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또 전쟁…국제정세마저 발목 잡는 한국 경제 ‘상저하고’
입력 2023.10.11 07:00
수정 2023.10.11 08:20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 충돌 발발
미국-이란 대리전 때 ‘오일쇼크’ 위기
무역 국가 한국, 쌓여가는 대외 악재들
‘상저하고’ 기대 불씨 되살리기 어려워
7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가자지구=AP뉴시스
국제 정세가 한국 경제 앞날을 막아서고 있다. 기대했던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은 효과를 찾아보기 어렵고,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으로 대외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혼탁하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 입장에서는 갈수록 커지는 세계 경제 불확실성에 ‘상저하고(경제가 상반기 나쁘고 하반기에 좋아질 것)’ 기대가 옅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7일(현지 시각) 팔레스타인 무정 정파 하마스가 9년여 만에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세계 경제 위험 신호가 다시 들어왔다. 2년 가까이 이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적지 않은 충격파를 견뎌온 상황이라 이·팔 전쟁은 세계 경제 붕괴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우선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정책을 집중해 온 물가 상승 억제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이·팔 전쟁 발발 당일 국제유가는 4% 이상 급등했다.
그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유증이 불러온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강도 높은 금리 정책을 펼쳐 왔다.
코로나19 엔데믹을 기대하면서 최근 금리 인하 가능성을 기대하던 시장으로선 예상치 못한 전쟁으로 계산이 어긋남에 따라 정책 방향 선회를 고민하게 됐다.
한국 정부도 즉각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팔 전쟁이 국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 관계부처에 생활 물가와 서민 금융 안전, 교민 안전 대책 마련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1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42회 국무회의 자리에서 이·팔 전쟁을 언급하며 “이란과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지지하고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이번 사태가 국제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은 “중동지역 무력 분쟁과 전쟁은 국제유가 상승을 불러오고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으로 우리 국민 물가 부담을 가중해 왔다”며 “이미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될 경우 국내 금리에 영향을 미치면서 국민의 이자 부담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총회 및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모로코 마라케시로 떠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출국 직전 기획재정부 1급 이상 간부 등이 참석하는 금융시장·실물경제 점검 회의를 열었다.
“단기 영향 없으나 장기화하면 ‘오일쇼크’ 가능성”
추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아직 사태 초기로 국제금융시장 움직임은 제한적이나, 향후 사태 전개 양상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하면서 관계기관 공조하에 만약 사태에 대비한 상황별 대응계획(Contingency plan) 재점검을 지시했다.
또한 앞으로 사태 향방에 따라 국제유가 변동 폭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며 향후 국내 에너지 수급 차질로 이어지지 않도록 산업부와 관계 기관이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시장과 금융당국에서는 이번 전쟁으로 국내 시장이 받을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 단, 전쟁이 단기간 끝날 경우 그렇다. 만약 러-우 전쟁처럼 장기화할 경우 예상을 웃도는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번 사태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인 모습을 보인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주변국의 참전으로 군사적 충돌이 확산하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중동에서 여러 차례 국지적 분쟁이 있었으나, 분쟁이 장기화하지 않는 경우 국제 유가와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이었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현시점에서 과도한 불안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시장 분석도 비슷하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은 결국 국제유가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란 등 중동 국가 개입 여부에 따라 충격파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란이 (이·팔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이번 사태 영향은 단기적으로 그칠 수 있다”면서도 “이스라엘이 이번 사태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해 공격하면 국제 유가가 급등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서 연구원은 “(이란이 이번 사태 배후라는) 관련 증거가 나올 경우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가 불가피한 데, 이 경우 하루 200만 배럴 규모인 이란의 수출이 중단될 수 있어 국제유가 급등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연준의 강경한 긴축 기조가 확대될 수 있으며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만에 하나 이번 전쟁이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 형태가 되거나 중동 전체로 비화할 경우 ‘오일 쇼크’ 가능성도 점쳐진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와 천연가스 상당수가 호르무즈해협을 거친다는 점에서 이란이 해로(海路)를 봉쇄하면 우리로선 직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우리나라 원유의 67%, 가스의 37%를 중동에서 들여올 때 모두 이곳(호르무즈해협)을 지난다”며 “(이곳이 막히면) 에너지 안보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