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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광야, 대학동 고시촌에 뜬 태양…‘광태소극장’ [공간을 기억하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12.12 14:08
수정 2025.12.12 14:08

[다시, 소극장으로㉛] 관악구 대학동 광태소극장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서울 관악구 대학동(구 신림9동). 가파른 언덕과 좁은 골목이 얽히고설킨 이곳은 한때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고시생들의 치열한 삶터였다. 고시제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저렴한 물가와 젊음의 열기가 공존하는 이 동네의 한 켠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광태소극장’이다.


건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정갈하게 정돈된 객석과 벽면 곳곳에 지난 10년간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작품의 포스터와 배우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15년 개관 이후, 척박한 예술 환경 속에서도 뚝심 있게 버텨온 광태소극장의 현재 모습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전문적인 면모를 갖췄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초록색 당구 초크 가루가 겹겹이 쌓인 먼지 구덩이, 그곳이 광태소극장의 태동지였다.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광태소극장은 이제 명실상부한 지역 문화예술의 거점이 됐다. 전단아 총괄 프로듀서는 광태소극장을 이끌어오며 배우이자 기획자, 그리고 경영자로서 1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다.


서른 즈음에 찾아온 시련, ‘내 극장’을 꿈꾸게 하다


광태소극장의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단아 프로듀서와 조신후 대표는 서른 줄에 접어든 배우들이었다. 치열하게 현장을 누비던 그들에게 상업영화 주연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거나,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때 대표님이 ‘우리만의 극장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겁이 났습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금수저’도 아니고, 자본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었으니까요.”


가진 것이 넉넉지 않아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관악구 대학동 일대를 뒤져 찾아낸 지하 당구장. 두 사람은 16시간 동안 쉬지 않고 페인트칠을 했고, 중고나라에서 무료 나눔 받은 장의자로 객석을 채우고, (무대)단을 쌓았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서로 ‘누구 하나라도 포기하면, 그 순간 끝내자’라고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못질을 했습니다. 조명과 음향은 기술이 있으신 작은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죠. 그렇게 우리의 땀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극장의 꼴을 갖춰나갔습니다.”


대학로가 아닌, 접근성이 떨어지는 대학동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 프로듀서는 이를 ‘예술가의 생존’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교통이나 접근성은 분명 약점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곳은 밥값 5000원, 커피 1000원일 정도로 물가가 저렴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예술가들이 밥값 걱정 덜면서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곳, 즉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동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이런 물가와 정서를 가진 곳이라면, 접근성의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죠.”


그의 말처럼 대학동은 꿈을 꾸는 청년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광태소극장은 그들에게 단순한 공연장이 아닌, 예술적 허기를 채워주는 쉼터이자 일터가 되기를 자처했다.


‘광야의 태양’, 하이브리드 창작소로 진화하다


극장의 이름인 ‘광태’는 ‘광야의 태양’의 줄임말이다. 거칠고 막막한 예술의 길(광야)을 걷는 이들에게 따뜻한 빛(태양)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초기에는 ‘썸컴퍼니(SOM)’라는 이름을 혼용하기도 했다. ‘Sun of Moor’의 약자였는데, 현재는 ‘광야의 태양 컴퍼니’로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단순한 극단을 넘어 영상 콘텐츠 제작 법인인 ‘주식회사 앤노엔(AND NO END)’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희는 무대와 스크린의 경계를 두지 않습니다.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Hybrid) 창작소’입니다. 소속 아티스트들은 배우이면서 동시에 기획, 연출, 촬영, 편집까지 해내는 크리에이터들입니다. 예를 들어, 정단원인 정윤 아티스트는 배우이면서 동시에 조연출, 조명·음향 오퍼레이팅, 그리고 영상 편집과 CG까지 수준급으로 해내는 핵심 인력입니다. 저 역시 배우 활동과 더불어 총괄 프로듀서로서 기획과 경영을 맡고 있고, 조신후 대표님도 배우이자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으로서 현장을 지휘합니다. 이런 인력들을 기반으로, 2022년에는 연극과 영화를 결합한 연쇄극을 선보였고, 최근에는 AI 기술까지 융합한 공연을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전략은 성과로 이어졌다. 자회사 앤노엔이 제작한 장편영화 ‘틈새’는 ‘2025 제15회 충무로 단편·독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숏폼 드라마 ‘나는 너를 기억한다 : 광명동굴’은 경기콘텐츠진흥원 지원사업에서 1위를 차지했다. 무대의 호흡과 영상의 문법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 광태소극장만의 경쟁력인 셈이다.


10년의 무게, 그리고 멈추지 않는 꿈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극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 프로듀서는 그 원동력에 대해 “거창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솔직히 처음부터 ‘10년 이상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언제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털고 나갈 수 있도록, 대출 같은 무리한 확장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저나 대표님 중 한 명이라도 지쳐서 포기하면, 그때는 미련 없이 그만두자고 생각했었죠.”


역설적이게도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퇴로를 열어둔 것이 하루하루를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거창한 미래보다는 당장 눈앞의 창작 활동을 지속하는 데 집중했고, 지원사업과 교육 등 생존을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냥 열심히’ 하루를 채웠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도 깊어졌다. 초기에는 막연히 동네의 발전을 기대했다면, 지금은 태도가 달라졌다.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 지역에 융화될 수 있을지, 우리의 활동이 어떻게 지역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관악구 유일의 등록 민간 소극장으로서 문화의 불씨를 지키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지난 10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교육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딜레마는 전 프로듀서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이다. “프로 배우를 육성하고 싶은 열정으로 혹독하게 가르쳤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상처가 되기도 하더군요. 서로의 기대치가 달라 관계가 틀어질 때 참 힘들었습니다. 한때는 취미 위주의 교육으로 타협해 볼까 했지만, 결국 ‘적당히’ 하지 못하는 저희 성향상 다시 치열한 전문 교육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러한 뚝심 덕에 2020년 지원사업 선정을 통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마친 광태소극장은 이제 관악구 공식 등록 1호 민간 소극장이자 유일한 등록 민간 소극장으로서 지역 문화의 불씨를 지키고 있다. 어린이·청소년 극단 운영부터 시니어 배우 육성까지, 지역민과 호흡하는 프로그램도 꾸준히 이어가는 중이다.


“내실 면에서도 큰 성장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그저 ‘우리끼리 공연할 공간’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예술 단체와 협업하고 지원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단순한 공연장 수준을 넘어, 이제는 명실상부한 지역 문화예술의 거점이자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이자 보람입니다.”


전단아 프로듀서는 광태소극장이 꿈꾸는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저희의 가장 큰 무기는 ‘직접 만든 이야기(IP)’입니다. 스크린의 성공을 무대로 가져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저희의 최종 목표입니다. 영상 콘텐츠로 성공한 우리만의 이야기를 다시 연극으로 제작해, 언젠가는 365일 내내 광태소극장의 불이 꺼지지 않고 관객으로 붐비게 하는 것, 그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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