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방송 뷰] ‘제2의 우영우’는 없었다…부진의 늪에 빠진 ENA
입력 2023.04.13 08:46
수정 2023.04.13 08:46
지난해 여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했다. 채널의 낮은 인지도 탓에 초반 화제성은 뒤처졌지만 방송 5회만에 전국 유료가구 기준 9%대를 넘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달성하면서 방송 3주만에 시청률을 무려 10배를 끌어올렸다. 종영일 기준 시청률은 17%(전국기준)를 넘어섰다. 동시 방영된 넷플릭스에서도 정상을 꿰찼다.
ENA는 당시 skyTV와 미디어지니가 재론칭한 신생 방송국이었는데, 이 드라마 하나로 단숨에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드라마에 투자한 KT스튜디오지니를 향한 콘텐츠 전략 호평도 이어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KT는 ‘우영우’의 흥행을 바탕으로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재편하고 스타PD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꾀하고 있지만, ‘우영우’를 잇는 흥행작은 전무한 상태다.
‘우영우’의 후속작이었던 ‘굿잡’과 ‘얼어죽을 연애따위’는 2%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종영했고, 이후 방영된 ‘사장님을 잠금해제’도 마찬가지 수준에 그쳤다. ENA로 편성된 ‘가우스전자’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도 시청률 0%대에 머무르며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ENA로서는 ‘우영우’를 잇는 후속작의 히트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실상 ‘콘텐츠 명가’로 도약할 힘을 잃은 셈이다.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ENA는 드라마의 흥행에 힘입어 예능 부문에도 큰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PD들과의 잇따른 협업이다. ‘무한도전’으로 유명한 김태호 PD와 손잡고 여행 예능 ‘지구마불 세계여행’을,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로트 신드롬을 일으켰던 서혜진 PD와는 부부 관찰 예능을 선보일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범인은 바로 너’ 등을 연출한 장혁재 PD와 ‘오은영 게임’을, ‘무릎팍도사’ ‘아는 형님’ 등을 성공시킨 여운혁PD와는 ‘명동사랑방’을 선보였다. ‘나는 솔로’를 연출한 남규홍PD는 ‘효자촌’으로, ‘푸른거탑’ 시리즈를 연출했던 민진기 PD는 ‘신병캠프’로, ‘놀라운 토요일’의 이태경 PD는 ‘혜미리예채파’로 ENA화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이들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0%대 시청률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김태호PD가 만든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화제성 면에선 선방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도 개운치는 않다. 사실상 출연자인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 등 인기 여행 크리에이터들의 힘에 기대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의 주요 활동 영역인 유튜브 조회수는 회당 100만뷰 안팎인데, ENA 채널의 시청률은 1%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다.
1%만 나와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받는 케이블 업계에선 나쁘지 않은 실적이라고 애써 위안은 삼을 수 있겠지만, 매화 두 자릿수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우영우’와 견줘보면 아쉬운 성적표다.
앞서 윤용필 스카이TV 대표는 지난해 4월 열린 KT그룹 미디어데이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ENA의 오리지널 콘텐츠 비중을 높이려고 한다”면서 “향후 3년간 5000억원 넘게 투자해 30여편의 드라마를 확보하고, 300여편의 예능을 자체 제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어떤’ 콘텐츠를 만드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스타PD와 손을 잡고, 인기 유튜버나 화제성 높은 출연자를 섭외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것들이 무조건 ‘흥행’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우영우’의 성공 이후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흥행을 위한 외적 요인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뾰족한 콘텐츠’가 정체성이라던 ENA 채널이 ‘우영우’의 원히트 원더 꼬리표를 뗄 만한 후속 작품을 발굴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