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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총선 ‘승부수’ 실패…리시 수낵 英총리 사임

김상도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4.07.05 21:21 수정 2024.07.05 21:21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5일(현지시간) 영국 노스요크셔주 노샐러턴에서 총선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리시 수낵(44) 영국 총리가 하원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창당 이래 최악의 성적으로 참패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직과 보수당 대표직을 내려놨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수낵 총리는 5일(현지시간) 런던의 총리 공관인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죄송하다. 내 모든 걸 쏟았으나 국민 여러분은 영국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며 "여러분의 분노와 실망을 들었으며 이 패배는 내 책임이다. 곧 국왕을 만나 사의를 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당장은 아니나 후임 선출을 위한 공식 절차가 진행되는 대로 보수당 대표에서도 물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표 이후 수낵 총리는 곧장 찰스 3세 국왕 접견을 위해 버킹엄궁으로 향했다. 2022년 10월 리즈 트러스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에 취임한 지 1년 8개월여 만이다.


앞서 지난 4일 실시된 하원 총선은 노동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5일 오전 11시까지 전체 650석 중 648석에 대한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제1야당 노동당은 2019년 총선 때보다 214석이나 급증한 412석을 얻어 과반 의석(325석)을 훌쩍 뛰어넘었다.


반면 보수당은 직전 총선 때보다 251석이나 급감한 121석을 얻는 데 그쳤다. 1934년 창당 이후 190년만의 최악의 성적이다. 수낵 총리는 자신의 지역구를 간신히 지켰으나 그랜트 섑스 국방장관과 알렉스 초크 법무장관, ‘역대 최단명 총리’로 기록된 리즈 트러스 전 총리 등 거물들이 줄줄이 고배를 들었다.


보수당의 참패는 총선 전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예견된 수순이다. 더군다나 노동당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며 '설마'가 '사실'로 확인되자 침통함이 당 주변을 에워쌌다. 수낵 총리는 지난 5월 조기 총선이라는 도박에 가까운 깜짝 승부수를 던지며 반전을 노렸지만 역전의 드라마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총선 투표 직후 노동당이 잘했다기보다 보수당이 14년 동안 장기 집권하며 정책과 철학, 능력과 도덕성 등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세계 언론들이 비판했다.


보수당의 몰락은 영국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정권의 무능함을 체감하면서 시작됐다. 무엇보다 서민층이 가장 큰 문제로 호소하는 것은 생활물가 급등이았다. 2022년 10월 물가 상승률이 연 11.1%에 이르렀고 기준금리는 16년 만의 최대 수준인 연 5.25%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물가 상승이 둔화했으나 식품 가격은 2022년 초보다 여전히 25%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다 2010년 집권 이후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며 예산을 대폭 삭감했는데 결과적으로 의료·교육 등 필수 공공서비스까지 붕괴해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이 급격히 악화했다는 것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일 “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인력난 등이 심각해 치과 진료 예약일을 기다리지 못하는 이들이 집에서 손수 발치(拔齒)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총선에서 공공의료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의 붕괴는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인기가 곤두박질치자 보수당은 보수 본연의 원칙을 잃고 일관성 없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을 남발했다.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가결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2020년)가 대표적 사례다. 몰려드는 난민으로 반(反)이민자 정서가 확산하자 보수당은 ‘장벽 없는 무역’으로 대표되는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포기하고 대중의 즉흥적 분노에 편승해 브렉시트를 주도했다. 브렉시트는 결국 무역·해외 투자·생산성이 모두 감소하는 경제적 재앙으로 이어졌다.


이도 모자라 근시안적 정책을 잇따라 내놨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세금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깨고 4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증세를 했다. 후임자인 리즈 트러스 총리는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물가가 치솟는 와중에 갑자기 감세를 단행해 나라를 파산 직전까지 내몰았고, 두 달도 못 돼 ‘최단기 총리’ 불명예 기록을 세우며 낙마했다. 가디언은 “(보수당) 정부가 실패한 것은 하나의 나쁜 정책이 아니라 여러 정책의 잇단 실패를 반복해 국가를 후퇴시켰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인도계 엘리트인 40대 수낵 총리는 전임자들의 실정(失政)을 수습할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적으로 보수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NHS 개혁, 고속철도 프로젝트, 교육 시스템 개혁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조기 총선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김상도 기자 (sara087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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