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라니’ 속출에 입 닫은 헌재…공유 킥보드 미래는 [뭔일 easy]
입력 2025.12.31 07:00
수정 2025.12.31 07:00
헌재, 개인형 이동장치 면허 소지·보호장구 착용 '합헌' 결정
자유롭게 시장 확대보다는 '질서 정비' 단계로…"안전 우선"
무면허 전동킥보드 사고 속출하자…대여 업체 처벌 시작
라임, 윈드 등 외국계 업체 철수…작아지는 시장 규모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뉴시스
혹시 '킥라니'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킥보드와 고라니를 합친 표현인데요.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와서 사고를 유발하는 전동킥보드 이용자를 뜻하는 은어입니다.
전동 공유 킥보드가 최근 5년 사이 급속도로 늘면서, 이와 관련한 사고도 늘 뒤따라왔는데요. 최근 헌법 재판소가 전동킥보드와 관련해 편의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판결을 내려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습니다.
먼저, 이 얘기를 하려면 전동킥보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던 2021년으로 돌아가봐야하는데요. 당시에 전동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가 늘면서 도로 혼잡과 같은 문제가 생기자, 국회는 도로교통법을 통해 제한을 뒀습니다.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 이상의 면허를 취득한 사람만 운전할 수 있도록 했고,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처벌도 마련했죠. 맨몸으로 올라타 시속 20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고, 도로와 도보를 가리지 않고 다니다보니 검증된 이들이 이용해야한다고 본겁니다.
이 법이 여전히 잘 지켜졌다면 사회문제로 떠오르지 않았을 테지만, 문제는 사각지대에서 발생했습니다. 대여소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길가에 세워져있는 전동 킥보드를 앱으로 손쉽게 빌리고, 탈 수 있다는 점이었죠. 부모님 아이디로 등록을 하고 이용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성인들도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이들은 드물었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규제가 조여오자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겁니다. 킥보드는 자전거처럼 그저 이동수단인데, 개인형 이동장치에만 과도한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는 건 불평등하다는 논리였죠.
한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강모씨 등 5명은 도로교통법이 개정된 2021년 8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는데요. 이들은 개정 도로교통법 중 무면허 운전 처벌 조항, 안전장구 착용 의무화 조항이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목되는 건 이와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인데요. 헌재는 해당 헌법소원이 위헌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심지어 이 결정은 재판관 전원 일치로 결정됐죠.
전동킥보드는 일정 속도 이상 주행이 가능하고, 사고가 나면 중상 위험이 높아서 자전거와는 위험 수준이 다르다고 판단한 겁니다. 또 이용자뿐 아니라 보행자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공공의 안전을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거죠.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전동킥보드 업계에는 상당한 경고 신호가 울리게 됐는데요. 최근엔 경찰에서 무면허 이용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이유로 공유 킥보드 업체 관계자를 입건한 사례도 처음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플랫폼의 관리 책임이 더 커질 수 밖에 없겠죠.
업계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공유 킥보드 시장을 건강하게 키워갈 법안도 분명히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동킥보드는 이제 월 평균 이용자가 300만명을 넘을 정도로 사랑을 받는 이동수단으로 자리잡았으니까요. 업체에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는, 정부도 함께 노력할 의무가 분명히 있죠.
그간 업계에서 강력하게 요구했던 PM(개인형 이동장치)법에도 속도가 붙었는데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17일 전동킥보드 등 PM을 이용할 때 만16세 이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전교육을 이수하도록 의무화하는 ‘개인형 이동수단의 안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하기도 했습니다.
법안에는 PM의 최고 속도를 시속 25㎞에서 시속 20㎞로 낮추는 내용이 담겼고, 현재 자유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전동킥보드 대여사업을 지자체에 등록하도록 전환해 사업자 관리와 감독을 강화하는 내용도 함께 반영했습니다.
다만, 공유 킥보드 업계에서는 여전히 더 많은 부분이 명확해져야 한다고 보는데요. 특히 공유 킥보드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편리한 주차 시스템과 관련해 합리적인 기준을 둘 필요가 있고, 면허 인증과 관련해서도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유 킥보드 업체를 모두 죽일게 아니라면 업체들의 운영편의도 고려해줘야 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이번 헌재의 결정은 ‘편의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되는데요. 전동킥보드도 이제는 하나의 교통수단으로서, 자유롭게 시장을 확대하는 단계에서 질서를 정비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