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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글로벌 반도체·AI 허브’로 떠오른다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4.05.26 07:07 수정 2024.05.26 07:07

대만, ‘A+산업혁신 R&D프로그램’ 통해 글로벌 반도체·AI기업 유치

엔디비아·마이크론·ASML에 이어 AMD까지 R&D 센터 설립하기로

엔디비아·마이크론에 각각 2000억원, 28007억원 규모 보조금 승인

보조금 외에도 TSMC 등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 기술 보유한 덕분

라이칭더(왼쪽) 대만 총통이 지난 20일 대만 타이베이의 총통부 청사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샤오메이친(오른쪽) 부총통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신임 총통은 지난 20일 오전 11시 수도 타이베이 총통부 청사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연설을 통해 인공지능(AI)을 신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 키워드로 제시했다.


라이 총통은 "대만은 지금 반도체 선진 제조기술을 장악해 AI 혁명의 중심에 서있다"며 "글로벌 AI화 도전에 직면해 대만은 ‘반도체 섬’의 기초 위에 서서 'AI 섬'이 되도록 전력 질주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I 산업화와 AI 혁신을 가속화하고 산업의 AI화와 AI 컴퓨팅 파워를 이용해 국력과 군사력, 인적 역량, 경제력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AI 허브(hub·중심지)를 꿈꾼다.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인 엔비디아와 반도체 제조업체 마이크론,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등 글로벌 AI 및 AI 반도체 기업들이 대만 정부로부터 거액의 보조금을 받고 제조공장, AI 슈퍼컴퓨터, 연구·개발(R&D)센터 등을 이미 건설하고 있는 데다 미 반도체 설계기업 AMD도 대만에 R&D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대만 경제부 산업기술국은 AMD가 대만에 50억 대만달러(약 2115억원)를 투입해 R&D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대만 중앙통신사(中央通訊社·CNA) 등이 지난 20일 보도했다. AMD가 대만의 집적회로(IC) 설계자와 협력해 AI 반도체를 사용하는 AI 서버도 대만에서 생산할 예정이라고 CNA는 덧붙였다.


대만 정부는 그동안 AMD를 유치하기 위해 거액의 보조금을 약속하는 대신, AMD에 조건을 내걸었다. 대만의 반도체 연구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인재 육성과 반도체 설계 기업과의 협업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 AMD 본사에서 라이젠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 AMD 홈페이지 캡처

대만 연합보(聯合報)에 따르면 대만 경제부가 ‘A+산업 혁신 R&D 프로그램’으로 보조금을 신청한 AMD에 요구한 조건은 모두 4가지다. 먼저 대만 반도체 설계기업들과의 협력을 요구했다. 세계 1위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적전(臺積電·TSMC)이라는 확실한 반도체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까닭에 반도체 설계역량도 동시에 키워 반도체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게 대만 정부의 포석이다.


대만은 AMD가 개발한 AI 서버를 대만 내에서만 생산할 것도 요구했다. 대만 정부가 AI 서버 제조강국인 만큼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인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자국에 유치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R&D 인력의 최소 20%는 해외에서 유치해야 하고, 고위 경영진이 대만에 상주할 것도 조건으로 내세웠다. 대만도 한국처럼 반도체·AI 인력난을 겪고 있는 탓에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게 목표다. 여기에다 대만 대학들과 협력해 인재를 공동 육성방안도 요구했다. 대만 반도체 생태계에 이바지하고 대만에서 인력도 키우라는 얘기다.


AMD는 이를 받아들여 대만 정부가 2020년부터 시작한 AI, 차세대 전력반도체, 새로운 5세대 이동통신(5G) 구조 등 3개 분야 관련 'A+ 산업혁신 R&D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외 기술기업의 대만 투자를 유도해 대만이 글로벌 R&D의 허브가 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지난해 5월 25일 밤 대만 타이베이 라오허제 야시장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 트위터 캡처

대만 정부는 현재까지 주요 A+ 프로젝트는 마이크론과 엔비디아 등 2개 글로벌 기업에 각각 47억 2200만 대만달러, 67억 대만달러의 보조금을 승인했다. 대만 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자격이 부합하는 기업은 투자 금액의 최대 50%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컴퓨터 및 정보기술(IT) 부품 제조강국에서 반도체 제조강국으로 거듭난 대만이 이젠 AI·반도체 글로벌 허브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합보는 “AI 분야 R&D를 유치해 반도체 제조능력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만은 이같은 보조금을 활용해 반도체 제조 인프라를 내세워 AI 및 AI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는데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이미 엔비디아과 마이크론, ASML 등이 대만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제조공장, AI 슈퍼컴퓨터, R&D센터 등을 짓고 있다. AMD도 엔비디아처럼 생산 물량 상당수를 TSMC에 위탁하고 있다. 이는 AI 반도체 제조 및 패키징(후공정) 인프라와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에 따라 대만은 AI 핵심 반도체를 공급하는 국가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설계부터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산업 전반에 걸쳐 견고한 생태계를 구축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핵심 그래픽처리장치(GPU)인 A100과 업그레이드 버전인 H100 생산을 전담하고 있는 TSMC와 견고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AI 중심의 산업 전환이 급속히 이뤄지는 가운데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거점을 보유한 대만이 주도권을 거머쥔 셈이다.


ⓒ 자료: 대만 연합보

특히 엔비디아는 아시아 최초로 대만에 'AI 혁신 R&D센터'를 짓고 있다. 엔비디아는 모두 243억 대만달러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이 중 28%인 67억 대만달러를 대만 정부가 보조금으로 되돌려준 것이다. 이 R&D센터는 1000명이 넘는 일자리를 창출할 예정이며, 엔비디아의 최대 AI 슈퍼컴퓨터 '타이페이-1'까지 설치된다.


대만 경제부는 "R&D 센터 공정은 40% 진행됐고, 슈퍼컴퓨터는 지난해 말 설치를 끝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세계 곳곳에 4개 슈퍼컴퓨터를 설치하고 있는데, 2대를 대만에 배치한다. 이 중 ‘타이베이 1′로 이름 붙여진 슈퍼컴퓨터는 엔비디아의 AI가속기 H100 512개가 탑재됐다. H100은 개당 5000만원이 넘는 고가 부품이다. 엔비디아는 슈퍼컴퓨터 용량의 25%를 대만 연구소·스타트업에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ASML도 TSMC와 같이 ‘대만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신주(新竹)과학단지에 제조공장과 R&D센터를 짓는다. 지난해 공장 착공에 들어간 ASML의 투자 규모는 1조 20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ASML이 한국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2400억원)보다 5배가량 많다. 장비 최대 고객인 TSMC가 큰 역할을 했으며. ASML 역시 대만 정부로부터 거액의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도 지난달 타이베이 인근에 두 번째 하드웨어 연구기지를 열었다. 근무인원만 수천명으로 알려졌다. 차이잉원(蔡英文) 당시 총통이 연구센터를 직접 찾아 축사를 했다. 구글은 지난 2013년부터 대만 중서부 장화(彰化)현 아시아 최초의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고 단계적으로 처리능력을 늘려왔다. 2019년엔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에 260억 대만달러를 투입해 데이터센터 확충과 투자사업을 강화하기도 했다.


ⓒ 자료: 미국기업연구소(AEI)

탄탄한 인맥도 대만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TSMC와 AMD, 엔비디아, 슈퍼마이크로컴퓨터의 창업자 네 사람 모두 어렸을 때 미국으로 건너간 대만계 미국인이다. 그 중심에 모리스 창(張忠謀) TSMC 창업자가 있다. 오늘날 엔비디아의 탄생 뒤에는 젠슨 황(黃仁勳)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와 모리스 창 창업자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젠슨 황 CEO는 창업 초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모리스 창 TSMC 당시 회장에게 “첫 칩을 만들어달라”고 직접 편지를 썼고 모리스 창 회장은 신생 벤처기업가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젠슨 황 CEO는 “TSMC가 없었다면 오늘의 엔비디아도 없었을 것”이라며 모리스 창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


친척관계도 있다. 리사 수(蘇姿豊) AMD CEO는 젠슨 황 CEO와 5촌 간이다. 미 CNN방송에 따르면 리사 수 CEO 어머니의 고종사촌 동생이 젠슨 황 CEO다. 리사 수 CEO는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뒤 IBM에서 반도체 연구·개발 커리어를 쌓았다.


찰스 량(梁見後) 창업자 겸 CEO가 이끄는 슈퍼퍼마이크로는 AI 서버 분야 세계 3위 업체다. 그는 국립대만공업기술학원 전기과를 졸압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찰스 량 CEO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젠슨 황 CEO와는 수십 년 알고 지낸 사이”라며 친분을 과시했다. 실제로 슈퍼마이크로는 엔비디아에서 최신 AI 가속기를 다른 기업들보다 우선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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