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 아니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2.25 07:30
수정 2025.12.25 07:30

크리스마스는 상업화 속도가 빨라져 산타클로스가 주인공을 차지

12월 25일은 로마 태양신 축제일을 기독교에 적용시켰다는 학설이 유력

인류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 매일매일을 크리스마스로 여기는 자세 필요

지난 12월1일 백악관 그린룸에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레고 초상화를 배경으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어 있다. ⓒ AP=연합뉴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성탄절(聖誕節)로 번역되는 크리스마스(Christmas, 그리스도를 예배한다는 뜻)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다. 하지만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의 사랑이나 용서는 잊힌 채 지구촌 곳곳이 분쟁에 휩싸여 있다. 크리스마스 자체도 상업화에 깊게 오염되어 있다.


1931년 코카콜라가 하얀 수염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를 광고에 등장시킨 이후, 크리스마스는 세속화와 상업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예수는 잠시 옆으로 비켜 나 있고 루돌프 사슴을 끌고 다니는 산타클로스가 주인공이 되었다. 산타클로스는 튀르키예 지방에 살던 성(聖)니콜라우스 정교회 주교였다는 설이 있다. 비(非)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언급해야 하는 종교적 부담 없이 ‘산타클로스’만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반면, 기독교인들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려는 예수의 탄생 목적이 뒤로 가려질까 우려한다.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은 이스라엘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에 속해 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km도 안 되지만, 이스라엘군의 무서운 검문소를 지나야 도착할 수 있다. 지난 12월 6일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앞쪽에 있는 구유광장에서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전쟁을 시작한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대형트리 점등식이 열렸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339년 지었다는 예수탄생교회는 입구가 높이 120㎝, 너비 80㎝로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어 ‘겸손의 문(Door of Humility)’이라고 불린다. 십자군 시대 무슬림들이 수레를 갖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지만, 지금은 누구나 아기 예수 앞에서 겸손하고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중요해졌다.


이번 대형트리 점등식으로 얼핏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온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아직 가자지구 전쟁이 끝나지 않은데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다시 험악한 말을 주고받고 있다. ‘평화의 왕’이 오신 동네이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결, 유대교와 이슬람의 갈등 속에 진정으로 예수가 환영받는 자리는 없다.


예수의 동족인 유대인과 이스라엘은 비즈니스 목적 이외에는 크리스마스를 혐오한다. ‘반(反)유대주의’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그들이지만 자신들의 ‘반기독교’에 대해서는 시치미를 뚝 뗀다. 그러면서 과거 십자군들이, 그리고 마르틴 루터의 견해를 악용했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한 스토리만 강조한다. 이스라엘 명문 대학인 테크니온에서 학생회가 교내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자 랍비가 이를 금지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교내 소수 기독교인이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에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유대인들도 크리스마스 기념에 개입하지 말라”고 맞섰으나 효과는 없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예수는 여전히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요즘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이슈는 인사말이다. 미국은 점점 다문화 되고 유대인과 무슬림의 파워가 커지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부담스러워한다. 기독교 명절인 크리스마스와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의 시기가 매년 비슷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여러 종교를 뭉뚱그린 ‘해피 홀리데이’라는 인사가 득세했다.


미국에서는 1923년부터 매년 백악관 앞에서 ‘내셔널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열린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 전(前) 대통령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사용하기 꺼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해피 홀리데이’란 말은 미국적 가치를 희석시키고 있다”라면서 적극적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12월 25일이 예수가 탄생한 날짜가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라 탄생을 기념하는 날일 뿐이다. 서방교회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12월 25일로 크리스마스를 지키지만,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동방정교회는 1월 7일로 지킨다. 성경에는 예수가 태어난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수가 태어나던 밤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 떼를 지켰다는 성경 구절을 감안하면, 이스라엘의 12월 25일은 거리가 멀다. 우기인 데다 기온이 꽤 내려가 춥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날짜에 대한 의견이 많다. 가령 예수가 세례 요한보다 6개월 늦게 태어났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제사장의 근무 시스템을 추적하면 예수는 초막절(Sukkot) 무렵인 9~10월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또는 봄에 태어났다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지하에 있는 탄생 지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최홍섭

그렇다면 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했을까. 여기에도 확인되지 않은 설(說)이 참으로 다양하다. 가령 기독교 공인 이전인 274년 로마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이란 신전을 지으면서 12월 25일을 태양절로 제정했는데, 로마에서 기독교의 입지가 높아지자 그날을 예수 탄생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다른 주장도 있다. 로마인들은 동지(冬至) 일주일 전부터 한 달간 농경신인 사투르누스와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했는데, 미트라의 생일이 바로 12월 25일이었다고 한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태양신 미트라에 대한 헌신적 추종자였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융성해지자 예수를 예배하는 날을 숭고한 태양의 날인 ‘Sunday’로 정하고 생일도 똑같이 정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스토리도 있다. 12월 21일 동지는 해가 가장 짧아 태양신 니므롯이 그날에 죽었고 12월 24일 해가 길어지며 살아났는데, 죽은 니므롯이 아들인 담무스로 12월 25일에 환생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350년 교황 율리우스 1세 또는 354년 리베리우스 교황은 12월 25일을 공식적인 크리스마스로 제정했다고 한다. 태양신의 생일로 숭배하는 전통을 로마 가톨릭에서 예수 탄생일로 둔갑시켰다는 얘기다. 로마 가톨릭 입장에서는 이교도의 풍습이나 축제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기독교화(化)하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켈트족의 삼하인 축제를 수용하여 핼러윈으로 변형한 것과 비슷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영국의 청교도들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반대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더욱 강력한 반대 운동을 펼쳤다. 청교도들은 “성경에는 예수 탄생일을 기념했다거나 중시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으므로 우리도 기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풍습이 문란하고 인간의 영혼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659~168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州)는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1870년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은 크리스마스를 공식적인 미국 연방 공휴일로 인정했다.


물론 여기에 포인트는 다른 곳에 있다. 기독교에서는 구원의 메시지가 중요할 따름이지, 특정한 장소나 날짜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니 12월 25일이면 어떻고 7월 1일이면 또 어떤가. 지금 와서 바꿀 것인가. 그저 그날을 맞아 예수의 사랑과 평화를 되새기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에선 1970년대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집마다 찾아가 캐럴이나 찬송가를 부르는 새벽송이란 게 있었다. 집주인이 대문 앞에 나와 선물을 주곤 했다. 음반 가게에서는 캐럴을 크게 틀고 분위기를 돋우었다.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요란하게 빛을 발했다. 하지만 “저작권 침해”니 “종교 편향”이니 하는 이유로 예전 같은 장식이나 음악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종교 여부에 상관없이 지금 50~60대 이상에서는 그 추억이 그립다는 사람이 많다.


말장난 같지만, 예수의 정신을 기리자면 1년 모든 날이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상업화된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사랑과 평화의 크리스마스 정신으로 매일매일을 산다면 인간의 삶은 보다 평화로워질 것인가. 상상에 맡긴다. “메리 크리스마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