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장관 출마하면 하는 거지
입력 2023.11.20 07:07
수정 2023.11.20 07:07
민주당 사람들의 기억상실증
한 장관 스타성 입증해준 대구
당의 자신감 회복 위해서라도
“한동훈 장관은 어제 보란 듯이 ‘보수의 심장’ 대구를 찾아 공개 행보를 펼쳤습니다. 말로는 예정된 통상적 방문이라지만 ‘총선이 국민의 삶에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며 총선을 향한 들뜬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몰려든 촬영 요청에 기차표까지 취소하며 3시간이나 사진을 찍었다는데, 출마 생각에 무척이나 설렜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전략공천은 없다’는 인요한 혁신위의 양두구육을 믿겠습니까? ‘용산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전략공천은 없다는 뜻일 겁니다.”
민주당 사람들의 기억상실증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이 1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이런 내용의 브리핑을 했다. 비비 꼬인 말을 거대정당 대변인의 브리핑으로 듣는 기분이 한심하다. 약한 측이 강한 측을 상대로 하는 말이라면 그러려니 들어줄 수도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거대정당이다. 그야말로 입법 농단(‘농단’은 민주당의 ‘특화’된 표현)을 예사로 하는 정당의 대변인이 이런 정도의 브리핑밖에 못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당의 높은 사람들이 이럴 때는 창피를 아는지 논평을 초선의 대변인에게 떠넘긴 인상이 짙다).
“말로는 예정된 통상적 방문이라지만”이라는 것은 의도적으로 갔다는 뜻이겠다. “총선을 향한 들뜬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듯했다”고 말을 이은 것으로 미루어 총선 출마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 행보가 아니었느냐는 비난으로 여겨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21년 2월 25일 부산을 방문해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을 보고받았다. 그는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 앞바다로 가서 신국제공항 예정지역을 바라보며 “가슴이 뛴다”고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당시)은 “문 대통령의 부산 방문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통 행보의 일환으로 오래전에 결정된 행사”라며 “보궐선거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그 41일 후(4월 7일)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될 것이었다. 문 대통령 자신이 당 대표로 있을 때 민주당은 당헌 제96조(재·보궐선거에 대한 특례)에 제2항을 신설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
그 쇄신 의지를 시험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자살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여직원 성추행으로 자리를 비웠다. 민주당은 문 당시 대표가 그토록 자랑했던 당헌 규정대로 후보를 내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욕심에 휘둘려 그 조항의 말미에 “단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다는 당헌 개정을 해치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문 전 대통령만은 국민을 우롱하는 그 꼼수를 반대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말리기는커녕 되레 득표 활동으로 보이게 마련인 행차를 당정의 고위인사들까지 이끌고 다니며 태연히 강행했다. 그러고도 서울·부산에서 민주당이 참패했으면 문 전 대통령은 뒤늦게라도 사과를 했어야 할 텐데 그는 모르쇠 버전으로 돌아갔다.
한 장관 스타성 입증해준 대구
한 장관이 방문한 대구 스마일센터는 전국 16곳의 스마일센터(강력범죄 피해자 트라우마 치유기관) 가운데 한 곳이다. 법무부 장관이 산하 기관을 방문해서 현황을 살피고 격려하는 걸 문제 삼는 것은 터무니없는 억지이거나 황당한 코미디다. 게다가 민주당 정부의 법무장관들도 스마일센터를 방문하곤 했다. 다만 장관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반응이 천양지차(天壤之差: 엄청난 차이)로 달랐을 뿐이다.
한 장관은 이날 오후 7시 기차를 타기 위해 동대구역으로 갔다가 시민들에 에워싸였다. 손을 잡아보고 사인을 받거나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환영하고 격려해주는 시민들을 모르는 체하고 서울로 와 버렸다면 민주당이 저런 유치한 브리핑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장관이 대구시민을 우습게 여겼다”는 식으로 이간질을 했을 수는 있지만….
민주당 높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한 장관에 대한 대구시민의 환영 열기가 너무 뜨거웠다는 점이다. 사인하고 사진 찍고 하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 이런 시민을 향해 “대구시민들을 대단히 깊이 존경해 왔다. 오게 돼서 참 좋다”는 말을 한 게 이상한 건가? 대구시민을 존경하는 이유로 그는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우리 대구시민들이 처참한 6·25 전쟁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적에게 이 도시를 내주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워서 이긴 분들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전쟁의 폐허 이후에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화를 진정으로 처음 시작해 다른 나라와의 산업화 경쟁에서 이긴 분들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구의 굉장한 여름 더위를 늘 이기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존경한다.”
‘세 번째 이유’는 위로를 담은 위트였겠지만 어쨌든 해당 지역 주민들을 향해서 최상의 찬사를 구사하는 건 방문자의 예의다.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민주당은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심술 사나운 논평을 내놓은 건 아마도 한 장관의 유별난 인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직전 법무부 장관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작년 1월 ‘광주(광역시) 스마일 센터’, 3월 ‘전남 목포 스마일 센터’를 방문했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민주당 강 대변인 표현을 흉내 내자면 ‘진보의 심장’이라고 할 지역들이었는데도 사진 같이 찍자는 시민들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몇몇 사람이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 돌아가는 것으로 봐서 한 장관의 총선 출마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는 것 같다. ▲총선에 내세울 만한 스타가 현재로는 국민의힘에 없다(민주당도 마찬가지지만). ▲스타급 인물을 앞세우는 것은 당연한 총선 전략이다(그런 사람이 없어서 문제이지 있는데 왜 안 내세우겠는가). ▲그간에도 그랬지만 대구시민의 반응에서 한 장관의 스타성이 확실하게 입증됐다(그의 인기에는 연령층 구분이 없는 듯하다).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 여당의 입장에서는 한 장관의 합류가 절실할 수 있다. ▲한 장관으로서도 국민의 여망이라면, 그리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크게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의 자신감 회복 위해서라도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전략공천은 없다’는 인요한 혁신위의 양두구육을 믿겠습니까?”
강 대변인이 이렇게 비아냥거렸는데 한 장관의 인기를 시샘하면서 ‘전략공천’ 운운하는 건 또 뭔가? 한 장관 같이 인기 있는 인사가 전략공천을 왜 바랄 것으로 생각하는지 의아하다. 전략공천을 기대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민주당이 그렇게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한 장관이 선거구 후보 경선에 발 묶이면 전국적 득표 활동이 어려울 테니까 전략공천을 원할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그랬지, 아마? 이런저런 송사에 얽혀 있던 그 이 대표도 지역 선거구 후보에다 21대 총선 총괄상임선대위원장직을 맡았었는데 한 장관이 뭐가 문제라서?
국민의힘은 리더십 부재의 상황이다. 당 지도부가 아직 건재하긴 하나 구심력이 약하다. 위기 탈출을 위해 혁신위를 띄웠지만, 지도부와 당 유력자들의 소극적 회피적 자세로 되레 마이너스 효과만 초래하게 생겼다. 게다가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을 추진한다며 당 분위기를 휘저어놓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새바람이 필요하다. 한 장관이 무관(無冠)의 당원으로 합류한다고 해도 당 분위기는 일신된다. 당 구성원들의 용기 및 자신감의 회복보다 더 큰 힘은 없다.
국민의힘에 국민이 환호할 대변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 장관의 정치권 진입은 불가피하다. 당권의 향배 때문이 아니라 분위기를 바꾸는데 그만한 호재가 없기 때문이다. 한 장관의 합류가 인재를 끌어모으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민주당에서 조추송(조국·추미애·송영길) 출마설이 나돌던데, 한 장관의 경우를 이들에 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대표와도 경우가 아주 다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깨끗한 등장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민주당은 괜히 시비 걸 생각을 말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들을 돌아보길 권한다. 이력에 덕지덕지 흠을 달고도 전 정권에서 요직에 앉아 있었거나 지금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인사들은 입을 다물 일이다. 이 대표부터! 한 장관이 출마하면 하는 것이지 뭐가 문제인가. 민주당 사람들은 정정당당하게 겨룰 생각이나 하는 게 옳다. 총선 전에 입법 농단을 통해 포퓰리즘 정치를 극대화·극단화하겠다는 무모한 잔꾀는 버리고!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