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호주 다윈항 놓고 호주와 중국이 으르렁대는 까닭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6.02.08 07:30
수정 2026.02.08 07:30

호주, 국익 위해 中기업 99년 임대 다윈항 운영권 회수 천명

다윈항, 호주 對아시아 관문 항구이자 對中견제 군사 요충지

對中견제에 나선 美, 호주에 핵추진잠수함 제공 카드로 압박

中, 강력 반발…“中기업 이익 보호 위해 행동으로 보여줄 것”


2023년 11월 6일 중국을 방문한 앤서니 앨버니지(왼쪽) 호주 총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중국과 호주 관계에 격랑이 일고 있다. 호주 정부가 중국 기업에 장기 임대한 다윈항 운영권을 회수하겠다고 공식 천명하자 중국 정부가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두 나라 관계가 꽁꽁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이 99년 동안 임대한 다윈항 운영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호주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난 29일 보도했다. 호주 정부가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내세워 다윈항 운영권 회수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중국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보복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결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다윈항은 호주 북부 행정구역인 노던 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주의 주도(州都) 다윈시의 외곽 항구다. 호주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는 만큼 ‘맨 꼭대기’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와의 거리가 불과 400㎞쯤 떨어져 일찍이 영국의 동남아시아 개척과 호주 대륙 탐사를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맡았다. 영국 탐사선 비글호가 1839년 이곳을 방문해 과거에 함께 항해한, 진화론으로 유명한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이름을 따서 ‘다윈항’을 불렀다.


일본은 2차대전 당시 상업용과 군사용 부두가 공존한 이곳에 전투기 188대를 동원해 무려 57회에 걸쳐 융단폭격을 퍼부어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영국의 동남아 거점인 이 지역을 파괴해야 동남아를 석권할 수 있다고 일본은 판단한 것이다. 다윈항이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만큼 지금은 호주의 대(對)아시아 무역의 핵심 관문 역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대양주 진출을 견제할 수 있는 군사 요충지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1년 11월 다윈항을 찾아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 해병대의 호주 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이후 다윈항 인근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미 해병대는 상시 주둔하게 됐다. 미국은 다윈항 근처에 대규모 공군 급유시설과 해군 기지를 세우는 등 군사력을 강화하는 한편 호주와 함께 다윈항 인근 영해에서 ‘탈리스만 세이버’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호주 최북단 노던 테리토리주의 주도 다윈 항구. ⓒ 신화/연합뉴스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검’이란 뜻을 담고 있는 탈리스만 세이버 훈련은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와 호주 합동군사령부가 공동으로 주관해 격년제로 개최하는 다국적 연합훈련이다. 지난해 7월 3~27일 열린 이 훈련에는 한국 해군·해병대 820여명과 마라도함·왕건함·KAAV·마린온 등이 참가했다.


다윈항을 둘러싼 중·호주 간 갈등의 시작은 10여년 전인 2015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주 노던 테리토리주 정부가 5억 600만 호주달러(약 5177억원)에 다윈항 운영권을 중국 산둥(山東)성 항만물류·부동산개발 업체인 란차오(嵐橋·Landbrige)그룹에 99년간 넘기는 임대 계약을 체결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중앙정부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원했던 노던 테리토리 정부가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노던 테리토리주는 인구 24만명에 면적 142만㎢(한국의 약 14.5배)로 면적은 넓고 인구는 적은 데다 제대로 된 산업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당시 임대 계약은 국가안보 논란으로 이어지며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더군다나 호주가 미국·영국과 결성한 3국 군사동맹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면서 다윈항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호주는 새로 보유하게 될 원자력(핵)추진 잠수함의 모항(母港)으로 다윈항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전략 폭격기 주둔을 위한 다윈 공군기지 확장에 나섰고,2000명 규모의 미군 해병대가 연중 6개월 간 훈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2022년 취임 이후 문제의 계약 파기를 통한 운영권 회수를 추진했다. 급기야 지난해 5월 총선을 앞두고 다윈항을 다시 호주인의 손으로 되찾겠다고 공식화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다윈항을 호주 소유로 되돌리는 것은 호주 국익에 부합하는 일로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다윈항은 호주인의 손에 돌아와야 한다. 관련 상업적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중국은 발끈했다. 중국 정부는 다윈항 운영권에 대한 강제 매각조치가 이뤄진다면 중국 당국으로선 자국 기업 란차오그룹에 대한 권리 보호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샤오첸(肖千) 호주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달 28일 “다윈항이 지난해부터 적자를 면하고 흑자로 돌아서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시점에서 호주 정부가 다윈항을 되찾겠다고 나섰다”며 “손해 볼 때는 외국 기업에 임대하고 수익이 나니 다시 찾겠다는 사업 방식은 옳지 않다”고 앙앙불락했다.



지난해 3월24일 호주 동남부 빅토리아주 애벌론 공항에서 열린 에어쇼 행사에서 리처드 말스(가운데) 호주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미국에서 처음 인도된 하이마스(HIMARS·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를 소개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이어 “적절한 시기가 되면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중국 기업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는 결의를 보여줄 말과 행동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궈자쿤(郭嘉昆) 외교부 대변인도 같은 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중국 기업이 시장가격을 통해 다윈항 임대권을 취득했다면서 “정당한 권리와 이익은 전적으로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다윈항 갈등 배경의 중심에는 미국이 자리잡고 있다.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과 가장 가까운 다윈항은 미국으로선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을 견제할 수 있는 교두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다윈항 운영권 소유 기업인 란차오그룹이 중국공산당 및 인민해방군과 연계된 민간기업으로 알려졌다. 호주뿐 아니라 서방권에서 다윈항이 중국의 정보수집 또는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통제하는 다윈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돈로 독트린’과도 정면 충돌한다. 지난해 12월 5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DS)을 통해 '먼로 독트린'(1823년 미국의 서반구 리더십 확립 정책)을 잇는, 먼로 독트린을 재해석한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를 내걸고 서반구를 미국 국가안보의 최우선 순위로 올렸다. 코롤러리는 ‘필연적 결과’라는 의미로, 기존의 원칙을 재확인하되 그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일종의 업그레이드를 뜻한다. '돈로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마당에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재벌 리카싱(李嘉誠) 소유의 부동산 업체 청쿵허치슨(長江和記·CK허치슨)이 보유한 파나마 항구의 운영권 회수에 사실상 성공해 의기양양하다. 파나마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홍콩 기업 청쿵허치슨이 파나마 운하의 양쪽에 위치한 태평양 연안의 발보아 항구와 대서양 쪽의 크리스토발 항구를 2021년에 경쟁 입찰 없이 25년 연장 계약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청쿵허치슨은 두 항구의 운영권을 박탈당했으며, 항만 시설에서 철수하는 절차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오커스가 출범한 후 호주의 다윈항 운영권 회수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졌다. 중국 견제가 목적인 미국이 오커스를 통해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판매하기로 한 까닭이다. 미국은 호주에 “다윈항 운영권을 속히 되찾아야 핵추진 잠수함을 건네주겠다”고 요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오커스 협약에 따르면 2027년부터 미국과 영국이 핵잠수함을 호주에 순차적으로 배치하고 2030년대 초반 호주가 미국산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3척을 구매한다. 2040년대 영국과 호주가 공동 개발한 차세대 핵잠수함도 실전에 배치될 전망이다.


ⓒ 자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중국이 호주 다윈항 운영권 회수의 배후에 ‘검은 손’이 보인다며 “일부 국가는 종종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유지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 국가의 이익에 기반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 국제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지난 3일 사설을 통해 미국을 맹비난한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앨버니지 총리는 중국이 항구 운영권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몰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주 정부가 중국 란차오그룹의 다윈항 운영권 계약 파기를 강행하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구체적인 방법이나 시기를 확정하지는 않았다. 미국 사모펀드 등이 상업적 방식으로 다윈항 운영권을 매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여기에 스티브 파인버그 전쟁부(국방부) 부장관이 설립한 사모펀드 서버러스캐피털(Ceberus Capital)이 다윈항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정부가 다윈항 운영권 계약 파기를 강행할 경우 중국 당국이 호주산 와인·석탄·쇠고기 등을 대상으로 무역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호주가 2020년 코로나19바이러스 기원을 조사하라고 중국에 요구하면서 두 나라 관계가 경색돼 중국이 호주산 와인·석탄 수입을 중단하는 등 보복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