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 이재명과 분신들의 민주당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4.05.13 07:00
수정 2024.05.13 07:00
민주당 원내대표·국회의장 경선 후보 모두
이재명과 개딸 의식하며 대놓고 '명심 경쟁'
의장 중립성 부정하며 정파 대리인 예고도
'서유기'의 손오공은 요괴와 싸우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 수많은 '복제 손오공'을 만든다. 손오공은 이 분신들을 조종해 적의 시선을 어지럽히고, 방어력과 공격력을 모두 높이는 효율을 발휘한다. 즉 손오공의 분신들은 손오공의 뜻대로만 움직이며 손오공 없이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영향력이 있지도 않은 것이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를 보면 손오공이 떠오른다. 4·10 총선을 통해 당내 헤게모니가 친명(친이재명)계로 옮겨간 만큼 당선인들 하나 같이 죄다 '명심(明心·이재명 대표의 의중)'을 외치거나 의식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 상황에 정통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손오공이 머리카락을 뽑아 후 불면 분신들이 생겨나는 그런 상황이 지금의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혀를 찼다.
지난 3일 민주당의 원내대표 경선이 대표적이다. 친명 내부에서 '찐명(진짜 이재명)'인 박찬대 의원으로 후보 교통정리를 하자, 경선 출마를 저울질하던 다른 경쟁 후보들이 줄줄이 출마를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다. 경선 출마를 준비하던 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내 정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마를 포기한다는 취지로 속상함을 드러냈다. 171석의 거대 야당을 이끌 막강한 권한을 가진 원내대표 선출이 사실상 이 대표와 '개딸'로 상징되는 강성 지지층의 지명으로 결론난 셈이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경선도 같은 수순이다. 6선의 추미애 당선인과 조정식 의원, 5선의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출사표를 냈지만, 경선(16일)을 나흘 앞둔 12일 절반의 후보가 갑작스레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추 당선인과 조 의원이 단일화 논의에 나선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정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간 성심껏 도와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는 내용의 후보직 사퇴 입장문을 냈다.
이후 추 당선인과 조 의원이 회동했고, 조 의원이 추 당선인 지지 의사를 밝히며 경쟁에서 물러났다. 명분은 '개혁국회를 위한 대동단결'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강성 지지층을 바라보며 '명심'을 자처해 온 인물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찬대 원내대표가 물밑에서 국회의장 후보군 교통정리를 했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니, 이 대표의 의중과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좌우한 결론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추 당선인과 우원식 의원의 양자대결로 확정됐지만, 당 안팎에선 원내대표 경선 때처럼 당내 최대 계파인 친명계의 뜻대로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만약 이러한 흐름대로 국회의장이 선출된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장은 국가의전 서열 2위의 입법부 수장으로, 특정 정당과 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국회를 중립적으로 운영할 의무가 있다. 국회법이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도록 규정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정파 대리인을 자처하는 국회의장은 전례가 없다.
민주당의 '손오공 정치'의 절정은 '이재명 당대표 연임론'이다. 친명계 인사들은 경쟁하듯 "이 대표의 연임은 정권교체의 지름길"(정청래 최고위원) 등 강성 지지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읊은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볼썽사납다. 손오공은 복제 손오공을 만들어 적과 맞서지만 결국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민주당은 국민의 손바닥 위에 있는 손오공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