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냉대 딛고 화려한 귀환...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이어 '햄넷'으로 오스카 정조준 [D:영화 뷰]
입력 2026.02.16 14:10
수정 2026.02.16 14:10
골든글로브에 이어 제98회 아카데미 수상 후보
클로이 자오 감독이 영화 ‘햄넷’을 통해 다시 오스카 무대 중심에 섰다. 이번 신작은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여우주연·각색·미술·의상·음악 등 주요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강력한 수상 후보로 부상했다.
ⓒ뉴시스
자오 감독은 2021년 ‘노매드랜드’로 이미 한 차례 오스카 정점에 선 바 있다. 이 작품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과 토론토 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동시에 수상한 역사상 유일한 영화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후 골든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미국프로듀서조합(PGA) 작품상을 휩쓴 데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시상식 레이스를 석권했다. 자오 감독 본인 역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영화사에 이정표를 남겼다.
그러나 당시 수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21년 3월 골든글로브 수상 직후까지 중국 일부 매체는 자오 감독을 “중국 출신 감독”이라 소개하며 성과를 보도했다. 하지만 2013년 미국 매체 인터뷰에서 자오 감독이 “내가 자랄 당시의 중국은 거짓말이 많은 곳이었다”고 언급한 발언이 온라인에서 재확산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후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낸 인터뷰 내용까지 함께 확산되며 논란은 커졌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다가오자 중국 정부의 조치가 이어졌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중국 내 중계가 금지됐고, 관영 매체의 수상 보도는 최소화됐다. 웨이보와 바이두 등 주요 플랫폼에서는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오스카’ 등의 검색이 제한됐으며, 4월 23일로 예정됐던 ‘노매드랜드’의 중국 개봉도 취소됐다. 세계적인 극찬과 달리 본토에서는 상영과 보도가 사실상 차단된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햄넷’을 둘러싼 환경은 당시와는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영화 평점 사이트 더우반에는 작품 페이지와 감독명이 정상적으로 노출되고 있으며, 현재 8점대 초반의 높은 평점을 기록 중이다. 과거처럼 감독의 이름 자체를 지우려는 전면적인 차단 조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러한 기류 변화는 우선 작품의 성격 차이에서 기인한다. ‘노매드랜드’가 현대 미국 사회의 그림자와 경제적 붕괴를 배경으로 한 리얼리즘 드라마였다면, ‘햄넷’은 16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셰익스피어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극이다.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11살 아들 햄넷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남겨진 가족의 상실감이 어떻게 예술적 걸작으로 승화되는지를 세밀하게 조명한다.
이는 특정 국가의 정치적 체제나 사회적 갈등을 건드리기보다 인류 보편의 감정인 사랑과 슬픔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중국 검열 당국의 정치적 해석 여지를 좁힌 것으로 분석된다.
동시에 이번 작품은 중국 영화계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과거 리안 감독이 제인 오스틴의 원작을 유려하게 시각화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통해 영미권의 고전을 성공적으로 재해석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았던 것처럼, 자오 감독이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를 소재로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점은 중국 영화계에 다시금 자부심의 원천이 되고 있다.
토론토 국제영화제 관객상과 골든글로브 작품상 등을 휩쓸며 이미 세계적인 마스터피스로 자리매김한 '햄넷'을 계속해서 외면하는 것은, 오히려 중국 스스로 문화적 고립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중국 내 정식 개봉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중국은 과거 다양한 이유로 외국 영화의 상영을 불허했다. ‘월드워Z’는 좀비 설정, ‘데드풀’ 시리즈는 폭력성과 선정성, ‘고스트버스터즈’는 귀신 소재를 이유로 금지됐다.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 영화 ‘택시운전사’, ‘1987’, ‘기생충’ 등은 민감한 시대상과 주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본토 정식 개봉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같은 전례를 감안하면 ‘햄넷’의 중국 개봉 확정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만 현재까지 공개적인 검열이나 조직적인 비난 여론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자오 감독이 ‘햄넷’으로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쥘 경우, 5년 전 ‘침묵’과는 다른 방식의 중국 대응이 이어질지가 이번 시상식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