이 아니라, 자동화로 인한 급격한 고용 환경 변화 속에서 사회 안전망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라며 “향후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사회적 비용을 합리적으로 분담할 수 있는 법적·정책적 설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