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 아이템 가치, 블록체인이 지킨다" 넥스페이스가 그리는 게임의 미래[인터뷰]
입력 2025.12.16 14:02
수정 2025.12.16 14:13
김정헌 넥스페이스 COO 인터뷰
"무한 생성 아이템은 끝…수량 제한으로 가치 보존"
회사 매출 약 20% 정기적 소각…선순환 구조
김정헌 넥스페이스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지난 3일(현지시간) 두바이에서 열린 '바이낸스 블록체인 위크 2025' 현장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황지현 기자
밤새 사냥해 얻은 희귀 아이템이, 거금을 들여 산 장비가 몇 달 뒤 업데이트 한 번에 '휴지 조각'이 되는 경험. 롤플레잉게임(RPG) 유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허탈함이다. 게임사의 수익을 위해 아이템은 무한정 찍혀 나오고,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으로 유저의 자산 가치를 갉아먹는다.
이 오래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대표 게임사 넥슨의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칼을 빼 들었다. "아이템의 총수량을 제한한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규칙 하나로 게임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두바이에서 열린 '바이낸스 블록체인 위크 2025' 현장에서 만난 김정헌 넥스페이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 몇 년간 '코인 팔면 돈 된다'는 식의 거품이 꺼지고 이제는 진짜 게임의 재미를 위해 블록체인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옥석 가리기의 시기"라며 "우리는 블록체인이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넥스페이스는 넥슨의 블록체인 자회사로, 메이플스토리 IP 기반 웹3 생태계인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MSU)를 전개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규제가 명확한 환경을 기반으로 블록체인 게임의 글로벌 표준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구성원의 60~70%가 넥슨 출신으로 총 30여명이 현지 본사에서 근무 중이다. 지난 5월에는 MSU의 첫 블록체인 게임인 메이플스토리 N을 글로벌 출시하며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다.
김 COO는 스스로를 '평생 메이플스토리 팬'이자 '헤비 과금러'라고 소개했다. 그는 "과거 게임에 수천만원을 썼지만, 신규 아이템이 나올 때마다 기존 아이템 가치가 80~90%씩 폭락하는 것을 보며 허무함을 느꼈다"며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에서는 '수량 제한' 시스템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아이템이 무한정 찍혀 나오지 않고 총량이 정해져 있으니 인플레이션에 의한 가치 훼손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에서는 아이템에 총량 제한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특정 아이템의 경우 5년간 총 2만5000개만 발행되도록 설계돼 있으며 출시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실제 유통 물량이 100개 미만에 그칠 수 있다. 유저들은 블록체인을 통해 공개되는 이 같은 수량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향후 공급 흐름을 고려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김 COO는 "지난 6개월간 시스템을 운영한 결과, 유저들이 '이 아이템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며 선제적으로 매집하거나 거래 전략을 세우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투명한 수량 공개가 아이템 가치 방어뿐 아니라 경쟁 구도와 거래 과정 자체의 재미를 강화하는 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넥스페이스는 지난 3~4일(현지시간) 두바이에서 열린 '바이낸스 블록체인 위크 2025'에 부스를 설치해 이벤트를 진행했다. ⓒ데일리안 황지현 기자
이러한 전략은 수치로도 증명됐다. 서비스 초기 봇(Bot)과 매크로가 대거 유입됐지만 이를 걸러낸 후 확인한 '진성 유저'들의 잔존율(Retention)은 약 50%에 달했다. 김 COO는 "봇과 매크로를 제외하고 실제 유저로 추정되는 10만명 정도의 모수를 봤을 때 잔존율은 50% 수준"이라며 "일반적인 웹2 MMORPG의 30일 잔존율이 10%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유저가 직접 생태계에 기여하는 '참여형 모델'도 자리를 잡았다. 넥스페이스는 유저들이 API를 활용해 직접 게임에 필요한 툴을 만들도록 장려한다. 실제로 한 유저는 수백 개의 도감 아이템 최저가를 한눈에 정렬해 주는 사이트를 개발해 다른 유저들의 불편을 해소했다. 김 COO는 "게임사가 미처 챙기지 못한 빈틈을 유저들이 메워주고 우리는 그 기여를 인정해 수수료를 나눠주는 보상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넥스페이스는 메이플스토리뿐만 아니라 넥슨의 다른 강력한 IP(지식재산권) 확장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김 COO는 "회사명을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가 아닌 '넥스페이스'로 지은 것은 넥슨의 다양한 IP를 담기 위함"이라며 "마비노기나 던전앤파이터 같은 대형 IP가 들어온다면 그 특성에 맞춰 새로운 형태의 게임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토큰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소각(Burn)' 정책도 언급했다. 그는 "회사 매출의 약 20%를 정기적으로 소각해 토큰의 희소성을 높이고 이것이 다시 게임 아이템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COO는 블록체인 게임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규제 문제로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접속이 제한돼 있지만, 글로벌 시장은 디지털 이코노미 육성을 위해 규제를 정비하는 추세"라며 "편법보다는 컴플라이언스를 철저히 준수하며 좋은 선례를 만들다 보면 닫혀 있는 시장도 결국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