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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수색대 자극하고, 애꿎은 피해자 양산하는 ‘익명’ 폭로 [D:이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4.08.01 08:52 수정 2024.08.01 08:52

최근 방송인 박슬기의 발언이 큰 파장을 불러왔다. 장영란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A급 장영란’에서 과거 갑질 피해를 입었던 사연을 폭로했는데, 주어를 밝히지 않고 대상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던지면서 이지훈, 안재모 등의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한 꼴이 됐다.


ⓒA급장영란

박슬기에 따르면, 당시 라디오 생방송 때문에 양해를 구하고 영화 촬영에 늦게 도착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라 사람들이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고 한다. 박슬기는 “나 때문에 촬영이 연기된 게 미안해서 난 안 먹고 매니저 오빠라도 먹으라고 해서 매니저 오빠가 먹고 있었다. 근데 ○○○(갑질 배우의 실명) 오빠가 매니저 오빠 따귀를 때리면서 욕설을 하고 ‘개XX야, 지금 네 배우가 안 먹는데 너는 왜 먹냐’고 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온라인에선 박슬기가 언급한 갑질 배우를 추측하는 글이 이어졌다. 영상에서 갑질 배우의 실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기나 ‘오빠’라는 호칭 등을 근거로 네티즌이 이지훈, 안재모 등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다.


진실을 요구하는 댓글이 쏟아지자 두 사람은 모두 이를 부인했다. 이지훈은 “여러분의 추측은 아쉽게도 빗나갔다”며 “이런 일에 이름이 거론된 거 자체가 내가 부족해서다. 과거 저로 인해 상처받으셨던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적었다. 안재모 역시 여러 매체를 통해 “내가 아니라 조용히 지나가겠지 싶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 내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면서 “이런 일로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 않나. 수위를 넘는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은 절제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해명했다. 박슬기도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다.


앞서 비슷한 사례는 수도 없이 있었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E채널 ‘용감한 기자들’은 주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이니셜 토크로 시청률을 올리며 재미를 본 채널이다. ‘현직 기자들의 용감한 폭로가 시작된다’는 키치를 내세운 프로그램이었지만, 연예인의 사생활 관련 뒷담화가 주를 이뤘다. 문제는 이 이니셜 토크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애먼 피해자만 키운다는 점이다. 당시 방송 내용이 끝나면 인터넷에서는 어김없이 이니셜 주인공 찾기 놀이가 이어졌다.


한 예로 걸그룹 멤버가 태국에 광고 촬영 차 머무르던 당시 호텔 객실에서 흡연을 하는 바람에 화재경보기가 울려 투숙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청순한 외모’ ‘여리여리한 몸매’ ‘성격도 좋은 톱스타 A양, 욕과 담배가 없으면 살 수 없다’ 등의 힌트를 던졌다. 시청자들은 힌트를 바탕으로 추측한 결과 AOA 설현을 지목했다. 그가 방송 당시 태국에서 광고 촬영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밖에도 채널A ‘애로부부’에서도 여러 차례 주어 없는 폭로로 피해자를 양산했고, 사유리나 허이재 등도 “저격 의도는 없었다”지만 그들의 이니셜 폭로는 네티즌에게 자극적인 떡밥이 돼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사실상 이 같은 사례들이 있음에도 연예계에선 계속해서 이니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폭로 당사자의 부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다. 일각에선 박슬기가 오히려 사과하게 된 현재의 상황에 의아함을 내보인다. 폭로가 사실이라면, 박슬기 역시 갑질의 피해자라는 것인데, 피해자가 사과를 하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폭로가 진실일지라도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그것이 옳은 일이라곤 하기 어렵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댓글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이슈를 소비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네티즌 수사대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새로운 ‘가해자’나 다름없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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