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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사퇴 요구, 실제 이유 뭘까 [총선 79일 앞, 여권 혼돈의 밤 ②]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4.01.22 02:16
수정 2024.01.22 14:33

취임 27일만에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

표면상 이유는 '시스템 공천 신뢰 훼손'

원희룡 콜업 OK, 김경율은 사퇴 사유?

"김건희 공격한 김경율 공천 안된단 뜻"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6일 인천 계양구 카리스호텔에서 열린 국민의힘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인사 도중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맞상대하겠다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무대 위로 불러올리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가 전달됐다. 지난달 26일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지 채 한 달도 채우지 못한, 불과 27일만의 일이다. 표면상의 이유는 '시스템 공천에 대한 신뢰 훼손' 탓이라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실과 한동훈 위원장 측은 21일 한 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가 전달됐다는 사실을 피차 부인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이 사퇴 요구를 전달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퇴 요구는 없었다'는 식으로 부인하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 또한 "'기대와 신뢰 철회' 논란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기대와 신뢰가 철회됐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힘 지도체제는 집권여당답지 않게 불안정 속에서 혼란을 거듭해왔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준석 대표 체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무너졌으며, 정진석 비상대책위 체제에서 3·8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각각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안철수 의원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됐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수립된 '김기현 대표 체제'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또 무너졌다. 이후 대통령실과 친윤(친윤석열) 주류의 의중에 따라 추대된 게 현 한동훈 비대위 체제이지만 이 또한 27일만에 사퇴 요구가 전달됐다. 그 표면적인 이유는 대통령실의 전언대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많은 여권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과연 그게 총선을 79일 앞두고 취임한지 27일 된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할만한 사유겠느냐는 것이다.


인천 계양을에도 엄연히 윤형선 당협위원장이 있지만, 지난 16일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서 한동훈 위원장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이재명 대표가 출마하는 지역이라면 어디든 가서 승부하고 싶어하는 후보가 있다. 여기 계시는 우리의 원희룡"이라고 띄웠을 때에는 '사천 논란'이니 '시스템 공천 신뢰 훼손'이니 하는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하루 뒤인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한 위원장이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을 무대 위로 불러올리자, 이것이 비대위원장 사퇴 사유로 돌변한 것이다.


이와 관련, 여권 관계자는 "김경율 건이 '시스템 공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해서 비대위원장을 사퇴해야할 사유라는데, 그러면 원희룡 전 장관은 뭐냐"라며 "결국 김건희 여사를 공격한 김경율 공천은 안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시스템 공천 신뢰 훼손'은 표면상의 이유고, 한 위원장 사퇴 요구 전달의 실제 이유는 영부인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 대응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김경율 비대위원은 지난 17일 JTBC 유튜브에 출연해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겠느냐.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며 "지금 이 사건도 어떻게 실드를 칠 수 있겠느냐. 사죄드리고 바짝 엎드려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권력 핵심부의 격노를 촉발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또다른 여권 관계자는 "김경율 비대위원의 '선 넘은 비유'를 접하고 용산에서 '이런 사람이 공천을 받아 여당 의원으로 원내에 들어오는 것은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안다"며 "한동훈 위원장에 대한 배신감도 김 위원의 발언을 문제삼고 사퇴시킬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보이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총선이 79일 앞으로 다가온 백척간두의 상황에서도 영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는 여전히 여권에서 입에 올리기 어려운 전근대적 소도(蘇塗)와 같은 영역으로 남아있다는 의미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러한 성역을 넘어설 수 있을지 취임 27일만에 중대한 정치적 시험대에 맞닥뜨리게 됐다는 관측이다.


여권 관계자는 "전부터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용납돼도 영부인에 대한 비판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면서도 "그냥 그런 분위기로 총선을 치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보니 문제가 생기고 충돌이 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개탄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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