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늘린 것만 자랑 줄인 돈은 ‘쉬쉬’ [기자수첩-정책경제]
입력 2024.08.31 07:00
수정 2024.08.31 07:00
내년 예산안, 24조원 삭감 내역 설명 없어
기자들 요구에도 늘어난 예산만 잔뜩 홍보
국민 앞에 ‘건전재정’ 보여 주기 두려웠나
반쪽짜리 예산 설명, 기재부의 ‘비겁한’ 선택
기획재정부가 지난 27일 내놓은 예산안 핵심은 ‘2년 연속 건전재정’이다. 지난해보다 총지출 증가율이 소폭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3% 초반(3.2%)대로 내년에도 ‘짠물’ 재정 기조를 이어갈 생각임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이번 정부 발표를 지켜보며 아쉬웠던, 아니 ‘문제’라고 생각했던 대목이 있다. 바로 삭감 예산을 공개하지 않은 부분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안 브리핑에서 “전 부처 합심으로 관행적·비효율적 사업을 과감히 축소해 총 24조원 규모의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며 “3년 연속 20조원 이상을 구조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 말대로 이번 정부는 매년 20조원을 웃도는 재정 구조조정을 이어왔다. 정부는 예산안을 발표할 때마다 ‘빚을 내서라도 돈을 펑펑 쓰면 일하기 편하겠지만, 미래를 생각해 혁신과 쇄신으로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1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재정, 즉 ‘재량 지출’은 전체 예산의 18% 수준에 그친다. 나머지 82% 예산은 연금, 기초생활보장 급여 등 법적으로 무조건 써야 하는 ‘경직성 지출’이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올해(2024년) 국가 예산 총지출이 656조6000억원이니까 재량 지출 총액은 약 118조1880억원이다. 정부는 이 가운데 24조원을 줄였다고 한다. 정부가 재량껏 쓸 수 있는 예산의 5분의 1을 줄였다는 의미다. 최 부총리가 “전 부처 합심으로 과감하게 지출구조조정을 했다”고 자랑할 만한 액수다.
그런데 정부는 스스로 고통을 감수하면서 24조원에 달하는 나랏돈을 줄였는데, 정작 어디서 아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지난해, 그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기자들이 삭감 사업에 대해 설명을 요구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정부가 어디에 돈을 쓸지 설명하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반대로 어디에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였는지에 대해서도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해당 지출이 정말 불요불급(不要不急)한 금액인지 국민 각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정부는 삭감 내용을 공개하는 게 마땅하다.
이번에 정부 예산안 설명자료엔 온통 ‘늘어난 돈’에 관한 내용밖에 없다. 서민과 소상공인,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면서 과거 대비 얼마의 예산을 늘렸는지만 장황하게 기술했다. 윤석열 정부 재정 최우선 원칙이 ‘건전재정’이고, 이를 위해 돈을 아껴놓고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예산을 삭감당한 사업 주체들이 불만을 제기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늘어난 예산을 자랑하는 건 생색내기 좋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는 귀를 막고, 생색은 내고 싶은 재정 당국의 비겁한 선택이다. 나아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다음 예산안 설명 때는 기재부가 삭감 사업에 대해서도 좀 더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