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 JIFF] 배우·화가·음악가 백현진의 DNA
입력 2023.04.28 12:51
수정 2023.04.28 12:53
올해의 프로그래머, 세 번째 주인공
"스스로 배우로 인정한지 얼마 안됐다"
배우 뿐 아니라 음악, 미술계에서도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백현진이 자신의 취향을 담은 영화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28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기자간담회가 진행돼 백현진, 문석 프로그래머가 참석했다.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문화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영화인을 프로그래머로 선정해 자신만의 영화적 시각과 취향에 맞는 영화를 선택해 관객에게 선보이는 섹션으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포문을 열었다. 류현경, 연상호 감독에 이어 올해는 백현진이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됐다.
백현진은 "2010년대 초반, 독립영화하는 사람들과 전주국제영화제에 몇 해 재미있게 놀았다. 개인적으로 놀기 가장 좋은 영화제라고 생각한다. 맛집과 골목 등 지역특성이 큰 것 같다.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는 저에게는 소소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올해는 경험해 봐야겠지만 예전 전주국제영화제는 친밀하고 사적인 느낌이라 좋아했다"라고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인상을 말했다.
백현진은 영화 '꽃섬'(2001)을 시작으로 '뽀삐'(2002), '북촌방향'(2011), '은교'(2012), '경주'(2014), '특종: 량첸살인기'(2015), '그것만이 내 세상'(2017),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19), '경관의 피'(2022) 등 다수의 영화로 관객과 만났으며 드라마 '내일 그대와', '국민 여러분!', '모범택시', '악마판사', '해피니스', '가우스전자' 등에도 출연 하여 탄탄하고 개성 넘치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백현진은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생각을 조금 했다. 사수 시절 동안 경쟁에 신물이 났던 터라, 누군가를 심사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심사가 아니라 내가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3편과 내가 참여했던 영화 2편을 구성하면 된다고 해 참여하게 됐다"라고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배경을 밝혔다.
백현진 프로그래머의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선정작은 총 7편의 장·단편 영화다. 백현진 본인의 연출작인 '디 엔드'(2009), '영원한 농담'(2011)과,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삼부작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 '자유의 환영'(1974),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과 출연작인 장률 감독의 '경주'(2014), 김지현 감독의 '뽀삐'(2002)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백현진은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삼부작을 좋아한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과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은 극장에서 보고 '자유의 환영'은 불법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작품을 내가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어떤 분들이 보러 오실지 모르겠지만 함께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문석 프로그래머에게 상영할 수 있는 컨디션이 되면 이 세 편으로 하겠다고 말했다"라고 선정작을 고른 이유를 전했다.
출연작 중에서는 대중에게 사랑 받은 작품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위주로 골랐다. 그는 "장률 감독님의 '경주'는 박해일, 신민아가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접근을 잘 못했다. 이 기회에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저는 지방 꼰대 교수로 나왔는데 몇 신 안 나왔다. 제가 '경주'를 찍고 난 후 배우들 사이에서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다고 하더라. 사실 배우로서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다. 배우의 정체성을 가진 지 2~3년 정도다. 연기 오래 하신 분들 앞에서 품앗이처럼 연기하는 내가 배우라고 하면 실례인 것 같았다"라며 "장률 감독님이 저를 보고 싶다고 하길래 저도 만나보고 싶어 미팅했는데 금방 죽이 잘 맞았다. 그래서 참여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영화 '뽀삐'는 백현진이 직접 연출한 단편과 함께 묶어 상영된다. 백현진은 "김지영 감독의 '뽀삐'는 지금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다. 뽀삐라는 강아지가 주인공이었고 제가 서브였다. 이 작품도 오랜 만에 보고 싶었다. 길이가 70분 정도라 돈 내고 오신 분들이 100분 넘게 보고 나가면 좋을 것 같아서 미술 작업할 때 만들었던 비디오를 함께 선정했다. '디엔드'라는 작품에는 박해일, 문소리, 엄지원, 류승범 등등 배우들이 나온다"라고 소개했다.
백현진은 배우로서 작품 선정 기준에 대해 "음악가, 미술가로서는 호기심이 생기고 집중할 작업 아니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로 움직일 때는 조금 더 열려있다. 사실 시나리오를 분석하진 않는다. 직관적으로 하고 싶은 작품만 선택한다. 오디션은 보지 않는다"라면서 "출연할 때의 조건도 있다. 하나는 내가 대사를 나에게 맞게 바꿀 수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제가 운전을 못한다. 제가 운전하는 장면은 다 스턴트맨이 촬영해야 한다. 세 번째는 서울말 이외의 말로는 연기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지역주민들을 속일 만큼 사투리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백현진은 앞서 배우로서 자신을 인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고백한 것에 대해 "영화 '삼진그룹토익반'을 찍은 이후 상업 영화와 드라마에서 출연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이후로 한 번 작품을 몸에 붙여봐야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드문드문 품앗이 다니듯이 연기하다가 이 정도 연기하면 배우가 아니면 뭐겠나 싶기도 했다"라며 "배우로서 목표는 '사람이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모든 작품에 임한다.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는걸 너무너무 싫어하고 재미없다. 저 사람 일반인 아냐? 저는 그 말이 좋다"라고 전했다.
음악가이자 화가이기도 한 백현진 프로그래머는, 1997년 어어부 프로젝트 정규 앨범 '손익분기점'으로 데뷔한 후 그룹 방백과 어어부 프로젝트 멤버로 꾸준히 활약해 왔으며,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로 개인전 '말보다는'(2021), '백현진 : 퍼블릭 은신(隱身)'(2021)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의 삶에 대해 "제가 조금 산만하다. 호기심이 많고 무언갈 잘 안 하려고 한다. 예술가로 깔끔하게 살다 죽어야지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작업을 해야지'라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기회나 호기심이 생기면 이것저것 할 뿐이다. 무엇보다 서른 중반부터 15년 동안 운이 좋았다. 그래서 지금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어 "청년예술가의 삶은 늘 불안 했다. 어떻게 먹고 살지 불안했지만 회사는 다니고 싫고 아르바이트도 안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불안하지 않다. 결혼을 안 해서 부양할 사람이 아버지 밖에 없고 운전, 골프, 부동산, 주식 안 하고도 잘 산다. 많이 벌고 많이 쓴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백현진은 전주국제영화제의 발전을 기원하며 "바라는 건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운영하시는 분들에게 골치 아픈 일들이 있겠으나 배우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제에 바라는 건 좋은 프로그램이다. 가볍게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영화제에 바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심각하고 진지한 프로그램들이 지속됐으면 한다. 지금처럼 용감하게 계속 해주셨으면 한다. 전주국제영화제 뿐 아니라 모든 국내 영화제에 바라는 점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