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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스파이 세계 곳곳서 활보한다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4.04.28 07:07
수정 2024.04.28 07:07

獨, 협상·군사기밀 정보 빼돌린 보좌관 등 독일인 4명 체포

英, 민감한 정보 중국과 공유한 혐의 전직 의회연구관 기소

필리핀, 中 스파이 수천 명 유학생 위장 가능성에 시끌시끌

中 "'中 간첩 위협' 가짜뉴스 유포를 즉각 중단하라"며 반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두번째)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오른쪽 두번째)가 지난 16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나란히 산책하고 있다. ⓒ EPA·신화/연합뉴스

연초인 지난 1월10일, 벨기에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극우 성향의 블람스벨랑당 프랭크 크레이엘만(62) 전 의원이 중국 스파이로 암약한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1977년부터 블람스벨랑당에서 활동한 그는 1999~2007년 연방 상원의원을 지내고 2008~2014년 플랑드르 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 때문에 벨기에 당국은 2018년부터 크레이엘만 전 의원의 간첩사건을 인지했지만 스파이 행위 처벌요건을 두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는 형법상 스파이 행위와 외세 간섭에 대한 범죄 조항이 없는 만큼 ‘부패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그는 중국의 홍콩 민주주의 탄압문제와 신장(新疆)위구르족 박해 사건에 이르기까지 유럽 내 논의에 중국 측 입장을 ‘대변하라’는 중국 방첩기관 국가안전부(國家安全部) 사무관 다니엘 우(吳丹尼爾·Daniel Woo)의 지시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의 스파이들이 지구촌을 누비고 다닌다. 미국을 비롯해 독일과 영국 등에서 각종 정보를 중국 측에 빼돌린 사실이 적발돼 ‘중국 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연방검찰청은 극우정당 의원 보좌관 궈젠(郭建·43)를 간첩 혐의로 드레스덴의 주거지에서 체포했다고 독일 DPA통신 등이 지난 23일 보도했다. 중국계 독일인인 그는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 소속 유럽의회 의원 막시밀리안 크라(47)의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올해 1월 유럽의회 협상·결정 관련 정보를 중국 측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궈젠은 특히 중국 정보기관을 대신해 독일 내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그가 크라의 보좌관으로 일하기 시작한 2019년 이전부터 스파이 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한다. 크라 의원은 당내에서 친중 노선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22일에는 중국 국안부를 대신해 민감한 해군 정보를 수집하고 고출력 레이저를 획득한 혐의로 토마스 R와 헤르비히 F, 이나 F 등 독일 국적자 3명을 체포했다. 이중 헤르비히 F와 이나 F는 부부 사이이다. 토마스 R은 중국 여성과 결혼하고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이들 부부의 연락책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독일 검찰은 전했다.


중국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는 벨기에 극우 성향의 블람스벨랑당 프랭크 크레이엘만 전 의원. ⓒ 프랭크 크레이엘만 페이스북/대만 중앙통신

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 국안부의 위장기업을 위해 일하며 독일 대학에 해군 선박에 사용되는 동력모터 등 특정 기계부품 상황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독일 과학자들과 연구자들로부터 독일 해군함에 사용되는 부품기술에 대한 정보를 중국에 몰래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또 고출력 레이저를 구입한 뒤 허가없이 중국에 수출해 유럽연합(EU)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체포 당시에도 중국 해군력 증강을 위한 해상전투 작전계획과 관련된 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25일 파트리치아 플로어 중국 주재 독일대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외교부는 이날 "이른바 '중국 간첩 위협'이라는 가짜뉴스 유포와 반(反)중국 정치 농단, 악의적 비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스파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 왕립검찰청(CPS)은 22일 적국에게 유용할 수 있는 정보를 중국과 공유해 공무상 비밀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전직 의회연구관 크리스토퍼 캐시(29)와 크리스토퍼 베리(32) 등 2명을 기소했다고 영국 더타임스가 전했다.


캐시는 보수당의 얼리샤 컨스 하원 외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의 연구관으로 일하는 동안 간첩 행위를 저질렀으며, 톰 투겐하트 내무부 안보담당 부장관이 과거 공동 설립한 중국연구 그룹에서 일한 적이 있다. 캐시와 베리는 과거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베리는 아내가 중국인이다.


필리핀에서도 중국 스파이 논란으로 시끄럽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마찰을 빚는 필리핀의 미군기지 인근 대학에 중국인 유학생 수천명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필리핀군 당국은 이들이 감시·염탐 활동을 위해 학생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마닐라타임스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중국 학생 4600여명이 루손섬 카가얀주 투게가라오시의 한 사립대에 등록한 상황을 조사하기로 했다. 프란셀 마가레스 파디야 필리핀군 대변인은 “중국 학생 증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기로 했다”며 “경찰, 이민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 외교부 청사. ⓒ 뉴시스

물론 필리핀 대학 내 중국 학생 입학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장소와 시점 모두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다. 루손섬은 대만에서 400㎞ 떨어진 필리핀 최북단에 있다. 지난해 2월 필리핀·미국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조약에 따라 미군이 배치된 군사기지 4곳 중 3곳이 이 섬에 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이 커지는 시점에,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 교두보 한복판에 중국 학생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게 필리핀 정부의 시각이다.


일부 하원의원은 17일 국회 차원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필리핀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중국 유학생에게 더 엄격한 비자 발급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방분석가 체스터 카발자 필리핀대 교수는 인콰이어러에 “학생들이 학위취득을 위해 200만 페소(약 4758만원)를 지불했지만, 일부는 수업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들이 ‘더 큰 목적’을 갖고 필리핀에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친중파로 여겨지는 마누엘 맘바 카가얀 주지사는 “중국 학생들은 학생 비자와 필리핀 외교부가 발급한 적법한 서류를 갖췄다”며 “중국과 카가얀 고등 교육기관이 체결한 파트너십을 통해 공부 기회를 얻은 이들”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영국은 지난달 25일 공동으로 중국과 연계된 해커집단이 두 나라의 의원과 학자, 언론인, 민주주의 활동가, 주요 기업 등 수백만 명에 대해 사이버 해킹을 시도한 혐의로 관련자들에 대한 제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목된 중국 해킹그룹들은 의원과 정부 관계자의 데이터는 물론 사회 인프라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사이버 해킹까지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두 나라 정부는 중국 국안부와 연결된 단체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소재 ‘APT31’(일명 Zirconium)에 대해 조치했다고 밝혔다. 미 법무부는 니가오빈(倪高彬)과 웡밍(翁明), 청펑(程鋒), 자오광쭝(趙光宗). 펑야오원(彭耀文), 쑨샤오후이(孫小輝), 슝왕(熊旺) 등 중국인 해커 7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미국인 수백만명의 업무·개인용 e메일, 온라인 저장공간, 전화 통화기록 등을 해킹하거나 해킹을 시도한 혐의다. 미 국무부는 “(APT31는) 중국 정부와 연결된 사이버 위협그룹이 미 정부 당국자, 정치인, 선거 캠프 관계자, 다양한 미 경제 및 국방 관련 단체와 당국자 등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자료: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법무부는 또 우한 샤오루이즈(武漢曉睿智) 과학·기술 유한회사를 미 주요 인프라를 겨냥한 악의적 사이버 활동 혐의로 제재했다. 리사 모나코 미 법무부 차관은 중국 측 해킹의 목표가 ”중국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을 억압하고, 정부 기관들을 공격하고, 영업 비밀을 훔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덜란드는 지난 2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커들이 지난해 네덜란드 군 컴퓨터 네트워크에 악성 소프트웨어를 심었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정보기관은 “중국 정보기관이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중국 정보기관은 홀로 활동하지 않고 유럽의 외교관, 개인, 업계 및 이해관계자 그룹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항의했다. 미 워싱턴 주재 중국 대사관의 류펑위(劉鵬宇) 대변인은 “사실무근”이라며 “중국은 모든 형태의 사이버 공격에 단호히 반대하며 엄격히 단속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런던 주재 중국 대사관도 “완전히 조작된 것이자 악의적 비방”이라며 “우리는 이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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