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우량 공사채...기업 ‘돈맥경화’ 유발 우려
입력 2024.11.29 07:00
수정 2024.11.29 08:05
하반기 순발행액 6조8200억...상반기比 2배 이상 증가
한전 올 6월부터 채권시장서 12조7900억 규모 찍어내
부동산 공기업 등 자금조달 수요 증가…내년 시장 '변수'
연말 공공기관 채권(공사채) 발행이 쏟아지면서 초우량 채권으로 수요가 쏠리는 ‘자금 블랙홀’ 현상이 재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용도가 높은 한국전력공사 채권(한전채)을 비롯해 에너지·부동산 등 공사채가 대규모 발행돼 일반 기업이 투자 수요를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2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들어 전날(28일)까지 공사채(특수채) 순발행액은 6조8237억원으로 상반기(3조2599억원) 대비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순발행액은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금액으로 순발행액이 클수록 적극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한전채가 지난 6월부터 대규모로 시장에 쏟아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력은 지난 6월 1조원어치의 한전채를 발행한 데 이어 7월 1조9000억원어치를 찍어냈다. 발행 규모는 8월(2조1900억원)과 9월(2조1000억원어치) 2조원대를 넘어섰고 지난달(3조5000억원)은 3조원대에 달했다. 한국전력은 이달 들어서도 2조1000억원을 조달했다.
한전은 지난 6월 한전채를 발행하면서 작년 9월 이후 9개월 만에 회사채 발행을 본격 재개한 바 있다. 그간 발행이 중단된 것은 한전이 지난 2022년 사상 최대 영업적자를 내고 27조원이 넘는 한전채를 순발행하면서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 수요를 흡수한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한전은 한전채 발행을 자제하고 외화채권과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해왔다.
다만 이같은 단기 차입은 채권에 비해 이자 비용이 많고 조달 규모도 적다는 점에서 다시 채권 발행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을 차환(만기상환용 발행)하기 위한 채권 발행도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iM증권에 따르면 이달 공사채 만기금액은 10조1000억원, 12월 만기금액은 8조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공사채 규모는 65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올해(56조1000억원) 대비 9조3000억원 늘어나는 수준이다.
개인투자자들의 공사채의 순매수 증가폭도 급증세다. 올해 들어(1월2일~11월27일) 개인투자자들의 공사채 순매수액은 4조7878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작년 공사채 총 순매수 규모(1조6027억원)를 훌쩍 뛰어넘은 데다 지난 2006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대 수준이다.
이에 국채와 다름없는 공사채가 대량 발행되면서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을 흡수해 일반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AAA급 신용등급을 보유한 한전채 등 초우량물이 쏟아지면 일반 회사채가 외면받는 구축 효과로 이어지게 된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전의 추가적인 전기료 인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누적 영업손실을 메꾸는데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최근 채권 발행 시장이 안정화돼 물량 소화에 큰 무리는 없겠지만 거시 상황이 악화될 경우 다시 한번 한전채의 채권시장 수급 교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한전채뿐 아니라 에너지·부동산 공기업의 채권 발행 증가가 내년 회사채 시장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에너지 공기업들은 겨울철 난방 수요에 맞춰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고 부동산 공기업들도 전세사기 등으로 인한 지급 보증 수요와 정책 지원성 대출 상품 출시, 신도시 조성 등으로 자금 조달 수요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에너지 공기업들의 겨울철 자금 조달 수요가 증가할 수 있고 부동산 공기업들의 발행도 변수”라며 “공사채 발행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초우량물이 수급을 모두 가져가면서 타 채권이 약세를 보이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