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횃불은 전달됐다. 싸움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美 민주 전당대회 이튿째 오바마 부부 연설

20년 전 해리스가 오바마 돕고 지지한 인연

오바마, 16년 전 전설의 선거 슬로건 재소환

샌더스 의원, 해리스 남편 엠호프 지지연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횃불은 전달됐습니다. 이제 미국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20일(현지시간) 민주당의 이틀째 전당대회에서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전폭적 지원에 나섰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여전히 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막후 실세 커플이 힘을 실으며 민주당은 견고하게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횃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임 도전을 포기하고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면서 사용했던 말이다.

미셸 여사가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호소하는 20분 연설을 한 뒤 마지막 연사로 무대에 오른 오바마 전 대통령은 "고향에 오니 좋다"고 말하자 함성과 함께 기립 박수가 5분가량 이어졌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연방 상원의원 출신인 그는 시카고가 정치적 기반이다. 시카고는 한때 바이든 대통령의 ‘대체재’로 하마평에 올랐던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어 “미국은 지금 새로운 챔피언,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해리스는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싸워 온 사람이고, 당신이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달려가 도울 이웃”이라며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는 매일 병자를 돌보고 거리를 청소하고 소포를 배달하는 필수 인력, 이 나라 전역에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실제로 걱정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이들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교섭권을 수호할 대통령이 필요하다”며 “그녀는 할 수 있다”(Yes, she can)고 역설했다.

버락 오바마(왼쪽) 전 미국 대통령과 그의 배우자인 미셸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포옹한 뒤 미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AP/뉴시스

이때 행사장을 가득 메운 5만여명의 당 대의원·당원들은 “Yes, she can”을 한목소리로 한동안 연호하기도 했다. 이는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신드롬’을 낳고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을 만든 전설적인 선거 슬로건 ‘예스 위 캔(Yes, We Can)’을 16년 만에 재소환한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각별한 정치 인연도 화제가 되고 있다. 2004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으로 있던 해리스 부통령이 그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의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도우면서 두 사람의 정치적 인연은 시작됐다. 이후 둘은 주요 정치적 고비 때마다 서로를 지지하며 ‘20년 정치적 동지’의 길을 걸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흑인 정치인, 혼혈 가정 출신, 부모의 이혼 경험, 법학 공부 등 공통점이 많은 두 사람이 서로에 의지하면서 빠르게 가까워졌다”며 “이후 끈끈한 동지적 관계를 이어왔다”고 전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 소식을 들은 지난달 20일 가까운 사람들 100여명과 통화했는데 남편 더그 엠호프를 비롯한 가족이 1·2순위였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세번째 또는 네번째 통화 대상이었다고 NYT가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최근까지 해리스의 러닝메이트 선정을 포함한 정치적 메시지와 인선 과정에 핵심 조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중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이날 민주당의 저명한 인사들도 지원 사격을 이어갔다. JB 프리츠커 일리노이주 주지사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 더그 엠호프가 연단에 섰다. 또 척 슈머 미국 상원 원내 대표와 대선 불복 사건 때 ‘전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스테파니 그리샴 등이 지원 연설을 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이날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호명 투표를 진행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미 이달 초 온라인으로 진행된 화상 투표에서 대선 후보로 확정된 바 있다. 대의원들은 다시 한번 해리스 부통령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그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보냈다.

경합 주인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선거 유세를 하던 해리스 부통령은 호명 투표가 끝난 뒤 화상 연설을 통해 대의원들에게 짧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여러분의 후보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함께 나아갈 새로운 길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오는 22일 공식 후보 수락 연설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