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악단', 무교에겐 버거운 찬양 [볼 만해?]
입력 2025.12.31 08:49
수정 2025.12.31 08:49
이 기사에는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막연하게 북한 보위부가 외화벌이를 위해 '가짜 찬양단'을 만든다는 설정의 블랙코미디 성격의 음악영화로 예상됐다. '찬양'이 매개가 되더라도 기독교 색이 너무 강하기보다는 대중적인 노래와 코믹한 상황극이 중심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면 생각보다 훨씬 '홀리'하다. 찬양팀 정도가 아니라 통성기도를 연습하고, 대놓고 기도하고, 기독교 색이 짙은 노래가 반복된다. 무교인 관객 입장에선 어느 순간부터 이게 지금 뭔가 싶은 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스튜디오타겟
'신의악단'은 북한 보위부 소속 장교가 외화벌이를 위해 가짜 찬양단을 조직한다는 신선한 설정을 담은 작품이다. 초반부의 재미는 설정이 주는 역설에서 나온다. 신앙심 제로인 인물들이 억지로 '아멘'을 외쳐야 하는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하고 그런 상황을 활용한 개그가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박교순(박시후 분)이 기독교를 거부하면서도 연기를 위해 성경을 읽으며 그 안의 말씀에 자기도 모르게 공감하고 다시 혼란스러워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내는데 문제는 그 가짜 찬양이 중반 이후부터는 너무 진지하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악단 단원들이 "어차피 연기하는 걸로 아는데 진심을 담아 해도 모르는 거 아니냐"는 대사를 던지는 순간부터 영화의 노선이 분명해지는데 통성기도를 연습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진지하게 주기도문을 외우며 신실한 마음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 보위부 대위 김태성(정진운 분)이 '광야를 지나며'를 부르는 장면 역시 영화에서는 그 노래를 기점으로 보위부 군인들이 진정으로 기독교에 빠져드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지만 무교인 관객에게 분명한 거북함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해당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공포 영화도 아닌데 고개를 돌리게 되는 이유는 종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영화의 장면들이 굉장히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종교적 색채를 빼고 보면 기승전결은 탄탄한 영화다. 다만 코미디 요소와 찬양단을 끊임 없이 의심하고 월남하려는 변절자를 찾는 장면 사이에 중간이 없다. 웃길 때는 분명 웃긴데 갑자기 무서운 배경음악이 깔리면 분위기가 확 바뀌며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고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가 나오는 형식이 반복돼 영화가 의도한 개그 장면에서도 마음 놓고 웃기가 어렵다. 장면 전환마다 중간이 없어 연결되는 감정선이 잘려 나간 듯한 인상도 남는다. 실제로 박시후는 인터뷰에서 "원래 2시간 반 분량에서 '30분 이상' 편집됐다"며 "교순이 과거 어떤 일을 겪었는지 왜 냉혈한이 됐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이 삭제됐다"고 밝힌 바 있다.
어린 교순이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일기를 학교에서 썼다가 발각돼 부모님을 잃고 보위부 장교가 된 후 기독교 신자인 외삼촌을 자기 손으로 직접 총을 쏴 죽이는 과거 장면은 영화 중반부에 쪼개져 들어가 있는데 때문에 영화를 처음 보면 내용이 정확히 이해 되지 않아 놓친 부분이 있는지 고민하며 스토리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다. 과거 장면이 전부 나온 후에야 영화의 전개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에 차라리 원래대로 초반에 교순의 과거 서사를 몰아넣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찬양단이 무대를 끝마치면 전원 사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교순과 김태성이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악단 단원들을 압록강을 건너가게 하는 엔딩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둘이 기독교에 교화되며 찬양단과 친밀감을 가지는 건 이해하겠으나 그 며칠동안의 정 때문에 명예와 목숨을 모두 버린다는 결말은 감동적이지만 영화가 끝나고 곱씹어볼수록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엔딩 이후 쿠키 영상은 가능하면 보고 나오는 편이 낫다. 찬양단이 못다한 무대가 펼쳐지는 평행선에서는 엄마와 외삼촌까지 관객석에 앉아 노래하는 교순을 애틋하게 바라보는데 노골적인 감동 포인트지만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온 사람들은 여기서라도 해피엔딩을 맞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한층 홀가분하게 극장을 나올 수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남한이나 외국의 모습 없이 북한만 보여주는 작품이 또 있었나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폐쇄적인 세계 안에서 스토리가 계속된다. 종교에 낯선 공간까지 더해져 거북함이 배가될 수 있으나 어떻게 보면 연기력이 보장되기에 불쾌한 느낌이 남는 걸 수도 있다. 실제 북한 장교 출신 선생님이 촬영장에서 북한 말투 하나하나 피드백하며 퀄리티를 높였고 박시후는 "대사를 녹음해서 듣고 반복하며 수백 번 연습했다"고 자신한 만큼 그 노력은 리얼리티를 높였다.
'신의 악단'은 호불호가 명확한 영화다. 기독교 정서에 익숙한 관객은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겠으나 무교 관객에게는 중반 이후 확실히 버거울 수 있다. 내용 역시 휴머니즘과 감동 코드가 과할 순 있지만 과거로 인해 기독교를 부정하다가도 결국 감화되는 교순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마지막에는 악단 단원들의 편에 서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연말연시 가족들과 영화관에 가서 실패 없는 무난한 선택을 하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영화다. 러닝타임 110분, 15세 이상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